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은 잔디밭보다는 확실히 아름다운 공간이었으므로 A의 분노는 합리적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였다. 우리는 정신없이 아름다운 것들을 돌아보았다. 우리는 웃었고, 우리는 친했다.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하던 눈을 어느새 같은 곳에 두는 데 열중이었고, 시간이 지나 다시 눈이 마주쳤을 땐 끝도 없는 우리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곤 했다.
그러니까, A의 화냄은 편협하고 동시에 대중적인 이미지의 애인의 트집이나 서운함같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직장상사가 혼내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과감하고 진심된 처분, 하지만 그것은 그 잘못 이상 이하의 일이 될 순 없었다. 지각은 지각. 이전 잘못에 대한 전관예우 따윈 없는 A의 태도가 쿨하다고 생각했다. A는 이마에 난 여드름에 어릴 때부터의 식습관과 받아온 스트레스를 계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냥 여드름이 익기를 기다리다 짜는 사람이었다. 나는 A의 그 깔끔함을 정말로 사랑한다.
나는 그렇게 잔디밭의 한가운데를 찾다 혼이 나도 좋은 사람, A는 정시의 약속장소에서 멀어진 나를 한심하다며 혼내는 사람, 우리 둘은 다른 유형이지만 체력이 좋은 사람이었다. 혼날 체력과 혼낼 체력.
문제는 그 체력이 얼마나 남았는지 본인도, 서로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그 두 형태의 체력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놓여 있었다. 미술관을 가기로 한 그 날의 나는 공원의 한가운데를 찾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A에게 혼날 짓을 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단 하나다. 나는 내가 찾은 공원의 한가운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관심도 없다. 그저 그날이 달력의 정 가운데에 있던 날이라, 내가 A에게 어떤 혼날 짓을 할지 고민하는데 연상되어 아이디어를 조금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점에서 사실 내 행동은 A가 아직 나를 혼낼 체력이 남아 있는지를 알기 위해 실행되었을 확률이 높다.
여지없이 A에게 혼나면 안심이 된다. 아직은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면서, 동시에 내가 아직 혼날 체력이 남아 있음도 함께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아직 내가 A와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서 쓸데없는 행동을 하고, 혼이 나도 기분이 좋다는 사실로 나의 혼날 체력까지 가늠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얼마 남았는지도 모르는 미지의 체력에 대해, 서로가 서로를 따라가며 어디로든 가는 거리의 두사람처럼, 조금은 유치한 방식으로 서로를 가늠할 수 있었고, 달력은 그 유치함을 다그치듯,, 빨리 갔다. 시간은 다그침이 많다는 생각을 때때로 한다.
나는 우리가 이런 방식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너 아직 나를 사랑해?’ 보단 ‘너 아직 나를 다그칠 체력이 남아있어?’가 , 그 보단 혼낼 짓과 혼내는 짓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은유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은유는 아름답고. 다시 말하지만 두 사람 모두 아름다운 것을 매우 좋아했다.
누군가 우리의 관계가 어떤지 물어보면 나는 처음 만난 날보다 이날의 얘기를 해주곤 한다.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만난 지 1년 정도 된 후의 일이지만. 나와 A의 모습이 가장 잘 투영된, 이를테면 나와 A의 만남이 영화 한 편이라면, 이날은 잘 설명해 낸 예고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반대로, 내가 그날의 기억으로 나와 A의 관계를 만들어 낸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한 나와 A의 모습. 나와 A를 동시에 소개한다면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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