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1.
위의 분량 까지 녹음한 뒤, 한 손으로 유아차를 끌고 다니는 것이 위험해서 그만두었습니다. 어쨌든 손은 묶여 있지만 입은 뚫려 있을 때의 훌륭한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난 저 때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했을까? 그것을 놓친다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기록일 것이며, 그 코어를 이어 간다면 유의미한 기록 방법으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다행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기억이 납니다. 저의 콘텐츠로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2.
<오구당>이라고, 아시는 분들은 아실 수도 있는. 하지만 최근 1년 사이에 저를 구독하기 시작하신 분들은 모르기 쉬운 콘텐츠가 있었습니다. 미소와 제가 연애를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담은 브이로그 시리즈였지요. 지구가 태어나고 나서, <지구당>이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도 파고. 콘텐츠를 1번부터 다시 시작했었지요. 미소가 <오구당>은? 하고 물어봤지만, 나는 “이제부터 지구당이야!”같은 소리를 내뱉었습니다. 이게 얼마나 바보같은 일인지에 대한 생각을 저 스스로에게. 그리고 몇몇 해당될지도 모를 여러분에게도 전하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좋은 말씀 전해드리려 왔어요, 문 좀 열어주세요.
3.
말하자면 결국 지구도 소재일 뿐입니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대화 주제로 쳤을 때. “유아차를 몰며 음성 녹음 기능으로 글을 썼다”라는 것은 소재에 불과해요. 여행으로 치면 기차나 비행기, 음식으로 치면 돼지고기 앞다리살 같은 것입니다. 물론 재료 그 자체가 핵심인 음식도 있겠지요. 그러나 지금 저의 꼴은, “맛있는 재료가 들어왔으니 가게 이름을 바꾸자!”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뭐 영 이상한 소리는 아닐지도 몰라요. 뻥튀기 전문점이 갑자기 마라샹궈를 팔 수는 없잖아요. 그런 정도의 구분은 필요합니다. 소재는 주제를 받쳐주니까요. 하지만 <오구당>과 <지구당>은, 연인과 자녀라는 소재만 다르지. 결국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만들어진 기획이었습니다. 오늘은 지구가 출연 안하니 오구당, 오늘은 미소가 없으니 지구당. 이게 얼마나 웃긴 기획입니까? 등장인물에 따라 달라지다니요. 그 핵심 코어는 묶여 있는데.
4.
같은 이야기면서도 아닐 수 있는게. 가끔 우리는 소재가 주제를 뛰어 넘는 순간을 마주합니다. 서문에서 다뤘던 일본 청춘 영화를 비롯해, 나에게는 치트키 같은 이야기가 있어요. 그런 이야기를 다뤘다는 사실만으로 별점 5점을 먹고 들어가는 작품들. <블루 자이언트>를 트레일러도 보지 못했지만, 음악 영화라는 점에서 별점 4점은 박고 시작할 수 있습니다. <커미트먼트>같은 작품도 태생부터 4점인 영화입니다. 음악 영화도 좋은데, 심지어 다큐멘터리다? 그런데 그게 오아시스다? 환장하겠네, 이건 무조건 4.5점은 줘야지! 짜잔, <슈퍼 소닉>은 2점입니다. 사실 2점도 많이 줬다고 생각합니다.
5.
결국 이 어수선한 산문을 정리해보자면. 소재는 결국 취향의 반영입니다. 성장 영화를 싫어해도, 발레를 좋아해서 <빌리 엘리어트>를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서부 영화를 싫어하지만, <장고>같은 작품에 사랑에 빠질 수 있는거지요. 무엇이 우선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언뜻 소재에 열광하는 사람을 무슨 초보자나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서툰 사람 취급하는 듯 이야기한지도 모르겠는데. 우리가 뭐 빨간 안경 쓰고 영화 평점 매기고 돈 받는 사람도 아니고. 취향대로 좋아하고 소재 보고 열광합시다. 다만, 소재와 취향을 작품성과 혼동하는 것은 조금 아쉽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있긴 합니다.
6.
...오구당 이야기는 왜 한겁니까?
