혼자 도착한 도쿄의 길거리는 아련했다. 그것이 괜한 나의 감상일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은 여행 마지막 날 밤 롯폰기 거리를 다니던 중이었다. 나무 인테리어의 시끌벅적한 술집이었고, 그 술집의 또 나무로 된 커다란 미닫이문 앞에 종이가 한 장 붙어 있었다. 하얀색 종이에는 귀여운 글씨체의 일본어가 가득했다. 글자 색도 다양했다. 알아볼 수 있는 건 숫자 정도였지만, 뭐라도 이해해보려고 가게 앞에 서서 열심히 글자를 읽어보고 있었다. 타국의 길거리, 작은 술집 앞에서 그 나라 언어로 된 종이를 열심히 읽으려고 하는 모습 자체가 스스로 좋았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뚫어져라 본다고 알 수 있는 것들은 없었고, 여행 단짝이었던 번역 앱으로 알아보니, 그냥 구인 공고였다.
최초의 꿈틀거림은 필연적으로 무지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알랭드 보통 26p) 내가 만약 일본어에 능해서 구인공고임을 한눈에 알아보았고, 나아가 롯폰기에 조금 오래 거주하면서 그런 스타일의 공고들을 여럿 봤었더라면 나는 아마 가게 앞에 멈춰있지 않았을 것이다. 여행이 즐거운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그곳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말, 사람들의 옷차림, 음식, 횡단보도의 신호등 디자인이나 전철의 안내 방송까지, 아는 것 하나 없는 곳에서 우리는 신비함과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것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무지가 때론 아름다움의 역치를 낮춘다는 것은 분명하다.
방을 치우다 보면 버려야 할 것인데도 오래 그 자리에 있어서 버릴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물건들이 있다. 보통 가족들이 와서 말해주고 나서야 보일 때가 있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이전보다 구석구석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늘 보던 것을 어색하게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어려웠다. 나는 때려 죽어도 한글을 읽을 수 있었고, 흘러나오는 노래 가사를 따라 부를 수 있었다. 구인공고나 영어학원 간판을 보며 구리다 생각하긴 쉬워도 예쁘다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분명 며칠 전 도쿄에선 비슷한 디자인과 내용의 간판들을 보며 감탄하고 아름답다 생각했었다.
나는 잘 알고 사랑하는 것들의 어떤 모습들을 그것들이 익숙하다는 이유로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쉽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의 혹은 원시의 눈으로 비춰지는 세상은 어떨지 늘 궁금하다. 많이 알수록 사라지는 아름다움도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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