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렇게까지 빼앗겨볼 일도, 빼앗길 필요도 없을 거야. 그리고 이렇게 소중한 건지도 몰랐겠지.
얼마전에 산 반지가 있어. 인터넷으로 주문했지. 우리나라에선 거의 팔지도 않고, 파는 가게를 찾는다 해도 내가 거기까지 가서 껴볼 수 있을 여유는 없다고 생각했거든. 사실 그렇게 비싸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어. 10만원대 초반 정도..뭐.. 막 싼 건 아니지만 약간의 실패를 감수할 정도는 된다고 생각 했어. 사실 이런 위험을 좋아하기도 해. 약간..너무 완벽한 소비가 언제나 가장 좋은 소비라고 생각하지 않거든. 긴가민가하며 산 물건이 너무 마음에 들었을 때의 행복도 정말 크니까, 실패했다면 실패한대로 웃긴 이야기로 남는 거고. 아무쪼록 그런 가능성이 포함되어 있는 물건을 사는 건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해. 어떤 색의 피규어가 나올지 모르는 5천원짜리 뽑기를 사는 건, 반은 투명하고 반은 색으로 차 있는 캡슐을 열어 나오는 피규어 뿐만 아니라 어떤 놈이 나올까 하는 기대감도 같이 사는 거잖아. 난 적당한 물건들에 대해 가끔은 그런 느낌으로 물건을 사곤 해.
아무튼 그 반지도 그런 물건이었어. 사이즈가 특히.. 반지는 너무 예쁘고, 마음에 들고, 마침 돈도 있었어. 그런데 내. 손가락 호수가 기억이 안나는 거야. 재 볼 수도 없었지. 너가 빼앗아 간 그것 때문에 말이야. 그래서 어렴풋이 17호를 샀어. 맞는 손가락에 껴야지 하는 마음으로. 아니다 다를까 반지가 아주 조금 작았어. 나는 사실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에 가장 끼고 싶었지만, 무명지에 딱 맞았지. 오른손 중지에도 들어가긴 했어. 뭐든 그렇지만 여차져차 들어간 것도 문제는 늘 나올 때지.
그거 아니? 손가락은 참 잘 붓더라고. 나도 모르는 새에 내 손가락이 17호에서 17.3호 정도가 된다는 걸 알았어. 중지에 낀 반지가 어쩔 땐 잘만 빠지고, 어쩔 땐 턱 하고 나올 기미를 안하더라. 그럼 나는 그럴 때마다 어떻게든 반지를 빼고 싶어서 비누칠을 하러 갔어. 조금 붉어진 손가락이 미웠지. 그렇게 속듯이 몇 번을 비누칠을 하고서 나는 더 이상 그 반지를 중지에 끼지 않게 됐어. 절반정도 되는 확률로 내가 원할 때 뺄 수 없다는 게 나에겐 구속처럼 느껴졌어. 어떤 순간은 잘만 빠지고, 빠지지 않더라도 비누칠 정도에 무조건 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물며 나는 반지를 잘 빼지 않는 성격이거든.
나에게 중요한 건 반지를 빼내는 일보다, 언제든 빼 낼 수 없다는 사실이었어. 너가 나에게서 그것을 빼앗은 건 마치 내 중지에 껴진 이 반지같은 일이야. 그거 하나 빼앗았다고 내가 몸이 부수어지겠니 이빨이 빠지겠니. 속이 안좋고 머리가 아프겠니. 내가 죽을만큼 괴로웠던 건 단지 하나, 내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그 사실 하나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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