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롤로노아 조로도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며 밤새도록 이야기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구가 태어난 이후가 삶의 기점이 되는 줄 알았는데, 암으로 크게 아프고 나니까 지금 같기도 하고. 또 다 지나가고 나니까 별거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아 참 그거부터 얘기해야겠네요. 8월에 있었던 갑상선 암수술이 끝나고 9월, 10월간 반 송장 상태로 살아가다가 11월에 방사선까지, 모든 치료가 끝났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쉴새없이 떠벌였지만, 메일만 구독하신 분들도 있을테니까요. 윤동규, 건강히 돌아왔습니다. 10kg 정도 빠졌지만 2주간의 휴가동안 열심히 먹어서 5kg 정도는 복귀했습니다.
2주간의 휴가란 무엇인가? 방사선 치료는 방사선 알약을 먹고 2박 3일간 납으로 막힌 방에 격리되어 몸 속의 암세포를 죽이는 치료가 있었습니다. 암세포야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완벽한 치료를 위해 2주간 요오드 제한식(바다에서 난 모든 것들을 안 먹는 식단. 그 중에는 소금도 있다)을 견뎌낸 나, 못할게 없습니다. 2시간에 한번씩 500ml의 물과 오렌지 주스, 레모나를 먹는 것은 힘들었지만 그마저도 끝이 나고 퇴원합니다. 다만 몸 속에 남아있는 방사선이 5세 미만 아이에게는 위험하기 때문에 1m의 거리를 둬야 합니다. 또한 수건이나 화장실을 분리해서 사용하고, 같은 공간에 오랜 시간 있어서는 안되며… 아 그냥 2주간 떨어져 있자. 그리하여 미소와 지구 도시는 친정에, 저 혼자 집에 있는 상태입니다. 이걸 2주간의 휴가, 일명 최후의 휴가라고 부르겠습니다. 살면서 아이들이랑 2주나 떨어져 지낼 일이 얼마나 있겠어요.
근황처럼 됐는데. 2주동안 ‘휴가때만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처음엔 하루종일 먹고 자고, 하루에 3편의 영화를 봤습니다. OTT로 3편, 극장에서 3편의 영화를 봤는데 한번은 정성일 평론가의 GV까지 포함이었습니다. 애들이 있으면 못하는 확신의 리스트죠? 그리고 그보다 더 불가능한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역시 친구 만나기입니다. 만나지는 못해도 전화통화나 안부 문자 정도는 주고 받을 수 있을텐데 그런거 다 안하고 일단 만나기를 시도했습니다. 만나고 나니 다들 저의 무심함을 지적하며 제가 사회화가 되기를 진심으로 걱정하더라구요. 무슨 고양이 중성화 얘기하듯이 사회화 얘기하지 말라 이거야. 그치만 3년간 안부 한번 안 물어본건 잘못된 것 같습니다. 3년은 지구가 태어난 이후의 시간이고, 한번도 개인적인 일로 약속을 잡아본적이 없었어요. 뭔가 잘못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육아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했어요. 왜냐면 만날 때 마다 느끼는데, 아 역시 좋은 사람은 참 좋다. 내 주변에 남은 사람은, 그 중에도 특히 만나고 싶어져 2주라는 시간 안에 끼워 넣은 사람들은 참 좋은 사람들이구나. 여기서 더 넓히고 싶진 않다. 있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자.
라고 생각해보니, 지금 이 메일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생각났습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2만 2천명도 아니고. 블로그 이웃 263명도 아니고. 유튜브 구독자도, 틱톡도 아니고. 제가 쓴 에세이 하나 읽겠다고 메일 주소를 적어주신 943명. 그리고 실질적으로 메일을 열어주신 397명의 여러분이 떠올랐습니다. 마지막으로 보낸 에세이가 7월달인데 아직도 안 열어봤다는건 그대로 쓰레기통에 향했다는거겠죠? 슬프진 않습니다. 397명도 지나치게 많아요. 그리고 한달에 보낼 수 있는 인원 수가 1000명이라, 400명이면 한달에 두번이나 보낼 수 있잖아요. 덜 읽을 수록 이득을 보는 에세이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요즘 팬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듭니다. 팔로워를 팬이라 볼 수 있을까요? 제가 구글을 즐겨찾기 추가하면 구글의 팬일까요? 옷에 김치국물 묻었을 때 해결 방법을 저장하면, 옷에 김치국물 묻었을 때의 해결 방법의 팬일까요? 팔로우 버튼 한번이 팬을 가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난 2년간 키운 문화컬쳐 라는 부계정은 이제 본계정을 압도적으로 앞질렀습니다. 3만 팔로워를 앞두고 있고, 좋아요 수나 노출 수, 저장이나 공유하기 수도 분에 넘치게 많습니다. 그러나 늘 결핍이 있었어요. 대중문화를 다루는 콘텐츠이다보니, 어쩔 수 없는 질문이 따라옵니다. “정말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맞을까?”, “단지 작품이 유명하니까 좋아해주는 것 뿐이지 않나?”. 질문이라 적었지만, 답은 알고 있습니다. 네. 문화컬쳐가 대단한게 아니라 문화컬쳐가 다루는 작품이 대단한 것 뿐이에요. 어떤 성과를 냈든,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진짜 나의 것은 무엇인가?
