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헤리티지] 경주 독락당 계정 – 유교적 수양과 학문, 그리고 시적 영감의 공간
원림은 학업 정진을 위한 유학자의 무릉도원
기술은 장비에서 드러나고 실력은 사용하는 도구에서 나타난다. 공부는 그 사람의 공간에 새겨진다. 공간을 보면 학업 성취도의 진정성이 묻어난다. 학문을 대하는 자세는 그가 머무는 공간에서 드러난다.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은 조선의 학자들이 너도나도 본받고자 했던 인물이다. 조선의 수많은 인물 중에서도 회재만큼 후대 학자들이 마음 속으로 은근하게 좋아한 이는 드물다. 책에 경전이 있어 진득하게 들춰 보듯이 그의 삶 자체를 하나의 교본으로 삼았다. 회재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 학문을 놓지 않았다. 도덕적 실천과 학문적 탐구를 둘이 아닌 하나로 보고 일생을 통해 이를 실천한다. 그의 깊은 통찰력은 성리학의 이론을 체계화하고 발전시키는 데 크게 공헌한다. 수많은 저술 활동으로 후학 양성을 위한 기틀을 마련한 셈이다. 이처럼 학문과 덕행을 겸비한 회재의 원림 경영은 오늘날까지도 주목받는 선비의 산수 원림을 대변한다.
회재의 공부 공간이 독락당과 계정이다. 독락당에서 경전을 읽고 성리학을 연구하고 계정에서는 자연과 교감하며 도학의 이치를 터득한다. 독락당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로 독서하고 계정의 처마 끝 빗소리를 들으며 사색한다. 사계절의 변화를 몸소 체험하며 신인묘합(神人妙合)의 상태를 미적 이상으로 삼는다. 신인묘합은 우주와 인간이 상호 주체적으로 소통하는 경지이다. 자연에서 심신을 수양하며 철학적 사유와 미적 성취를 이루며 공부의 긍극적인 희열을 맛본다. 독락당의 소박한 마루에 앉아 제자와 경전을 토론하고, 계정의 난간에 기대어 시를 읊조리며 천지만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일상, 이것이 바로 회재가 추구한 진정한 선비 원림의 본보기이다.
회재의 독락당 계정 원림은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선다. 자연과 인간, 학문과 실천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유교적 수양의 공간이다. ‘물가에서 깨달음의 기쁨을 홀로 즐기는’ ‘계정(溪亭)과 독락당(獨樂堂)’은 그 이름 자체로 회재의 학문하는 방법을 드러낸다. 그에게 독락당과 계정에서의 생활은 자연에 나를 들여놓는 수행이다. 사계절의 변화를 몸소 겪으며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수련이다. 자연의 언어로 소통하는 일상이 곧 학업이었다. 회재의 원림 경영은 삶과 학업이 하나로 만나는 공간을 일컫는다. 일상의 삶은 곧 학업이고 학업은 다시 일상이 되는 순환이다. 우리 뇌에는 타인의 행동을 관찰할 때 자신이 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반응하는 ‘거울뉴런(mirror neuron)’이 있다. 학습과 모방의 신경학적 기초가 되며, 타인의 경험을 통해 배우는 인간의 능력을 설명한다. 이와 같은 원림을 조영하여 학업에 정진하는 회재의 공부 방법은 진정한 ‘거울뉴런’이 되어 후대의 학문 수양 공간으로 작용한다. 회재의 독락당 계정 원림은 학업 성취도를 집약적으로 구축하는 정원 공간의 모범 사례로 지위를 획득한다.
독락당으로 향하는 길이다. 서둘러 누마루에 오르고 싶은 마음을 잠시 접어둔다. 옥산서원에서 마주한 추사의 글씨가 먼저 나를 맞이한다. 시퍼런 바위에 둘러싸인 용추의 물살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먹먹함으로 다가온다. 세심대의 바래진 붉은 글씨와 마주하며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독락당 계정 원림을 찾아 시경을 남긴다.
독락당 계정 원림을 걷다
온형근
계절마다 읽는 홀로 누리는 즐거움을 너는 모른다.
서둘러 누마루에 오를 생각을 일단 재우고
옥산서원, 천진난만한 추사의 글씨를 먼저 보는 것은
시퍼런 바위에 둘러싸인 용추의 물살이 건각임을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둑한 먹먹함으로 안겨온다.
몇 발자욱 옮기며 윗물과 아랫물을 번갈아 서성이다
빛바래 붉은 기운으로 남은 세심대 바위 글씨와 반갑다.
