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A (1)

#37. 둘을 한번에 소개한다면

2024.09.13 | 조회 2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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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A에 대해 소개하자면 이렇다.

장마가 그쳤다고 한 뒤 분명 일주일이나 지난 날이었다. 그날은 한달 달력의 가운데 쯤 되는 날이었고, 요일 또한 달력의 시작이 일요일인 탓에 정 가운데가 되어버린 수요일이었다. 나는 A와 광화문 옆 유명한 미술관에서 그보다 더 유명한 작가의 전시회를 보기로 했다. A의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오후 1시에 보기로 했고, 나는 여유가 있던 탓에 30분 정도 먼저 가 있었다.

미술관 앞에는 광장 겸 공원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과 종로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에는 꽤 규모가 있는 잔디밭이 있었다. 문득 막연히 있는 잔디밭의 한가운데를 찾고 싶었다. 그렇지만 거리나 넓이를 알 수 있는 대단한 도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눈대중으로 걸어다니며 사방의 거리를 재면서 한가운데를 찾아나갔다. 한걸음 걷고 고개를 들어 제자리에서 한바퀴 돌았다. 아직 미술관 쪽이 그 반대보다 가깝게 느껴져 미술관을  등지고 한걸음 걸었다. 미련하지만 시간은 그 미련함을 다그치듯 빨리 갔다. 나는 어느새 내가 A를 기다린다는 생각보다 내가 공원의 한가운데를 찾기 전에 A가 나를 부르면 어떡하나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A는 미련한 짓을 싫어했다. 미련하다는 말이 애초에 A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 중 하나였다.

한가운데를 찾고 싶다는 마음과 그것이 미련하다며 다그칠 A의 도착 전에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은 일종의 스릴이었다. 하지만 스릴은 그 일이 일어나면 어떡하나 하는 감각에서 비롯되지, 그 일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미끄럼틀을 타기 전 미끄럼틀에 올라서서 곧 미끄러질 나를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미끄럼틀보다도.

A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 2시에 미술관 정문 한가운데에 도착해 있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자마자 달려온 A의 숨이 돌아옴과 동시에 A가 할 일은 본인보다 한참은 여유로운 내가 없다는 사실에 화를 내는 것이었다. A는 떠오르는 감정을 숨기려 한다거나 무시하려한다는 법 없이 드러내는 성격이었고, 더군다나 공식처럼 자신의 감정에 이어지는 행동들이 잘 매뉴얼화 되어 있는 사람이다. A는 곧장 검정색 하트 이모티콘에게 전화를 걸었고, 내가 받았다.

“어 도착했어?”

“ 나 너가 도착 안했으면 그냥 집에 갈거야.”

“아 아니야 나 지금 그 앞에 잔디밭이야. 나 30분 전에 와 있었어..”

“거기서 뭐하는데?”

“나 한가운데 찾고 있어.”

“뭔 소리야 디질래?”

싸늘한 목소리. 빠른 뜀걸음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하고 유일한 대답이다. 보라색 컨버스는 내 발. 나는 컨버스가 예전에 농구화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40년 전 코트를 누비던 수퍼스타들을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들은 편한 신발을 만드는 일보다 딱딱한 바닥을 편하게 달리는 발을 만드는 편이 빠르다고 생각한 것인가.

거리는 속력 곱하기 시간이다. 한 걸음씩이지만 30분이라는 시간의 힘을 무시할 순 없었다. 3분은 전력으로 뛰어 A앞에 도착했다. 숨을 다 고르기도 전에 나는 익살스러움으로 승부 볼 셈으로 “나 빠르지?”라고 물었고, A는 한없이 나를 미련하게 봐 주었다. 그 한없는 진심이 좋았다. 진심으로 몰입한 배우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말을 했다간 티켓 소지여부와 관계없이 미술관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나는 곧바로 미안하다고 했다. 다행히 들어간 미술관의 그 전시회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정말 분명히


추신 / 글

다른 장르와 느낌의 글을 써봅니다. 잘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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