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날에 쓴 편지

#10. 오늘은 아무 날도 아닌 날입니다.

2024.03.08 | 조회 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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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작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아무 날도 아닌 날입니다. 아무 날도 아니지만 여느 때처럼 해가 뜨고 바람이 불고 하늘은 푸릅니다. 

오늘 같이 평범한 날엔 지나간 것들을 떠올립니다. 뛸 뜻이 기뻤던 날도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던 날도 그 사람 없이 슬퍼 했던 날도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한 오늘을 맞이합니다. 그 지난 것들이 나만 알고 있는 비밀 같아 덧없다 느끼기도 외려 소중하다 느끼기도 합니다. 

가만히 앉아 바람을 맞고 숨을 마십니다. 파란 하늘을 보고 나는 어느 사이 그들 중 하나가 된 것만 같습니다. 문득 바람도 달도 해도 강물도 제 비밀이 있겠거니 생각합니다. 이들도 울퉁불퉁한 날들을 지내고 나와 마주 하고 있구나 생각하면 오늘이 아무 날도 아니라고 말한 것이 미안해집니다.

꼭 오늘 같았던 날 만난 당신을 생각합니다. 그날 당신에게 한눈에 반하진 않았어도 우리가 친해질 것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우리는 서로의 배경이 되었고, 나는 굳이 바람을 맞고 해를 쬘 필요 없이 나의 하루가 특별함을 너무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생각 이상으로 너무 빠르게 깊어진 탓에 숨이 버티지 못하고 급하게 당신으로부터 나와버린 것만이 아쉬울 뿐입니다.

시간이 지나 당신도 나의 비밀이, 나도 당신의 비밀이 되었지만 때론 구름에 바람이 스치듯 당신을 마주치는 일을 내심 기대합니다. 당신을 처음 만난 그날도 그저 오늘 같은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신도 문득 나에 대해 아련해지길 바라는 사이, 챠콜색 공기가 하늘을 덮습니다.

챠콜색 하늘이 나무의 배경이 되어주는 밤, 선명하게 검어진 나무를 보며 하루를 마칩니다. 오늘은 아무 날도 아니고 나는 지나간 당신을 떠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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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 글

겨울이 녹아 봄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산뜻한 시작을 알리는 프롤로그같기도, 일이 다 끝난 후의 에필로그같기도 한 봄은 어쨌든 반갑게도 매년 찾아옵니다.  힘든 일이 있었다면 견뎌낸 자신을 위로하는, 즐거웠다면 더 즐거운 일의 시작을 맞이하는 3월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추신 / 그림

저는 흐린 날 푸른 하늘을 그립니다. 이번 글은 그림 없이 글만 읽어도 푸른 하늘이 그려지더라구요. 다들 그림에 구애받지 말고 자신의 파란 하늘을 상상해보며 읽는 게 더 재밌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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