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판 남의 나라 말로 된 책을 선물받았다. 괜히 멋있어 보이는 그 책을 나는 제목조차 읽지 못한다. 인류가 이야기하기 위해 발명한 도구를 나는 전혀 그 용도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기분은 좋다. 나는 책이 아니라 책 모양의 선물을 받은 것이다.
이 책은 시집일까, 줄글이 가득한 걸 보니 아닌 것 같다. 그럼 레시피 북일까, 그림 한 점 없으니 아닌 것 같다. 동화책도 마찬가지. 결국 소설이려나 생각하며,
외계인이 되는 건 이런 기분일까. 나는 외계인의 유산을 얻은 것처럼 아는 것 하나 없는 채로 신이 나 있었다. 나는 내가 여태 너무 속해지는 일에만 몰두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 책을 읽는 자들에게서 엄청나게 배척당했지만 즐거웠다. 속해 있나 하며 생각할 여지도 없는, 또한 그들의 아무런 배척의 의도를 담지 않은 행동에 의한 완전한 배척. 나는 그것을 읽어냄으로써 얻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전혀 기대되지 않았다.
저 앞에서, 나와 같은 말을 쓰는 그 놈이 다가오고 있었다. 문득 저놈이 생판 남의 나라에서 지 인생의 절반을 살다 왔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나는 혹시나 하여 재빠르게 책을 감춘다. 어이! 인지 oui! 인지 oye! 인지 그놈이 지나가며 고개를 내게 까딱거리고 ’어린 왕자‘ 들고 뭐하냔다. 저 초록머리 새끼 참 똑똑하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