최근들어 본계정에 일상을 올리곤 합니다. 최대한 러프하게, 툭 툭 무심하게 올리곤 하는데, 그 반응 역시 무심하게 툭 툭. 좋아요 8개. 조회수 300. 어라 이상하다… 부계정에선 100만뷰 나오던데, 어떻게 300뷰? 어디 고장났나? 숨김 처리 됐나? 하지만 아쉽게도 그게 현실이었고, 괜히 조바심이 난 저는 콘텐츠를 만들어 올립니다. 토크 콘텐츠. 브이로그 콘텐츠. 공간 소개 콘텐츠. 여행 콘텐츠. 사진 콘텐츠. 올리면 올릴수록 조바심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2만 2천명이란 팔로워 수가 저를 비참하게 만듭니다. 팔로워가 100명이라면 300의 조회수가 나오더라도 팔로워의 3배나 되는 수가 본겁니다. 저는 1000이 나와도 팔로워의 5%도 안되는 사람들만 본겁니다. 나머지 95%의 사람들은 저를 철저히 무시하고, 거들떠도 보지 않으며. 단지 팔로우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나를 비참하게 만듭니다. 나를 지켜보는 눈동자들을, 싸늘하고 무신경하게 쳐다보는 눈빛이 느껴집니다. 사실은 아무도 쳐다보고 있지 않는거지만. 없는 사람이 되는 것 보다 무시당하는 것이 무섭습니다. 나 여기 있어요! 대답은 신촌 토끼굴처럼 메아리가 될 뿐입니다. 저는 완전히 고립됩니다.
친구에게 고민을 이야기하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물어봅니다. “그런데 너 부계정은 잘 되고 있다며? 그럼 된거 아니야?”. 뭐하러 본계정까지 잘되고 싶냐는거죠. 그야 2만명이 아까우니까. 블로그로 넘어오세요~ 해도 아무도 안 넘어오니까. 그리고 내가 만든 콘텐츠가 아닌, 인간 윤동규로 사랑받고 싶으니까. 내가 만든게 아닌 내가 예쁨 받고 싶은거, 어찌 보면 당연한거 아니냐? 친구가 고개를 갸우뚱 하며 이상하게 쳐다봅니다. “근데 너가 그 정도로 매력적인게 아니잖아”. 그런가? 나 매력적이라서 팔로워 많았던거 아니야? 아니지, 부계정도 어차피 내가 한거라고 생각 안 하는 것 처럼. 몇백만이 나오든 내가 매력적이라 그런건 아닌 것 처럼. 본계정도 사실은 내가 만든 콘텐츠때문에 큰거는 맞지. 그래 맞네. 내가 그 정도로 매력적인건 아니네. 예전엔 그냥 알고리즘이 예뻐해줘서 뷰가 잘 나왔던거지, 지금은 버림 받았잖아. 친구는 거기서 한마디를 더 붙인다. “그리고 매력적이려고 노력하는 것도 아니잖아”. 음, 할 말이 없구만.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내가 만든 콘텐츠가 나의 매력이 아니라 느껴진다면, 정말 나의 매력은 결국 나의 외모나 내면을 보고 사랑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난 연예인이라도 되고 싶은걸까요? 영화 감독으로 치면, 예능도 나가고 인터뷰도 끝도 없이 하고 다니는 감독인가요? 그런 감독이 있나요? 본업은 거지같이 하면서? 하다못해 김풍도 본업도 아닌 요리로 실력발휘를 한 뒤에 예능을 늘렸습니다. 이사카 코타로, 스티븐 킹, 빌 브라이슨, 우디 앨런, 노아 바움벡, 이시구로 마사카즈, 마츠모토 타이요… 누구 하나라도 본업이 허술한데 입을 잘 털어서 성공적인 사람이 있을까요? 그나마 옛날의 장항준 감독이 떠올랐지만, 그마저도 본업을 훌륭하게 해내는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저는 졸작 개판으로 만들어 졸업도 못해놓고 영화학에 대해 떠들어대는 복학생 선배 같습니다. 저렇게는 안 되어야지, 소리가 환청으로 들리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놓고 정신을 못 차리고 방구석에서 릴스를 찍습니다. 오늘 찍을건 페델리코 펠리니에 대한 내용입니다. 물론 <8과 1/2>한 편 본게 전부입니다. 나머지 내용은 나무위키 찾아볼겁니다.
물론 변명거리도 있습니다. 인간 윤동규가 유명해지면 편하니까요. 제가 하나의 콘텐츠를 진득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다보니, 윤동규는 일종의 허브 역할로서 여러개의 콘텐츠를 연결해서 묶음 배송해주는 쿠팡 기사님인겁니다. 쿠팡 기사님을 사랑해주세요!는 아니지만, 쿠팡 기사님을 기억해주세요! 정도의 느낌이 아니었을까요? 그렇게 변명하기엔 인간 윤동규. 아니, 쿠팡 윤동규가 사랑받길 원했다는 것이 바뀌지 않습니다. 너무 크게 돌려 말하고 있는 것 같네요. 왜 에세이를 구독하고 있는 여러분들이 떠올랐는지에 대해 말하고, 얼른 글을 마치겠습니다. 보자보자 하니깐 끝이 없네요 제가 봐도.
