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블루레이 플레이어를 샀다. 근 15년간 플레이어 하나 없이 DVD를 모았는데, 그래도 나름 생일이라고 당근으로 10만원에 구해왔다. 판매자가 영화 보면서 먹으라고 몸통만한 팝콘을 선물로 줬는데, 글 맥락이랑은 상관 없지만 왠지 미담은 억지로라도 끼워 넣어야 할 것 같다는 의무감이 있다. 어차피 그게 누군지도 모르는데 말이에요. 집에 도착하자마자 TV에 연결했다. PC용 ODD는 있어서 파일로 리핑하거나 PC에서 재생하는건 가능했는데, 근래에 그렇게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이건 일종의 영화를 보는 자세. 아니, 어떤 콘텐츠를 소비하는 자세로 이어진다. 첫 음악 감상은 엄마가 틀어준 전축. 초중학교땐 TV, 테이프, 그리고 CD로 넘어가려는 찰나 소리바다가 등장했다. 사람들은 파일로 음악을 소장했고(그것도 불법으로. 대해적시대는 이때부터였다) 나도 임창정 전곡을 불법으로 받아놓고 팬인냥 까불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내 정신차리고, 고등학교 2학년때 13만원짜리 CDP를 구매해 음반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가 가장 음악을 즐겁고 진중하게 듣던 때였다. 그것은 음반이 가지는 힘이기도 했으며, 무언가를 소장한다는 기분이 주는 힘이기도 했다. 실제로 최홍식이 빌려준 브라운 아이드 소울 1집이나 휘성 2집은 파일로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돌려주기 싫어서 최대한 눈에 안 띄게 도망다닐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선 음악을 들을 수 없었다. 불법 다운로드나 빌려 듣는거나 돈 안 내는건 똑같은데, 그게 차이가 있더라. 그리고 마지막은 다들 아시다피시, 스트리밍 서비스의 시작으로. 심지어 영상 플랫폼 유튜브에서 거지같이 서비스해주는 유튜브 뮤직으로 음악을 듣고 있다.
조금 정리해보자면, 데이터 -> 물건 -> 다시 데이터의 흐름으로 이어졌고, 심지어 스트리밍은 내가 어디에 있든 들을 수 있는 말 그대로 구름같은 서비스였다. 어디서도 들을 수 있다. 그 말은 곧 굳이 지금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기도 했고, 나의 음악에 대한 관심은 거기서 딱 끊겼다. 이제 더이상 음악을 집중해서 듣지 않는다. 뭐 뮤지션들도 음반을 집중해서 만들지 않는 것 같지만. 여기까지 이야기했는데 벌써 1000자가 넘었습니다. 이따위로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나머지 이야기는 2부에서 이어 하겠습니다.
2.
음악 추천을 받다보면, 가끔 "이 곡은 꼭 라이브로 들어야 해요!"라는 사족을 붙이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나는 이게 끔찍히도 거부감이 든다. 이 악물고 스튜디오 버전을 찾아 듣거나, 아니면 그냥 안 들어버린다. 왜 거부감이 생기는걸까?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사실 일단 그냥 좋아해도 되지만, 무언가를 싫어하는 이유는 단단히 파헤칠 필요가 있다. 싫어함을 극복해야 할지도 모르고, 혹은 나의 싫어함을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속으로만 싫어하는건, 주변 사람들을 영문도 모르는 가해자로 만들 뿐이다.
음악을 듣지 않는다. 여기서 누가 가장 손해일 것 같습니까? 얼핏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들이야 안타깝긴 하지만 다른 방법을 찾아보면 됩니다. 가장 손해를 보는건, 바로 음악을 듣는 사람입니다.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더이상 음악을 듣지 않는다면, 결국 인생을 무미건조하게 살아간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음악을 듣는 방법을 끊임없이 갈구해야 합니다. 음악? 안 들으면 그만이야~ 하는 태도는 좋지 않아요. 물론 그런 태도가 딱히 저랑은 상관이 없지만요.
그러니까 각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게 음악을 들으면 된다. 음악 취향이란 어떤 음악을 듣느냐 뿐 아니라, 어떻게 음악을 듣느냐로도 이어진다. 내 경우엔 부산대학교 신나라 레코드에서 음반을 한 장 사서(보통 사고 싶은 음반을 미리 고르지만, 가끔 즉흥적으로 구매하기도 한다) 금정세무서에서 집으로 가는 50번 버스를 기다리며 비닐을 뜯고. CDP에 씨디를 넣는걸 가장 선호한다. 그렇게 들은지 15년이 지났다는게 문제지만, 요는 손에 잡히는 형태의 물건이 있는 것. 그리고 그 물건을 듣다가 다른 것으로 바꾸기에 여간 귀찮은게 아니라는 점이다.
DVD가 그런 맥락에서 결을 이어간다. OTT로 원하는 영화는 아무거나 틀 수 있지만, 보고싶어요 리스트가 1000개가 넘어가도록 영화를 즐겨 보지는 않는다. 가끔 유튜브를 통해 영화를 사기도 하지만, 그건 정말로 가진다는 기분이 없다. 극장에서 영화를 즐기는건? 열이면 아홉 영화를 가장 잘 즐기는 방법이겠지만, 저는 글쎄요. 그거 어차피 사라지는거 아니에요?