Part 2
이번 주는 인스타그램으로도 질문을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사연>과 <질문>이 주는 무게감은 다른 것 같았어요. 정작 제가 대하는 태도는 다를 것 없었지만요. 몇몇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올 지도 모르는 질문을 꼽아봤습니다.
1.
선생님이 무엇이 모자란지는 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외모도 직업도 성격도 모릅니다. 그러니 제가 드릴 수 있는 조언은 하나뿐인 단서를 물고 늘어지는 것 뿐인데요. 목표가 없으면 목표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목표가 무엇인지 목표 자체의 매력에서 조금 멀어져 봅시다. 매력적인 목표 말고, 목표를 달성하는 매력을 생각해봐요. 조금 덜 개같은 삶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제법 근사한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기력하잖아요? 그럼 무기력한 나도 할 수 있는 하찮은. 그러나 은근히 이겨내기 어려운 딱 맞는 응애 난이도의 목표를 설정합니다. 믿어봐요, 제가 그 무기력에 2년은 시달렸던 경력이 있습니다.
2.
처음 했던 시도는 <일어나기>였습니다. 잠에 들기는 목표로 삼기에 쉬워 보이지만, 사실 온갖 잡념과 후회로 점철된 하루를 이겨내고 제 시간에 잠에 드는 것은 달성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건 다음으로 미루고, <일어나기>를 해보는건 어떻습니까? 사실 일어나기 위해선 잠들기를 달성해야 하지만, 극단적으로 잠을 줄여보거나. 혹은 잠을 자지 않기까지 하면서, 일어나기를 위한 발버둥을 쳐보세요. 단순 일어나기만 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면, 일어난 시간에 어떤 행동을 하세요. 조조영화 보기, 뭐 산책하기. 제 경우엔 이태원 커피스미스에 출근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서 뭘 할지는 정하지 않아요. 일단 일어나고, 카페로 가는 것. 얼핏 나도 좀 부지런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상쾌하고 매력적인 시작이었습니다.
3.
그리고 그때 만들어진 뮤직비디오가 스텔라 장의 <컬러>였습니다. 일단 일어나서 카페엔 갔는데. 여기서 뭐 휴대폰 게임을 하면 창피한 것 같고. 영화 같은걸 보는 것도 좀 눈치 보이고. 심심한데 기획안이나 써볼까? 하는 정도였지요. 어, 이거 진짜 찍으면 재밌겠는데? 잠깐만 이번에 공모전 대상 탄 돈 있잖아. 이걸로 충분히 찍지 않나? 이따 집에 가는 길에 로케좀 둘러보자.
4.
스스로 근사할지도 모른다는 착각은 점점 저를 진짜로 근사한 사람으로 만드는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 물론 진짜 근사한 사람은 아닌거 저도 알아요. 하지만 그런 착각이 나를 조금 더 살 맛 나는 삶으로 걸어가게 하는 뭐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뭐에 재미를 느끼시는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뭐에 재미를 느꼈을 때 움직일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보시오. 미생에서 뭐 그런 이야기 나왔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요. <미생에 나온 명대사 찾아보기>정도를 목표로 두는건 어떠십니까.
1.
미워하기가 어려우신겁니까, 아니면 미워하는 자신이 싫으십니까? 제가 멋대로 해석해보면, 사람을 미워하는 스스로가 싫기 때문에, 쉽게 사람을 미워하지 못하고. 그래서 상대방 잘못임을 알지만 끝내 스스로가 상처 받고 끝나는 상황 맞나요? 저는 대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해준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매번 누군가를 싫어한다고 입 밖으로 내뱉을 때 마다 떠올려요. 선생님에게도 그런 말로 자리잡으면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사람 싫어하지 마라. 니가 싫어하는 만큼 니를 싫어할거다”
얼핏 들으면, 그냥 남 욕하지 마라 정도로 끝나는 말이지만. 저는 마치 유레카라도 외친 듯 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 죄책감 가질 필요 없이, 싫은 새끼는 싫어하자. 내가 누구 싫어한다고 뭐 하늘이 두 쪽 나고 천지가 개벽하고 이런거 아니다. 그냥 내가 싫어하는 만큼 누군가도 나를 싫어하는 것 뿐이다. 그 누군가가 누구겠냐? 당연히 저새끼가 아닐까? 내가 저새끼 싫어하는 만큼, 저새끼도 나를 싫어한다고 가정해보면. 오히려 저새끼는 나를 싫어했으면 좋겠는데. 저새끼가 나 때문에 맨날 밤에 잠 못자고 저주를 퍼부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마음이 드는 사람은 실컷 싫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친구의 조언은 그게 아니었을 것 같지만요.