자옥산 푸근한 산줄기 독락당으로 쏟아붓는 푸른 시선은
반짝이며 빛나는 대청마루를 마주하려는 예후였음을
높은 담장에 가려 둘이 걷기 좁은 골목을 혼자 걸을 때
대청마루 동쪽 세살창호 열고 살창으로 넘실대던 자계를
입질만으로 근질근질하여 공부를 털고 계정으로 나선다.
계정을 받치는 너른 바위에서 물고기 노는 것을 보다가
개울 건너 화개산 허리를 휘어 두른 병풍석에 올라 시를 읊는다.
저 위쪽 작은 폭포 주위 탁영대나 그 위의 징심대도
저 아래 용추폭 앞 세심대 속 뜻을 더욱 새겨 맑아지라는데
독락은 홀로 있을 때 더 큰 세계와 만난다면서
시는 계절에 절여 맑은 풍취로 우주의 율려에 든다.
-2025.01.11
자옥산의 푸른 품이 독락당을 감싸안은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독락당 대청마루에 앉으니 세살창호 너머로 비치는 자계의 물결이 나를 유혹한다. 높은 담장 사이로 난 좁은 골목을 홀로 걸으며, 공부의 무게의 힘이 들때면 잠시 내려놓고 계정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너른 바위에 앉아 물고기의 유영을 바라본다. 화개산을 휘감은 병풍석에 올라 시심을 심는다. 탁영대, 징심대, 세심대를 거치며 맑아지는 사색에 잠긴다. 홀로 있음이 오히려 더 큰 세계와의 만남임을 깨닫는다. 계절의 변화와 함께 시의 맑은 풍취가 우주의 율려와 하나 되어 깊어 간다.
물질은 소박하고 정신은 충만한 맑은 풍취
벼슬을 버리고 자발적 또는 정치적 이유로 은거하면서 원림을 조영하는 것은 일찍이 연명(淵明) 도잠(陶潛, 365~427)의 귀거래사에 기원을 둔다. ‘국화’와 ‘외로운 소나무’, ‘오류선생’ 등 정원문화의 주옥같은 문장을 남겨 동아시아 정원문화를 주도하였다. 조선전기에 ‘미음완보’를 비롯하여 정원 향유 행위를 시경(詩境)으로 형상화한 불우헌(不憂軒) 정극인(丁克仁, 1401~1481)의 정원 언어도 같은 맥락에서 분석할 수 있다.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 건축 및 구조물로는 수간모옥(數間茅屋, 작은 띠집), 정자, 송간세로(松間細路, 소나무 숲 사이 오솔길)가, 식재 요소로는 송죽(松竹, 소나무와 대나무), 도화행화(桃花杏花, 복숭아꽃과 살구꽃), 녹양방초(綠楊芳草, 푸른 버들과 꽃풀)를, 경관 요소로는 화풍녹수(和風綠水, 화창한 바람과 푸른 물결), 명사청류(明沙淸流, 맑은 모래와 깨끗한 물), 연하일휘(煙霞日輝, 안개 노을에 빛나는 햇살), 청풍명월(淸風明月, 맑은 바람과 밝은 달), 춘기교태(春氣嬌態, 봄기운에 교태를 부리는)의 새, 청향낙홍(淸香落紅, 맑은 향기와 떨어지는 붉은 꽃잎)을, 문화 요소로는 소요음영(逍遙吟詠, 이리저리 거닐며 나직이 읊조림), 미음완보(微吟緩步, 낮게 읊조리며 천천히 걷는), 산수구경(山水求景, 산수 경치를 구경함), 답청욕기(踏靑浴沂, 풀을 밟고 물에서 목욕함), 채산조수(採山釣水, 산나물 캐고 물고기 낚음), 준중(樽中, 술동이 안)을, 정신적 가치로는 풍류(風流), 단표누항(簞瓢陋巷, 가난하고 누추한 곳), 물아일체(物我一體, 자연과 내가 하나 됨)의 흥, 한중진미(閑中眞味, 한가로운 가운데 참된 즐거움), 백년행락(百年行樂, 평생의 즐거움), 무릉도원(武陵桃源, 이상향)이 있다. 이 모든 게 놀랍게도 ‘상춘곡’ 가사 하나에 등장하는 시경(詩境)이다. 한국정원문화의 종합적 어휘 체계를 제시하였다. 조경 설계의 전통적 언어 원형을 제공하였으며 정원 향유 문화의 기본 틀을 확립하였다. 이를 한국정원문화 향유의 중추적 언어이자 조경 설계 언어의 원형질을 집대성한 자료라고 평가하는 연유이다.
