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나무를 관찰하면 보이는 것들 🌳

E13. ⟪나무⟫, 고다 아야

2024.09.25 | 조회 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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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한 하루란 무엇일까?

지난 7화에서 "Paris, Texas"로 소개했던 빔 벤더스 감독의 신작이 최근에 개봉되었다. 바로 영화 "퍼펙트 데이즈"이다.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의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소박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일상을 다루는 영화이다. 혼자 사는 중년 남성인 히라야마에게는 자기만의 취미가 있는데 하나는 식물을 키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점심 시간마다 공원에 올라가 나무 사진을 찍어 주말에 그것을 인화하는 일이다. 그는 또한 잠들기 전에 책을 읽는 습관이 있는데, 오늘은 히라야마가 영화에서 읽던 책 중 한 권을 소개하려고 한다. 바로 고다 아야의 ⟪나무⟫이다.

🌳 나무가 알려주는 것들

⟪나무⟫는 일본의 소설가 고다 아야가 말년에 십 년 넘게 일본 방방곳곳의 나무를 찾아다니면서 직접 그것들을 관찰하며 기록한 산문집이다(사후에 유작으로 출간되었다). 나무 사진을 찍고 식물을 기르는 히라야마의 취미와 잘 어울리는 책이기도 하다. 책 속의 그녀는 가식을 벗은 노년기 특유의 능청스러움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무엇하나 쉽게 짐작하지 않고 작가 특유의 태도로 각양각색의 나무들을 면밀하게 바라보며 교감한다.

책에서 나무는 하나의 생명을 넘어 인격체로 느껴질만큼 작가가 나무에게 쏟는 애정과 관심이 남다르다. 편백나무, 삼나무, 벚꽃과 버드나무, 소나무, 녹나무, 삼나무… 그녀가 묘사하는 나무가 과연 어떻게 생겼는가 하고 문장을 다 읽고 나서 상상한 모습과 직접 그것을 비교하며 읽는 것도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결국 우리는 인간이기에. 그녀가 나무를 보면서 하게 되는 생각 또한 인간에게로 되돌아오는 물음과 대답이 많다. 그중 인상 깊었던 몇 구절을 공유해 본다.

나무는 중심부가 아니라 항상 바깥쪽에서 바깥쪽으로 새로운 나이테를 만들어가며 성장한다는 사실을 배운 곳도 여기다. 그래서 어떠한 상처도, 그 상처 때문에 생긴 변형도 세월과 함께 안쪽 깊숙이 감싸 안는다. 감싸 안는다란 따뜻한 정을 내포하는 표현이다. 알맹이를 보살피고 보호하고 외부의 재난을 막아주는 역할을 겸하는 행위가 감싸 안는다는 것이다. 생물은 인간도 새도 짐승도 모두 그 상처를 감싸 안아야 할 필요가 있다. 나무도 당연히 그렇게 한다. 감싸 안고, 보호해주고, 변형을 보완해주고,되도록 상처 없는 나무와 마찬가지로 줄기를 원통형으로 만들어가려 한다.

122p

 

'쓰러져 죽은 나무'라는 표현은 직설적이라 좋지만 조금 더 위로가 필요한 기분이 든다. 그런 기분이 드는 이유는, 쓰러져 죽은 나무에는 대체로 평안하고 청정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150p

 

목수가 말하는 '나무'란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나무가 아니다.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나무로서의 생명을 끝낸 후의 '목재'를 가리킨다. 나는 초록색 잎이 달린 서 있는 나무를 살아 있는 나무라고 생각했지 목재가 된 나무를 살아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 사람은, 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서 있을 때의 생명과 잘려서 목재가 된 이후의 생명 이렇게 두 번의 생명을 갖는다고 한다. 도편수들은 호류지 대보수에 착수하며 천 이백 년 된 오래된 목재를 손으로 만져보고 두 팔로 안아도 보며 피부를 살펴 알고 있다. 그러한 귀중한 경험과 신념으로 나무는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호류지의 천이백 년된 오래된 목재를 대패로 한번 밀면 나무는 생기 있는 나뭇결과 윤기 있는 피부를 드러내고 향기를 풍긴다. 습기를 먹으면 부풀고 건조하면 쪼그라든다, 이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 바람에는 휘고 지진에도 비뚤어지지만 잘 견디고 아니겠느냐고 한다. 수긍되는 바가 있어 알 듯 하기도 했고 한편으로 결국 현장에서 이해해야 속 시원히 다 알 것 같기도 했다.

164p

고다 아야의 ⟪나무⟫를 읽으며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솔직해야 한다는 말의 뜻을 실감할 수 있었고, 또 그리하여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단순히 글만 잘 써서는 되지 않는 일이라는 것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그녀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무를 깊이 관찰하면서도 독자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 들거나 그것을 자랑삼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판단을 유보하며 재미 없는 이야기나 늘어놓지도 않고 솔직하면서도 겸손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사람 냄새로 가득한 고다 아야의 문장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수함으로 하여금 마치 깊은 숲속의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느낌을 준다. 책은 현재 절판되었지만 중고 서적으로 그다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Today's Question

나만의 나무를 한 그루 심는다면, 어떤 나무를 심을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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