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윤동규 45주차

아 취한 애 데리고 오지 마요

2024.01.22 | 조회 5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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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윤동규

한 주간 쌓인 쓰레기들을 공유합니다

1.


멋진 작품을 보고 나면, 이게 왜 멋진가에 대한 고민을 하려 한다. 어떤 장면은 빛이 환상적으로 들어와서. 또 어떤 장면은 색의 조화가 아름다워서. 또 또 어떤 건 등장하는 인물이 이미 매력적이거나, 또는 촬영이 기가 막히거나. 정확히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얼추 이러이러한 이유로 만들어진 작품이겠거니, 하고 결론이 나면 놀랍게도 시시해진다. 뭐 얕잡아 보여서 그런 이유는 절대로 아니고, 어차피 내가 못 하는 종류의 것들이어서가 아닐까? 당장의 내가 못 하는건 당연하고, 이걸 하기 위해 시간을 들여 노력하고 애쓰고 공부하는 그 과정을 보내는 것도 못 하기 때문에 시시하다는 것이다. 이런 때에 시시하다는 표현을 써도 될까 모르겠지만, 시시한건 어쩔 수 없다. 나를 흥분하게 만들던 그 작업은 금새 먼 우주의 별이 되어버린다. 어차피 나랑 상관 없으니까. 반면, 아이디어가 특출나거나 기획이 좋고.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고, 편집의 리듬이 좋고 이런 작업을 만든다는 시도 자체가 좋은 작업이 있다. 아마추어라 불러도 억울할 것 하나 없는 사람들이 만든 경우도 꽤 많고, 좋아하는 감독의 데뷔작이나 대학교 시절의 습작 단편인 경우도 즐비하다. 이런걸 볼 때면 기분이 아주 그만이다. 날아갈 듯 기쁘다. 이렇게 멋진 작품인데도, 손에 잡힐 듯 가깝다니. 억지로 비슷한 기분을 전달해보자면, TV에 나온 정말 맛있어 보이는 맛집이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느낌이라고나 할까? 지하철 40분 3번 환승하고, 뭐 이런 정도를 뛰어넘어 심지어 비행기 타고 1박 2일은 이동해야 먹을 수 있는 것들 사이에서. 우리 동네 맛집을 발견하는 것 만큼 짜릿하다. 그걸 발견했다고 해서 당장 옷 입고 뛰쳐나가서 혼자 왔어요 외치진 않지만, 중요한건 당장 손에 닿을 것 같은 그 기분이다. 그 기분이 시무룩한 나를 언제나 가슴 뛰게 만든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것이 좋은 작품을 보는 이유가 아닐까. 그것을 만드는 첫 단계는 그것의 존재를 아는 것이다. 


 

2.


음악 추천을 받다보면, 가끔 " 곡은 라이브로 들어야 해요!"라는 사족을 붙이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나는 이게 끔찍히도 거부감이 든다. 악물고 스튜디오 버전을 찾아 듣거나, 아니면 그냥 들어버린다. 거부감이 생기는걸까?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사실 일단 그냥 좋아해도 되지만, 무언가를 싫어하는 이유는 단단히 파헤칠 필요가 있다. 싫어함을 극복해야 할지도 모르고, 혹은 나의 싫어함을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속으로만 싫어하는건, 주변 사람들을 영문도 모르는 가해자로 만들 뿐이다. 

하지만 어렴풋이 알고는 있다. 라이브 버전을 추천 받는게 싫은게 아니라, 나는 라이브를 싫어한다. 누구보다 유니크하고 싶은 나지만, 라이브에서만 존재하는 뮤지션들 특유의 유니크한 순간들이 싫다. 그것이 기적같이 멋진 순간일수록 더욱 꺼려진다. 그것은 때에, 순간에만 있어야 한다. 그것이 촬영되고 녹음되어 <라이브 버전>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나오면, 나는 그것을 소비하고 싶지가 않아진다. 그건 그냥 < 부른 버전> 되는게 아닌가? 

물론 그런 생떼 같은 이유만 있는건 아니다. 스튜디오 버전은 뮤지션이 수십, 수백. 어쩌면 수천 수만번은 고뇌해서 갈고 닦은 모습이다. 어쩌면 가장 보여주고 싶은 모습. 라이브는 반대로, 곳에서만 존재하는 모습이다. 뮤지션 스스로도 어떤 모습일지 가늠이 안되는 모습. 말하자면 라이브 버전을 추천하는 것은, 사람을 소개할 "걔는 들어가면 진국이야"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럴 수도 있지만, 최소한 맨정신일때 만난 술을 마셔야 하지 않겠는가. 곡부터 라이브를 추천하는건 만남때 술에 취해 인사하는 것과 같다. 그것도 나는 맨정신인데 말이야! 혼자 취하지 마요. 아니 취한 애 데리고 오지 마요!


 

3.


좋아하는 요즘 말로는 <추구미>가 있다. "나 이렇게 하고 다니고 싶어"를 이야기할때 아주 경제적인 단어다. 대부분의 신조어는 경제성을 띈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기존에 있는 말을 대체할 필요는 없을 뿐더러, 너무 웃기고 재밌기만 하면 유행을 타버려 오래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추구미는 자연스럽게 삶에 녹아들 것이라 확신한다. 

어쨌든 <추구미>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건 조니 뎁이다(지금은 이미지가 속된 말로 나락을 가버렸지만). 당시 브래드 피트의 얼굴을 가장 좋아했지만, 조니 뎁을 좋아한건 다름아닌 딸이 매준 팔찌 덕분이었다. 사람들이 놀리는건 아랑곳 하지 않고 자랑스럽게 끼고 공식선상에 등장하는 모습을 꽤나 멋지다고 느꼈다. 이것은 미적인 요소보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더 중요시하는, 일종의 F적인 감성이 크게 작용한게 아닐까. 그 당시의 나는 F였는지도 모른다.

두번째는 우습게도 박찬욱이다. 류승완 감독이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해준 일화가 인상 깊었는데, 대충 사람들 많은 자리에서 엉덩이 한 쪽을 들더니 방구를 뿌악! 하고 꼈다는 에피소드다. 아 역시 거장은 저래야지, 라고 생각했다고. 그걸 듣는 나도 같은 생각을 하며 멋지다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추구미의 예시로는 좀 그렇지요? 세번째로 넘어갑시다.

가장 최근의 사건인 피자헛 머그컵 에피소드는, 다름아닌 같은 회사의 개발자 동료분이 쓰던 컵에서 시작한다. 세련되게 잘 빠진 것도 아닌. 투박한 디자인에 전화번호까지 적혀있고, <피자헛 안양점>같은 프린트가 새겨져 있었다. 돈 주고는 절대로 안 사는건 물론, 누가 줘도 언제 버릴지 눈치 보게 되는 제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당당히 그걸 회사에 들고와 동료들과 커피를 즐기는 모습에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멋을 느끼게 됐다. 벌써 3년 가까이 된 이야기지만, 이게 나의 가장 최신 추구미라는 확신을 가져본다. 그게 뭔 미야? 미이긴 미인거야? 물어본다면, 아쉽게도 1000자가 훌쩍 넘었기 때문에 다음 기회에 피자헛 머그컵 에피소드에 대해 더 자세히 풀어보도록 하자. 


 

 

이건 그냥 일종의 보너스로. 인스타그램 댓글을 통해 사람들과 함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한번 잡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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