소요음영과 미음완보는 같은 뜻이다. 소요음영이 혼자 또는 여럿이 함께 하는 것이라면 미음완보는 보다 내면적으로 집중하는 독락의 원림 향유 방식으로 읽힌다. ‘상춘곡’ 저자인 정극인의 원림 경영 요체를 ‘불우헌곡’을 차운한 시에서 찾는다. 정극인과 동시대 인물의 시경이다. 정극인의 원림 문화는 개인적 수양과 사회적 교류라는 측면을 모두 포괄한다. 특히 ‘독락’이라는 개념을 통해 더 깊은 내면적 성찰을 추구하였다.
산이 사면에 두르고 물이 거듭 감싼 곳 / 山回四面水重抱 산회사면수중포
남쪽으로 창이 열린 한 선비의 집 있어 / 向陽開牕一儒宮 향양개창일유궁
거문고 바둑으로 한가로이 날을 보내니 / 左琴右奕逍遙日 좌금우혁소요일
그대의 불우가 참으로 홀로 즐기는 뜻과 같구려 / 不憂眞與獨樂同 불우진여독락동
-김영유, 「차불우헌곡」, ⓒ 한국고전번역원, 김홍영 (역), 1998.
김영유(金永濡, 1418~1494)는 정극인보다 17살이 어렸으나 동시대를 살았다. 정극인의 원림을 찾아 나서겠다는 결심을 실천하기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정극인은 처가인 전북 태인 고현동에 정착하여 집을 불우헌이라 하고 집 앞 비수천(泌水川) 주변에 송죽을 심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의 고요한 아침 풍경이다. 물안개가 산자락을 감싸듯 휘감는다. 남쪽으로 난 창에 기대어 따스한 햇살을 맞는다. 원림의 거점 중심 공간으로서의 선비의 거처가 풍광에 겨워 고즈넉하다. 왼쪽 벽에는 거문고가 세워졌고 오른쪽 탁자에는 바둑판[左琴右奕]이 햇살에 반짝인다.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여 오랜만에 가져보는 한가로운 일상이다. “수간모옥을 벽계수 앞에 두고 숭죽 울울리에 풍월주인”인 정극인의 원림이다. 그도 이런 순간을 즐기는 것일게다.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다. 오히려 평온의 미학이 마음 깊숙이 자리한다. 아무리 불우한 처지라 해도 원림을 경영하면서 얻는 고요한 기쁨은 숨길 수 없다. 홀로 즐긴다[獨樂]는 게 이처럼 그대와 내가 다를 바 없으니 온전한 독락의 느낌을 어찌 아니 공유하겠는가.
이러한 원림 경영은 농암(籠巖) 이현보(李賢輔, 1467~1555)에게도 발견된다. “원림 경관의 감상[山水遊賞]”이라는 관점을 중요시한 귀거래 풍류로 전원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산수유상’은 회재를 통하여 ‘독락’이라는 말로 정신 충만하고 맑은 풍취의 원림으로 되살아난다. 벼슬 따위는 잊고 스스로 깨달아[自得]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는[修己] 원림을 경영하였다. 회재는 원림에서 독락의 깨달음을 성과로 내놓는다. 16세기 조선 성리학은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1489~1546)의 주기론과 회재의 주리론으로 서막을 연다. 이후 성리학의 정통이 주리론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회재의 학문적 성취가 남다른 정진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회재의 독락당 계정 원림은 유교적 수양과 일상에서의 수행, 도교적 수련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선비의 창의적 학문 공간으로 두루 적용되는 전범으로 일반화된다.