그러니까 전 저의 스타일에 대한 강박이 있습니다. 제가 하는 말, 쓰는 글. 만드는 콘텐츠나 하는 농담, 그리는 그림, 찍은 사진, 편집이나 촬영, 기획 연출 뭐 하나 빠짐없이 스타일이 담겨 있으면 좋겠어요. 가장 흔한 스타일인 헤어스타일과 패션스타일은 뺐어요. 그거는 관심이 없거든요. 그런데 친구의 말을 되새겨보면, 넌 가장 먼저 보이는 외모는 내려놓고선. 왜 좋은 결과가 나오길 바라냐? 조회수가 300이라고? 그럼 넌 딱 300만큼 관심 받는거야. 그게 지금 성적표야. 왜 매력이 없는건 넌데, 매력을 가꾸는게 아니라 매력적인 성적이 나오지 않는 것을 한탄하는거야? 노래를 못 부르는데 왜 슈퍼스타 K에 뽑히지 않는 것을 이해 못하는거야? 물론 이렇게 말한적은 없습니다. 중간 언젠가부터 친구의 핑계를 대며 제가 저에게 하는 말들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만든 스타일 중. 내가 티를 내고 노력하고, 특히나 예쁨 받고 싶어하는 스타일은 예쁨 받을 수 있잖아. 모든 면에서 예쁨 받겠다는게 아니잖아. 나의 스타일을 티낼 수 있고, 이건 내 스타일이야! 외칠 수 있는 그런거. 그런거는 예쁨 받고 싶어. 모든걸 다 욕심내는게 아니야. 이것 만큼은 예쁨 받으려고 해, 하나만 뽑으면 무엇일까? 말인가. 외모인가. 스타일인가. 고민 할 것도 없다. 그것은 글이니까. 인간 윤동규가 사랑받는다면, 자연스럽게 내가 쓴 글도 사랑받을테니까. 최악의 예시지만, 런던의 뮤지엄에서 베이글을 만드는 사장님마저도 책이 부리나케 팔렸으니까. 인간이 사랑 받으면 관련된 무언가가 팔리지 않는가. 그런데 인간이 사랑받기 이전에, 글이 먼저 사랑받으면? 그러면 내가 쓴 다른 글들을 탐닉해주지 않을까. 그것이 대본 형태면 영화고, 주석으로 들어가면 콘텐츠다. 그리고 산문 형태가 되면 에세이고, 바로 여러분이 굳이 메일 주소를 적어 받아 보는 바로 이 형태가 되는 것이다.
이쯤에서 여쭙습니다. 여러분은 어쩌다가 윤동규를 구독하게 되었습니까? 단지 콘텐츠가 좋아서, 라는 이유로는 메일 구독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뭔가 메일로 에세이를 보낸다는게 유행하지 않았었나요? 그래서 엉겁결에 구독하셨을까요? 이 메일을 여기까지 읽긴 했는데, 제가 누구인지 기억이 안 나는건 아닐까요? 아 맞다 생각났다! 생각 난 김에 얼른 가서 언팔해야지, 하진 않으실까요. 솔직히 저는 두렵습니다. 내가 스타일이라고 믿고 있었던, 그리고 팬이라고 믿고 있었던 많은 것들이 무너지는 기분입니다. 그렇다면 그 전에 하고 싶은게 있습니다. 지난 2주동안 친구들을 만났듯이. 나의 스타일을 좋아해주셨던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게 어떤 형태로 어떻게 이어질지는 모르겠습니다. 에세이가 재밌네! 또 쓸게, 안녕!이 될지. 그만두고 인스타도 비공개 계정이 된 채로 사라질지. 이 에세이를 시작으로 또 최선을 다해 우뚝 설지. 새벽 3시의 동규는 그런걸 결정하기엔 너무 약해진 상태에요. 이제 잠에 들겠습니다. 늘 그랬듯이 월요일 점심으로 예약 발행을 걸어놓고. 에세이를 보내겠습니다.
여러분. 가능하시면 왜 에세이를 구독하고 계신지. 어쩌다 절 알게 되었는지, 혹은 어떤 면이 마음에 들었는지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별 생각 없이 구독하셨다면 취소해도 좋습니다. 저에겐 굳이 사랑할 만큼 매력적이지 않은 상태가 디폴트 값이라. 오히려 남아 있는 쪽이, 다음 달의 에세이를 기대하는 쪽이 뭐라 할까요, 약간 괴식 매니아처럼. 구운 벌레가 맛있다거나 마요네즈에 밥 비벼 먹는 느낌으로 수상합니다. 수상한 여러분은 어쩌다가 윤동규를 받아보고 계신가요? 이유를 적어 주시면 별건 아니고. 제가 기분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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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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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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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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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tb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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