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1.
나를 만든 8할은 반항심이었다. 어렸을 때 부터 하지 말라는 것에 매번 불타올랐고, 하라는 것에 늘 짜게 식었다. 그 뒤틀린 정신머리 덕분에, 남들이 좋아하는 것은 일단 이 악물고 싫어했고 남들이 싫어하는 것을 유난히 관심을 줬다. 비주류의 취향은 여기서 시작한게 아닐까. MTV에 <순간을 믿어요> 뮤직비디오가 나올 때, 가요와 다른 그 맛이 아주 그만이었다. 심지어 언니네 이발관 앨범 중 4집이 가장 저평가를 받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2.
이런 나에게도 어이쿠 선생님 네 제가 감히 선생님께 어떻게 반항하겠습니까, 하는 순간들이 꽤나 즐비한데. 풀어 말하자면, 취향이고 반항심이고 홍대병이고 자시고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불가항력적인 작품을 만나면 냅다 큰절부터 올리게 된다. 말해 뭐하겠는가. <슬램덩크>, <드래곤볼>, <비틀즈>, <마이클 잭슨>, <12명의 성난 사람들>같은 부류의 것들. 그것은 취향을 뛰어 넘고, 반항심도 잠재운다. 문제는 그걸 얼마나 일찍 접하느냐에 있다. 늦게 접할수록, 파생된 아류작들에 익숙해져 클래식의 위대함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거든. 뭐 위에 말한 5개 예시는 죄다 지금 봐도 환장하게 좋지만…
3.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건, 좀 뜬금없이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교육에 대한 이야기다. 나같은 인간이 나만 있을리가 없다. 뭐 그냥 저냥 벅스뮤직 탑100 듣고 자란 친구들이 훨씬 더 많겠지만, 마치 지가 뭐라도 되는 냥 작품을 편식하고 근본 없는 우월감에 찌들어 있는 중학생을 다루는 방법은.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존경심>이다. <반항심>은 나에게 꽤나 중요하고, 긍정적인 가치를 심어줬다. 취향에 위도 아래도, 귀함도 천함도 없다 생각하지만. 최소한 확고한 취향을 가지게 된 데에는 이 반항심의 역할이 절반은 됐을거다. 이거 안 들어!의 반항이라기보단 다행히 이거 말고 다른거 들을거야! 하는 반항심이었으니까. 패닉이 달팽이로 1위를 찍을 때, 서지원의 내 눈물 모아를 열창했고. 임요환이 더러운 벙커링으로 홍진호를 압살할 때, 지금은 고인이 된 박경락의 팬이었다. 최소한, 다른건 다 몰라도. <뭔가 좀 있어 보이는 취향>은 가지는 편이다.
4.
그 취향이 <뭔가 좀 있는 취향>으로 올라가기 위해 필요한게 존경심이다. 정확히는 존경심을 가질 수 있는 스승님. 선생님. 은사님. 뭐라 불러도 좋다. 나만의 토리야마 아키라, 나만의 데즈카 오사무를 만나는 것이다. 그것은 반항심으로만 만날 수 없다. 아니! 난 그거 안 들을건데, 같은 태도로는 너바나도 접할 수 없다. 어쨌거나 한 장르를 대표하는 뮤지션인데도, 실리카겔도 너무 대중적이라 싫어하는 중학생에겐 걸러질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약간의 팁을 주고 싶다. 실제로 내가 가장 큰 도움을 받았던 팁이자, 앞으로 나의 인생을 살아갈 근거가 되는 자세.
5.
<존경하는 사람의 취향을 훔치자>. 영화 감독들이 좋아하는 영화. 뮤지션들이 추천하는 음악. 만화가가 즐겨 보는 만화 등등, 나는 이걸 파도 타기라 부르는데. 모스뎁 탈립콸리로 칸예를. 칸예로 커먼을, 커먼으로 제이 딜라를. 제이 딜라로 더루츠를, 어느샌가 소울콰리언에 푹 빠져 있는 나를 발견하는 재미. 이게 파도타기의 묘미다. 중요한건 그 시작점이 되어주는 사람을 정하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을 늘리는 것. 그 사람을 발견하는 것, 그 사람을 찾으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반항심과 존경심을 유기적으로 섞은 이상적인 인간이 되는 방법이다. 고작 취향을 확고하게 만드는 법,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간다면 조금 아쉬울지도 모르겠다. 취향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럼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취향이 전부다? 그렇다면 이 글이 조금은 당신의 파도가 되었기를 희망합니다. 주간 윤동규 마칩니다.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