화담의 주기론은 율곡으로 대표되는 기호학파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고, 회재의 주리론은 퇴계로 대표되는 영남학파의 이론적 기반이 되어, 조선 성리학의 양대 학파 형성에 결정적인 흐름을 형성한다. 이는 다시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으로 이어진다. 퇴계는 도산십이곡에서 “천석(원림, 산수, 자연)을 좋아하는 마니아적인 성벽[泉石膏肓]”이 있다
고 밝힌다. 정원을 계획하고 조성하여 운영하는 데에 진심인 사람들에게 ‘천석고황’을 지녔다고 하였다.1)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를 몹시 사랑하고 즐기는 성벽’을 지닌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윤선도(尹善道, 1587~1671)는 금쇄동 원림을 경영하면서 “나의 산수에 대한 고질병이 너무 과한 것은 아니겠는가.”라고 천석(泉石, 원림)에 대한 과도한 지출을 남들이 비웃겠지만 산수지벽(山水之癖)이라는 고질병을 어쩌란 말인가로 되돌아본다.(윤선도, 「금쇄동기」, 고산유고 제5권 하/기)
선비의 정원, 시로 물들다
문인화가 있다면 문인정원이 있다. 선비의 원림문화에 시를 빼놓을 수 없다. 독락당 계정 원림에서 피어나는 시적 담화는 선비의 정원 문화에서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계절별 정원의 모습이 형상화되었다. 아름다운 원림의 서정에 회재의 시심이 더불어져 「임거십오영(林居十五詠)」이 그려진다. 정원의 시경은 쓰여지는 게 아니라 그려진다고 표현하는 게 마땅하다. 원림을 낮게 읊조리며 천천히 걷는 미음완보(微吟緩步)의 실천에서 시의 경지를 미적 대상으로 형상화하였다. 회재는 독락당과 계정을 원림의 ‘거점 중심 공간’으로 삼아 열다섯 풍광을 시로 읊었다. 임거십오영에 묘사된 옥산 자계천의 원형 경관을 살핀다. 먼저 초봄, 늦봄, 초여름, 가을 소리, 초겨울을 통하여 춘하추동을 5수로 창작한다.
[독락당 계정 원림의 춘하추동]
사계절을 읊은 5수의 시경을 따라 원림을 따라 걷는다. ‘조춘’은 초봄의 깊은 산속을 걸으며 계절의 변화를 다룬다. 봄기운이 스며드는 숲속에서 복사꽃과 살구꽃이 피어나는 생명의 숨결을 마주한다. 짚신을 신고 지팡이를 짚으며 거닌다. 산길을 따라 걸으니 시냇물 소리가 흥취를 더한다. ‘모춘’은 늦봄의 정취에 홀로 걷는 여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붉은 꽃, 하얀 꽃이 저절로 피어난다. ‘초하’는 초여름 음력 사월의 봄이 다하는 아쉬움을 달랜다. 구름 덮인 산봉우리를 바라본다. ‘추성’은 가을 소리를 달빛 아래 난간에 기대어 듣는 시경이다. 귓가에 스치는 바람 소리가 흰 머리카락을 더한다. ‘동초’는 초겨울의 붉은 단풍잎이 정원에 가득하고 시든 국화가 마지막 향기를 전하는 풍경이다. 변함없는 푸른 솔잎이 마음을 얹는다. 자연의 순환 속에서 영원한 것과 덧없는 것의 경계를 새긴다. 초봄의 새롭게 깨어나는 소생, 늦봄의 절정, 초여름의 전환, 가을 소리의 감흥, 초겨울의 인내와 지조를 독락정 계정 원림의 사계절 경관으로 구현되었다.
[고갈과 생기, 순환과 초탈의 관조]
이어지는 5수는 가뭄 걱정, 비를 기뻐함, 감물, 무위, 관물이다. ‘’민한‘은 가뭄 걱정이다. 농부들의 한숨 소리를 메마른 들판에서 듣는다. 말라버린 샘물을 보며 고통스럽다. ’희우‘는 비를 기뻐한다는 내용이다. 빗소리에 가슴이 설렌다. 격자창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생명이다. 반가운 손님이다. 구름 아래 바위에 누워 비 오는 소리를 듣는다. ‘감물’은 계정을 노래하는 시이다. 소나무와 대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푸른 산은 변함없다. ‘무위’에서는 만물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나는 시간을 거스르지 않으려 한다. ‘관물’에서는 맑은 시냇물 앞 작은 정자에서 물고기를 바라보며 마음을 비운다. 가뭄의 고갈에서 비를 기뻐하며 생기를 얻고 자연의 순환을 느끼며 무위로써 초탈하는 태도와 마음을 다스려 사색하는 관조의 경관이 펼쳐진다.
[계정의 깊은 풍경과 독락의 즐거움]
「임거십오영」의 10수를 위에서 설명하였고, 나머지 5수 중 2수를 먼저 살핀다. ‘계정’과 ‘독락’을 따로 떼어 정원의 풍광을 읽는다.
