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같은 장면이 두 번 반복되는 이유 🎞️

E10. Christian Petzold

2024.08.28 | 조회 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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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 만에 완성되는 영화?

‘3부작 영화’라고 하면 어떤 영화가 떠오르는지? 대부와 스타워즈?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영화를 좋아한다면 요아킴 트리에의 오슬로 3부작이나 키에슬로프스키의 세 가지 색 시리즈를 떠올릴 수도 있을 테다.

오늘은 유난히 필모그래피가 세 편씩 맞아떨어지는 독일의 감독을 소개하려고 한다. 바로 크리스티안 페촐트이다. 지난 호에서 소개했던 빔 벤더스가 과거 뉴저먼 시네마를 이끈 인물이었다면, 크리스티안 페촐트는 현세대 독일 영화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감독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나름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고 있어, 감독 전도 종종 열리는 편이고 최근에는 감독 본인이 가족과 함께 내한하기도 했다.

📜 역사 3부작

페촐트의 3부작이라고 하면 흔히 ‘유령 3부작’과 ‘역사 3부작’ 그리고 ‘원소 3부작’을 이야기한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역사 3부작과 원소 3부작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먼저 <바바라>(2012)와 <피닉스>(2014), 그리고 <트랜짓>(2018)으로 이어지는 역사 3부작이다. 독일 감독에게는 어쩌면 일종의 통과 의례처럼 느껴지는 주제가 바로 역사일 것이다. 세 편의 영화는 각기 다른 역사적 사실을 고유한 방식으로 풀어내는데, 그 시선이 무척 섬세하면서도 풍부한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다.

이곳은 과거일까 현재일까? 묘한 매력의 영화 <트랜짓><br>
이곳은 과거일까 현재일까? 묘한 매력의 영화 <트랜짓>

1980년대 동독을 배경으로 한 <바바라>와 2차 세계대전 직후의 이야기를 다룬 <피닉스>는 한국 팬들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영화일 것이다. 둘에 비해 <트랜짓>은 다소 생소하지만, 셋 중에서 가장 독창적인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동독의 작가 안나 제거스가 나치 하에서 망명 생활을 전전하며 쓴 소설 <통과비자>를 21세기의 무대에서 재창조했다. 페촐트는 보통의 시대극과 달리 과거와 현재를 말 그대로 겹쳐 보여줌으로써 과거의 아픈 상처를 뚜렷하게 조명하면서도 현시대에도 같은 문제(영화에서는 난민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

🔥 원소 3부작

원소 3부작은 아직 두 편밖에 제작되지 않았는데, <운디네>(2020)와 <어파이어>(2023)가 그것이다. <운디네>는 물을, <어파이어>는 불을 중심 소재로 다루고 있다. 그중 가장 최근작인 <어파이어>는 나와 같이 평소에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영화이다.

혼자만 즐기지 못하는 주인공(가장 오른쪽)...<br>
혼자만 즐기지 못하는 주인공(가장 오른쪽)...

영화는 여름휴가를 보내는 네 남녀의 우연적인 만남으로 전개가 시작되는데, 주인공인 레온은 휴가에 와서도 원고를 아직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제대로 즐기지도 않고, 그렇다고 원고를 집중해서 마치지도 못하면서 이도저도 아닌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상황을 남 탓으로 돌리며 남에게 짜증과 불평을 늘어놓는다. 보다 보면 짜증이 치솟으면서도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핑계로 엄마에게 툴툴거렸던 학창 시절이 떠올라 괜히 뜨끔하기도 했다. 상황 탓, 사람 탓하며 내 인생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불만이 가득한 사람에게 이 영화는 일종의 거울 치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두 명의 페르소나

5편의 영화는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두 명의 배우가 각각 나누어 연기했는데, 니나 호스가 바바라와 피닉스를, 그리고 트랜짓•운디네•어파이어는 폴라 비어가 맡았다. 공교롭게도 두 배우 모두 페촐트와 함께한 영화를 통해 베를린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니나 호스만큼 결연한 눈빛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br>
니나 호스만큼 결연한 눈빛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내가 더 좋아하는 쪽은 단연 니나 호스이다. 아마 드라마 <홈랜드>를 보았다면 익숙할지도 모르겠다(내가 그랬다). 그는 2005년부터 페촐트 감독과 함께했던 감독의 페르소나 중 한 명으로, ‘사연 있는 여주’ 역할을 너무나도 잘 소화해낸다. 무언가에 의해 억압받고 고통받는 와중에도 항상 주체적인 선택을 하는데, 그 때의 결연한 그의 표정은 몇 마디 대사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마음을 움직인다.

🙃 영화에서 모든 장면은 두 번 반복된다?

페촐트는 내한했을 당시 이동진 평론가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영화 속에서 특정 이야기를 반복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출처: B 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br>
출처: B 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저와 많은 각본을 함께 썼던 스승이자 친구인 하룬 파로키와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영화에서 모든 공간이 두 번 나와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같은 공간이 두 번 나오면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이에 무언가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것이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그 차이가 바로 이야기가 됩니다. 굳이 이야기를 직접 할 필요 없이 그 사이에 무언가가 일어났음을 알려주는 것이죠.

좋은 작품이란 그런 게 아닐까. 영화를 보고 나온 도시의 풍경은 다를 바 없지만 내 안의 무언가가 아주 미세하게 달라져 있는. 내게는 페촐트의 영화가 그러했고, 그렇기에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자신 있게 추천하고 싶다.


Today's Question

트뤼포가 말하길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단계는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두 번 이상 본 영화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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