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다. 늘 변화를 바라면서 살아왔지만 별 수 없이 붙어있는 눈이나 코같은 것들에 우리들은 서로를 무리없이 알아볼 수 있었다. 좋았던 기억인지 나빴던 기억인지도 모르게 뭉뚱그려진 기억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반가워해도 되겠지 싶은 마음으로 자리에 앉는다. 맥주를 집어 든다. 몸도 마음도 더 어렸을 적에는 배덕감의 상징과도 같았던 이 놈의 뚜껑을 이제는 누가 더 멋있고 능숙한지 자랑이라도하듯 딴다. 안주가 다 떨어져 가자, 우리는 준비라도 해 온듯 각자가 기억하는 서로의 모습을 안줏거리로 꺼낸다. 나는 기억도 못한 내 모습을, 나만 알고 있던 네 모습을 꺼내 술과 함께 다시 삼킨다. 지금보니 참 어리고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던 차, 10년 뒤에 나도 지금의 나를 보며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괜히 10년 전의 나를 우습게 보는 것을 멈춘다.
열심히 지난 시간을 기름삼아 시간을 달렸다. 나는 이제 술도 먹고 나이도 먹었겠다 진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책상 위 단어시험같이 인생에서 수도 없이 있었던 ‘기억을 더듬는 행위’ 말고, 답도 모르고 눈에 선하지도 않지만 우리가 늘 바라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그런데 어느새 다들 자리에서 예전보다 몇배는 무거워진 엉덩이를 잘도 뗀다.
오늘은 봄이 오긴 했었나 의심하던 찰나 시작된 여름의 어느날이었다. 여름이 되자 사람들 마음이 되려 차가워진 것 같았다. 햇빛에 덩달아 더워진 마음을 식히려 일부러 열을 내나 싶었다. 나는 오늘 사실 그 더움을 이겨내고 나와 떠들어줄 사람을 찾아 왔다. 말하자면 동네 목욕탕의 사우나 처럼 말이다. 에어컨에 지치고 쇠약해진 몸에 더운 곳으로 일부러 찾아들어가 나는 원래 따뜻한 사람이었지 다시 확인하는 그런 절차를 같이 할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건 없었다. 우리가 알아볼 수 있었던 건 언젠가 나눴던 꿈 이야기 같은 것들이 아니라, 별수 없이 붙어 있는 눈이나 코같운 것들 때문이었으니까. 어제에 기댄 안주는 동났고, 안주가 떨어지자 우리는 처음보다 차가워진 온도로 헤어졌다. 에어컨 탓인지, 반가움이 다한 탓인지는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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