계정 溪亭
옆 숲에서 아름다운 산새 소리 들려오니 / 喜聞幽鳥傍林啼 희문유조방림제
새로 지은 초가 정자 작은 내를 굽어보네 / 新構茅簷壓小溪 신구모첨압소계
홀로 술을 마시면서 밝은 달을 맞이하고 / 獨酌只邀明月伴 독작지요명월
반한 칸 집에 흰 구름과 함께 깃들이도다 / 一間聊共白雲棲 일간료공백운서
- 이언적, 「임거십오영」, ⓒ 한국고전번역원 | 조순희 (역) | 2013
‘계정’의 경관은 아침 햇살이 숲을 깨우는 순간으로 시작한다. 아침 햇살이 스미는 계곡가, 옆 숲에서 들려오는 “청아한 새소리에 마음이 설렌다[喜聞幽鳥].” 이곳에 새로 지은 계정은 정원에 고스란히 안기어 “작은 시내를 내려다본다[壓小溪].” 물소리와 새소리가 어우러져 자연의 리듬을 연주한다. 달빛 스며드는 저녁이면 홀로 술잔을 기울인다. 달빛은 유일한 벗이 되어 고독을 달래준다. 때때로 흘러가는 구름이 정자에 머물 때 자연과 동화되는 평화를 느낀다. 한 칸의 작은 공간이지만 모든 것이 충만하다. 흰 구름은 번뇌를 씻어주고 새소리는 영혼을 깨우며 깃들어 사는 충만함을 경험한다. 고요한 계정에서 새소리, 물소리, 달빛, 구름이 만드는 우주의 율려에 다가선다. 세상의 번뇌를 벗어난 듯한 평온함이 온몸을 감싼다.
독락 獨樂
무리 떠나 홀로 사니 누가 함께 시를 읊나 / 離群誰與共吟壇 이군수여공음단
산새와 물고기가 나의 낯을 잘 안다오 / 巖鳥溪魚慣我顔 암조계어관아안
개중에서 특별히 더 아름다운 정경은 / 欲識箇中奇絶處 욕식개중기절처
두견새 울음 속에 달이 산을 엿볼 때지 / 子規聲裏月窺山 자규성리월규산
- 이언적, 「임거십오영」, ⓒ 한국고전번역원 | 조순희 (역) | 2013
‘독락’은 무리에서 벗어나 홀로 있는 순간을 그렸다. 고요한 산속, 홀로 거처를 정한 나의 마음이 잔잔히 일렁인다.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난 깊은 고독은 오히려 가슴 벅차오르는 기쁨이다. 바위에 앉아 계곡을 바라보는데 산새들이 날아와 내 곁에 앉는다. 물고기들은 내 기척에도 아랑곳 없이 유유히 헤엄친다. “오히려 알아보는 듯한 친근함이 느껴진다[魚慣我顔].” 밤이 깊어갈수록 잔잔한 기운으로 산의 고요함은 더해간다. 두견새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밤공기를 가른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달이 산봉우리 사이로 살며시 얼굴을 내민다. 정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경은 달빛이 두견새의 울음소리와 어우러져 천상의 음악을 연주하는 순간이다. ‘독락’의 미학은 산새와 물고기, 두견새, 달로 이어지는 일시적 경관에서 성립한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혼자만의 고요 속에서 자연과 교감할 때 비로소 다가선다.
[통찰과 정화와 지조의 풍광]
「임거십오영」의 나머지 3수를 읽는다. ‘관심’과 ‘존양’, ‘추규’가 그것이다. 성찰의 정신적인 가치를 시경으로 표상한다.
관심 觀心
빈산에서 한밤중에 정좌하고 있노라니 / 空山中夜整冠襟 공산중야정관금
한 점의 푸른 등불 한 마음을 비추누나 / 一點靑燈一片心 일점청등일편심
본체를 밝은 데서 이미 징험하였기에 / 本體已從明處驗 본체이종명처험
참다운 근원 고요한 가운데서 다시 찾네 / 眞源更向靜中尋 진원갱향정중심
‘관심’은 고요한 산중의 풍광이다. 한밤중의 정적이 나를 감싸니 옷깃을 여미고 정좌한다. 작고 푸른 등불에서 마음의 본질을 찾는다. 고요 속에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니 진리의 근원을 향한 갈망이 크다. 참다운 근원은 “고요함 속에서 찾는다[靜中尋].”고 하였듯이 독락당 계정 원림은 고요함에서 내면을 탐구하고 진리를 깨닫는 정신적인 수양의 공간이다. 밤의 정적과 등불의 빛은 마음의 향방에 사색의 깊이를 더하는 정원 요소로 작용한다.