결국 나에겐 소장의 개념이 크다. 모든 경험을 소장하고 싶진 않지만, 좋은 경험일수록 소장하고 싶잖아요. 그게 음반이고, DVD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경험들이다. 인간은 죽어서 무엇을 남깁니까? 나는 음반과 DVD를 남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내가 만든거도 있으면 좋겠지만, 고인이 생전에 즐겨 들었던 음반과 챙겨 보던 영화들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이것은 하나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블루레이 플레이어 구매는, 그 역사의 첫 걸음입니다. 그러니 잘 샀다고 해줘요.
3.
블루레이에 대한 잡담. 10만원짜리 플레이어 하나 샀다고 산문을 벌써 몇 편을 쓰는거야. 100만원짜리 샀다간 책 한권 나오겠네. 어쨌든 묘한 경험을 했는데, 바로 저화질 720P의 DVD를 재생했을 때에 오는 일종의 쾌감이 있었다는 것이다. 평소 유튜브는 굳이 4K, 1080P 두고 720P를 선택할 일이 없으니 느끼지 못했고, 느낀다 하더라도 이거 왜 화질이 안 좋지... 하며 해결책을 찾으려 했음에 분명하다. 말하자면 720P는 나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상태>로 자리잡았던 것이다. 그런데 애초에 720P로 아웃풋을 내보내는 DVD의 경우, 이게 기본 화질이고 이놈이 낼 수 있는 맥시멈 아웃풋이란걸 인지하고 보게 되자, 뭐라 말할 수 없는(물론 곧바로 말할거지만) 해방감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화질, 더 선명한 화질, 더 큰 해상도, 더 깨끗한 저조도, 더 높은 비트레이트를 확보하려 천만원에 가까운 카메라와 렌즈를 쓰고, 그마저도 모자라 조명을 치고 플러그인으로 노이즈를 제거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1970년대 영화로 해방을 경험한 것이다. 아! 재밌으면 화질은 의미가 없구나!
하지만 그렇게 글을 끝내자니 근거가 너무 빈약하니, 조금만 더 보태보자(아직 500자 밖에 안 되기도 했고). 분명한건, 화질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바타> 같은 영화는 상영 환경이 재미의 9할은 책임진다. 휴대폰 화면에다 480P로 본다면 이게 뭔 유치하고 고리타분한 영화냐는 생각만 가득할것이다. 중요한건 모든 영화가 <아바타>는 아니라는 것이고, 내가 <아바타>와 같은 영화를 싫어한다는 점이다. 결국 내가 무엇을 추구하느냐. 그것을 잘 전달하고 담아내기 위한 환경을 구성해야 한다. 480, 720은 좀 오버하는 것 같구요. 1080으로 만족하되, 내용에 최선을 다합시다 이거에요. 좀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뭐 대단한거 깨달은 듯 군 감이 없지 않죠? 제가 하는 이야기가 뭐 매번 그렇지요. 그래도 앞으로 제 영상 볼 때 해상도 얼마로 되어있는지 확인해보는 재미가 있지 않겠어요?
4.
<주간 윤동규> 프로젝트의 가장 이상적인 완결은, 아이러니하게도 더 이상 연재하지 않는 것이다. 처음 의도야 어찌됐건, 지금은 꾸준히 글을 쓰는 버릇을 갖추고 싶어선데. 더 이상 어떤 장치를 마련할 필요 없이, 충분히 많은 글을 쓰며 먹고 살고 있다면 계속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요컨대 글을 통한 지속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한 때를 말한다. 그런데 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 뿐이잖아? 난 아마 안될거야. 키워드 하나 툭 던져줘도 쉽게 글을 쓰는 편이긴 하지만, 그 글이 뛰어나다고도. 사람들이 좋아한다고도. 하다 못해, 나라도 재미를 느낀다고도 할 수 없다. 이런 이기적인 글의 형태는 무료 배포라는 형태를 갖추어야지만 그나마 읽어주는 여러분 같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무료 배포가 아닌 개인 브런치나 블로그에 업로드 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미 거기서 외면 받고 상처 받아서 시작한 프로젝트라 이해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버려둘 순 없다. 하나의 훈련이라 생각하고, 뚜렷한 목표부터 설정하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글로 먹고 사는 삶"은 어떤 것인가. 막연하게 산문이면 좋겠다, 정도로 생각했지만 같은 산문이라 해도 그 형태는 무궁무진하다. 당장 돈을 주는 사람은 누군인가? 독자인가 클라이언트인가. 독자라면 대중들에게 사랑 받는 글을 써야 할 것이고, 클라이언트라면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글을 써야 할 것이다. 대중들에게 사랑 받을 자신은 없으니 클라이언트로 좁혀보자. 그래도 큰 기획을 맡은 사람이 있을거고, 그 가상의 편집부가 어떤 큰 줄기를 제안 할 것이다. 작가님 저희 이번 책은 OO에 대해서 써봐요. 그럼 나는 그 OO를, 질리지 않고 다양하게 풀어나갈 수 있는가. 중요한건 하나의 OO를 풀어내는 것도 있지만, OO든 XX든 CC든 QQ든 상관 없이 맡겨만 주세요, 할 수 있어야 프로라는 것이다. 다음 주에는 그 가상의 OO를 선정해서 4~5편의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이번 주는 억지로 끼워 넣자면 <블루레이>가 되겠네요. 주간 윤동규가 언젠가 수익을 창출 할 수 있을 때 까지. 지켜봐줘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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