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나의 첫사랑이 아니길 바란 적이 있다. 당신은 첫사랑이 아니라 당신의 이름 그 세 글자 만으로도 나에겐 충분히 무거운 사람이었다. 당신이 아주 작은 각도로 움직여도, 나는 당신과는 한없이 멀리 있는 탓에 그 벌어짐을 따라잡기 위해 한참을 달려가야 했다. 그러다 보면 다시 조금 움직인 당신을 바라보며 다시 뛰어야 한다는 생각에 무릎에 손을 올리곤 했다. 어쩌면 당신이 내가 왜 그렇게 당신의 말과 행동에 기뻐하고 아파했는지 이해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당신은 그저 한 발짝 움직이거나, 고개 약간 돌렸을 뿐일 테니까. 먼 발치에서 따라가느라 가랑이가 찢어지는 나의 고통이 조금도 이해가 가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당신이 당신의 첫사랑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처럼 뛰어보기 전까지 말이다.
나직이 내 마음을 당신 앞에 내려 놓는 그 밤의 바람 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나는 무슨 잘못이라도 한 사람마냥 경건하게 내 마음이라며 당신 앞에 보따리를 풀었다. 보따리 안의 내용물은 물론이고, 보따리를 푸는 내 손짓이나 발짓에서 거슬리는 게 있진 않을까 조심스럽게, 당신 앞에서 좋아한다고 말했다. 당신은 사실 알고 있었겠지만 놀라지도 그렇지만 너무 무심해 보이지도 않게 나를 바라보았다. 그게 다였다.
첫사랑인 주제에 짝사랑인 당신이 둘 중에 하나라도 해당되지 않기를 바란 적이 있다. 첫사랑이 아니라면 나는 그래도 이전에 배운 방법으로 나를 달래보려 했을 것이고, 짝사랑이 아니라면 이렇게 아프기 전에 당신에게 조금 실망한 틈이라도 있었을 텐데. 언제까지나 아름다울 것 처럼 서 있는 당신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며 당신을 적당히 보는 일 뿐이었다.
중학교 졸업식날, 더 이상 당신과 마주칠 일이 없다는 생각에 기뻤다. 그러나 마주쳤기 때문에 자꾸 생각나는 거라는 핑계도 이젠 댈 수 없는 마당에 당신이 생각나는 것은 그르칠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졸업이 유예된 채로 다음 학교까지 졸업하고 말았다. 고졸이지만 중졸은 아닌 삶은 당신이 아닌 사람에게서 당신 앞에서만큼이나 떨리던 그 날까지 계속이었다.
생각해보면 당신이 나의 첫사랑이고, 나의 짝사랑이 아니길 바란 적이 없다. 내 원망이 당신이 나를 봐주지 않아서일 순 있어도, 당신이 존재하기 때문은 아니다. 기억에 남지도 않을 바람 소리가 여태 생생하게 머리에 남아 있는 이유는 오직 당신 때문이다. 세상의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갔던 것은 당신을 기다리느라,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갔던 것은 내가 당신과 대화하고 있던 까닭이다. 사랑 대신 당신 이름을 대던 몇 날 며칠을 나는 잊을 수도 잃을 수도 없다.
처음 뵙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ㅎㅎ
그림에 의도는 있지만 굳이 설명을 붙이진 않을게요 마음껏 해석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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