존양 存養
산속에 비가 내려 절로 꿈이 깨었는데 / 山雨蕭蕭夢自醒 산우소소몽자성
홀연히 창밖에서 들려오는 들꿩 소리 / 忽聞窓外野鷄聲 홀문창외야계성
인간세상 온갖 걱정 모조리 사라지고 / 人間萬慮都消盡 인간만려도소진
오직 한 점 마음만이 밝은 빛을 드러낸다 / 只有靈源一點明 지유영원일점명
‘존양’은 새벽녘 산속의 빗소리를 통하여 깨어나는 새벽의 시경을 표상하였다. 촉촉이 젖은 창밖으로 “들꿩의 울음소리[野鷄聲]”가 들려온다. 세상의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오직 맑은 정신만이 남는다. 내 영혼의 빛이 어둠을 가르며 빛난다. 새벽의 빗소리와 들꿩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깨우고 맑게 하는 독락당 계정의 특별한 풍경인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를 읽는다. 정신적으로 청각이 미치는 소리 환경을 명상을 하듯 쾌적한 어메니티(amenity)로 받아 들인다.
가을 해바라기 秋葵
가을까지 변함없이 고운 꽃을 피우는데 / 開到淸秋不改英 개도청추불개영
길옆에서 봄의 영화 다투려고 하겠는가 / 肯隨蹊逕鬪春榮 긍수혜경투춘영
적막한 산속 집에 감상하는 사람 없이 / 山庭寂寞無人賞 산정적막무인상
그저 붉은 마음 안고 해를 향해 기울었네 / 只把丹心向日傾 지파단심향일경
‘추규’는 가을 정원의 한적한 풍경이다. 해바라기의 고고한 자태와 변치 않는 지조를 묘사한다. 해바라기는 봄의 화려함과 경쟁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사뭇 감동적이다. “적막한 산속 정원이다. 아무도 감상하지 않는 곳[山庭寂寞無人賞]”인데도 변함없이 태양을 향해 고개를 든다. 번잡한 세상을 기웃대지 않고 붉은 마음으로 해를 향해 기운다. 해바라기는 봄의 영화를 탐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간다. 여기에 학문과 수양에 집중하는 선비의 삶을 중첩시킨다.
이언적의 「임거십오영」은 계절의 순환과 자계천 주변의 풍광, 그리고 수양과 깨달음의 정원 서사를 시경으로 다룬 연작시이다. 이곳 독락당 계정 원림은 학문의 공간으로서 완벽하다. 수양과 학문의 유토피아 공간이다. 그러면서 세속적 가치의 초월과 자연과의 일체감을 통한 고독을 즐기는 여유를 보여준다. 경관과 원림 조영자의 정신세계가 완벽하게 어울린다. 잘 짜여진 세밀한 정원 계획을 「임거십오영」의 시경으로 만난다.
보면 반하는 정원은 세월의 가치를 담는다
이황이 이언적의 도통을 계승하였다면, 우담(愚潭) 정시한(丁時翰, 1625~1707)은 이황의 도통을 계승하였다. 그의 문하에서 이식, 황수일, 이만부, 권두경 등이 배출되었다. 정시한은 “산수를 좋아하여 사방팔방을 두루 유람하였다[喜山水遍遊八方].” 정시한의 「산중일기」는 네 차례의 산행에 대한 사색의 기록으로 원림의 원형 경관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평생을 강원도 원주를 근거지로 살던 정시한이 만 나이 예순세 살인 1688년 5월에 경주 옥산서원을 들리고 독락당과 계정을 노닐었던 기록을 남겼다. 정시한은 독락당의 계정 원림을 “맑고 상쾌하며 그윽하고 절경이어서 거의 속세의 소유물이 아닌 듯 하였다[蕭洒幽絶, 殆非塵世所有].”라고 탁월한 문장으로 표현하였다. 이 기록은 17세기 말 독락당 계정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사료적 가치를 지니며, 당대 선비들의 원림 감상 방식과 미학적 관점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당시의 원형 경관을 묘사한 것이라 인용이 길다.
걸어서 용추로 나가 세심대를 거쳐서 시냇물을 따라 위로 올라갔는데, 소나무 그늘 사이로 마을 중심이 빠끔 보였다. 몇 리를 가서 계정에 이르니 정자가 소나무 숲 사이 넙적한 바위 위에 있었는데,
“맑고 깨끗하며 그윽하고 빼어나서(絶景) 아마도 속세의 소유물이 아닌 듯하였다.”
서로 더불어 정자에 올라가서 난간에 기대어 시내를 내려다보니 모인 물이 맑고 깊었으며, 소나무와 대나무가 둘러 있었다. 정자는 계곡에 가까워 맑은 물과 솔숲에 둘러싸여 있다. 관어대와 영귀대 등은 단정하고 평평하게 넓으며, 계단이 반듯하게 놓여 있어 자연의 조화인 듯 천연하게 이루어져서 마치 사람의 재주를 벗어난 것 같았다. (……) 위아래로 물 흐름을 따라서 가자 바위 누대의 넙적한 바위 위와 시냇가의 충층의 암벽과 우뚝한 바위에 모두 그 이름이 있었으니, 선생이 일찍이 오르내리며 노닐고 읊조리면서 스스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공경스럽게 감상한다. 마치 구부정하게 지팡이에 의지하듯, 발자국 소리를 듣고 기침 소리에도 조심하듯, 저절로 아득한 세월을 넘어서는 감회가 있다. 모르는 사이에 정한이 있어 마음이 슬프고 아프다.”
처마의 액자에는 ‘계정’이라는 두 글자가 써있었는데, 곧 한석봉이 쓴 것이다. 방 위에도 크게 ‘양진암’이라는 세 글자가 써있었는데 곧 퇴계가 쓴 것이다.
步出龍湫 由洗心臺, 緣溪而上行, 松陰間, 穿村落中. 數里至溪亭, 亭在松林間, 盤石上, “蕭洒幽絶, 殆非塵世所有.” 相與登亭, 憑檻臨溪, 潭水澄泓, 松竹圍繞. 觀魚泳歸等坮, 端正平廣, 階級井井, 造化天成, 若出人工. (……) 沿流上下, 於巖臺盤石之上, 溪邊層岩立石, 皆有其號, 先生所嘗陞降游吟, 而自名者也. 肅然敬玩, 宛若陪杖, 履聞警咳, 自有曠世感懷, 不覺愴怛于情. 軒上書額溪亭二字, 卽石峯書. 房上大書養眞菴三字, 卽退溪書.
-조기영. “우담 정시한의 문학에 나타난 세계관” 한국철학논집, vol. 22, 2007, pp. 99–100.에서 재인용, 일부 필자가 수정함
정시한과 함께 계정 원림을 걷는 상상을 한다. 옥산서원을 들리고 역락문 밖으로 나와 세심대 바위군을 서성이다 용추를 바라본다. 다시 세심대를 지나 시냇물을 따라 걷는다. 소나무 그늘 사이로 언뜻 마을이 아스라이 보인다. 고즈넉한 숲길이다. 계정에 이르니 정자를 지탱하는 바위는 넓적하다. 맑고 깨끗하며 그윽하고 빼어나서[蕭洒幽絶]2) 속세에 찌든 마음이 시원하게 씻긴다. 정자 마루에 오른다. 한호(韓濩, 1543~1605)가 쓴 ‘계정’을 감상한다. 난간에 기대 앉아 자계천을 내려다본다. 물은 맑고 발을 담그기에도 적당한 깊이이다. 주변의 소나무와 대나무가 정자를 포근하게 감싼다. 관어대와 영귀대를 거닌다. 회재 선생이 “구부정하게 지팡이에 의지하여[宛若陪杖]” 오르내리며 노닐고, 바위마다 이름을 새겨 읊조리던 장면을 떠올린다. ‘완약배장’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 원림에서의 용어에 ‘지팡이 짚고 신발을 끌던 곳’이라는 ‘장구지소(杖屨之所)’가 있다. 함양 농월정, 거창 수승대 등에서 볼 수 있다. 한결같이 엄숙한 마음으로 선생께서 스스로 세상을 밝히던 공간임을 새기며 경건하게 발걸음을 옮길 일이다.
독락당 계정 원림은 ‘사산오대’로 영역을 확장한다. ‘사산오대’는 화개산, 무학산, 자옥산, 도덕산의 네 곳과 세심대, 영귀대, 관어대, 탁영대, 징심대의 다섯 곳이다. 자계천에 층층으로 놓여진 반석의 맑은 물가에 매일 반성하며 자신을 돌아보겠다는 의지를 다섯 대의 이름으로 남겼다. 세심대는 옥산서원 역락문 바깥 북쪽 일대의 바위를 말한다. 주역 「계상전(상)」의 뜻을 취하였다. 영귀대는 계정 맞은편 화개산 허리를 휘어두른 병풍석이다. 마음이 복잡해지면 건너가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며 시 읊으며 돌아오는 장소를 상징한다. 논어 「선진」편에서 가져왔다. 관어대는 계정을 받치는 반석이다. 맑고 깊은 물속에 노니는 물고기를 보며 낚싯대라도 드리우며 사색하는 곳이다. 장자 「추수」편의 고사를 인용하였다. 탁영대는 계정의 북쪽 자계천 100여 미터지점의 작은 폭포 주변이다. 맑은 물에 갓끈 씻는 곳으로 김안로 일당의 전횡의 종지부는 반드시 있을 것임을 다진다. 초사의 「어부사」와 맹자 「이루상」에 나온다. 징심대는 탁영대에서 400여 미터 정도 올라간 자계천 북쪽 일대이다. 마음을 가라앉혀 맑게 한다는 의미로 나라와 국민을 향한 뜻을 다듬는 곳이다.
문묘에 배향된 우리나라의 다섯 현인에 든 회재 이언적
정승 10명이 죽은 대제학 1명에 미치지 못하고, 대제학 10명이 문묘에 종사된 현인 1명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문묘에 종사된 우리나라의 명현은 18명이다. 통일신라,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공인한 최고의 정신적 지주에 오른 유학자들이다. 동방오현은 정여창,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 다섯 현인이다. 1610년(광해군 2년)에 처음 종사되었다(박경숙. “회재 이언적, 독락당의 보물 서울나들이.” 국립중앙도서관, 2019, 102쪽.). 문묘종사가 가진 최고의 영예를 잘 보여준다.
「회재 이언적, 독락당의 보물 서울나들이」에 따르면, 회재를 기억하고 따르고자 모신 곳은 경주 옥산서원을 비롯하여 유배지였던 평안도 희천 서원과 강계 경현사까지 17곳이다. 학문적 영향력과 위상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강계는 윤원형 일당이 조작한 양재역 벽서사건으로 유배된 곳이고 7년만에 돌아가신 곳이다. 유배지에서 대학자의 면모를 세운 「대학장구보유」를 비롯하여 「봉선잡의」, 「구인록」, 「진수팔규」를 집필하고 「중용구경연의」를 완성하지 못한 채 강계 유배지에서 유명을 달리한다.
이러한 독락당 계정 원림의 시경(詩境)을 오늘날 정원 계획의 반영 요소로 적용한다. 시는 정원의 아름다움을 형상화하고, ‘미음완보(微吟緩步)' 즉, 천천히 거닐며 나직이 시를 읊조리는 행위를 통해 정원의 경치를 미적 대상으로 승화시킨다. 회재 이언적의 「임거십오영」은 이러한 시적 정원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독락당 계정 원림에서 ‘독락(獨樂)’은 홀로 즐거움을 찾으며 고요에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과 깨달음을 의미한다. 홀로 있음을 즐기는 것은 세속의 가치를 초월하는 영혼의 경이로움이다. 비로소 원림의 조성과 향유는 사색과 학업이 순환하는 긍정적 내면 탐구의 공간 경험 과정이다. 이러한 독락당 계정의 철학적 요소는 현대 정원 설계에 있어 중요한 영감과 지침을 제공한다.
정극인, 이현보를 비롯한 많은 선비들이 회재 이언적처럼 자연 속에서 학문을 추구하고, 정신적 수양을 위한 공간으로서 원림을 경영하였다. 이들은 은거와 함께 원림을 조성하고 경관을 즐기며 시를 읊었다. 정극인은 ‘미음완보’를 통해 정원을 향유하는 행위를 시경으로 형상화했고, 이현보는 ‘산수유상’을 통해 자연 경관 감상을 중요하게 여겼다. 회재의 독락당 계정 원림은 이러한 경관 미학과 학문 수양 공간의 ‘거울뉴런’이 되어 후대의 원림 조성에 모범으로 작용한다. 경주 독락당 계정 원림은 동방오현으로 모셔진 이언적의 ‘독락’이라는 원림 행위를 통한 사색과 학문의 정원 문화를 산출한 곳이다. 이곳을 찾아 미음완보하는 것은 성지 순례처럼 순결한 학자의 면모를 담고자는 수순이다. 문묘 배향은 그의 학문적 깊이가 원림 경영과 함께 이루어졌음에 대한 존경을 상징한다.
1) 연하고질(煙霞痼疾) 천석고황(泉石膏肓) : 『구당서 권192 전유암전』에 나오는 출처로 정원 애호가 또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은사를 지칭한다. 당 고종이 전유암에게 산중 생활을 묻자 “신은 천석과 연하에 빠지는 고질병이 들었고, 성상의 시대를 만나 다행히 소요하고 있습니다[臣泉石膏肓煙霞痼疾, 旣逢聖代, 幸得逍遙.].”라고 했다.구당서 권192 전유암전
2) ‘소쇄유절’은 조기영. “우담 정시한의 문학에 나타난 세계관” 한국철학논집, vol. 22, 2007, pp. 99–100.)의 뜻을 취한다. 김성찬은 『산중일기』에는 “말쓱하고 깨끗하며 그윽하고 끊겨 있어”라고 하였다(국학자료원, 1999, 3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