2.
말하자면 미워함이 먼저가 아니라. 미움 받고 싶음이 먼저일 때가 있습니다. 저 새끼가 내 뒷담화 하고 다니면 짜릿하겠는데? 하는 사람을 미워하세요. 저 사람한테 미움 받고 싶지 않아. 그런 사람을 미워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미울 수 없습니다. 미워하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에요. 밉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요, 뭐 외모가 근사하다던가 좋은 추억이 있다던가 나에게 이득이 있다거나. 중요한건, 그런걸 다 뛰어 넘을 만큼 역겨운 포인트가 없기 때문에 싫어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저는 인생에 역겨울 정도로 싫어하는 사람의 슬롯을 5개 정도 마련해 놓습니다. 고등학생 때 같은 미술학원 친구 50명의 뒷담화를 해대던 노 모 씨가 첫번째 슬롯이었고. 야자시간에 자기랑 밥 같이 먹으면 돈 준다던 김 모 씨. 그래도 내가 팀장인데, 아니라 생각 들어도 내 말 좀 반영해주면 안되냐고 때쓰다가 지가 하라 한 부분에 문제 생기니까 그대로 나한테 뒤집어 씌우던 인간 무능력 그 자체인 우 모 씨. 회사에서 파벌 만들고 일진처럼 왕으로 군림하려고 일 할 시간에 윗사람들 똥꼬만 빨다가 이간질 하는거 걸려서 개처럼 털리고 옥상에서 질질 짜던 전 모 씨. 잠깐만 이제 한 자리밖에 안 남았네요? 김 모 씨는 이제 놔줍시다. 얼굴도 기억 안 나는데.
3.
뭐 대충 이런 식이에요. 저의 미움 방식은. 5개 밖에 없으니까, 아껴서 미워합시다. 진짜 미운 사람을 위해 남겨놔요.
1.
갑과 을로 나뉘어지지 않는 관계가 건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을을 자처한다고 해도, 상대방이 쉽게 을로 있게 하지 않을거에요. 존중과 사랑을 받으면, 누가 갑이고 을인지에 대한 생각 할 일이 없습니다. 불안함을 달래주고. 무서움을 위로해주고. 지친 선생님에게 힘을 주는 사람을 만나세요. 자신을 바꿔야만 가질 수 있는 관계는 그냥 연애 서바이벌 조별리그 통과 정도입니다. 자신을 바꾸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을 만나보세요. 아니 생각해봐요, 조금만 기분이 안 좋아 보여도 불안해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면. 조금도 기분이 안 좋은 티를 내지 않는게 보통 아닙니까? 상대방을 불안해 하도록 냅두는 사람은 애초에 연애 대상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약간은 저 스스로 반성하기 위해서 하는 말 같기도 하니, 너무 재수없게 보진 말아주세요. 이거 꼭 “바람의 기준은 스킨쉽의 여부가 아니라 여자친구가 속상해 하면 그게 바람이야 병신아”짤이 떠오르네요. 아무쪼록 원만한 합의 보시길 바랍니다.
인스타 스토리로 받은 질문까지 해보려니까 이거 분량이 무슨 열어보기도 싫은 양이네요. 그, 스토리로 받은 질문은 다음 주로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질문 한 사람들이 이걸 구독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혹시 저요 저요 나 구독하고 있어요 하는 사람이 있으면 디엠 주세요.
아니 그냥 주간 윤동규 구독중이면 아무나 디엠 좀 줘봐요, 이거 누가 읽고 있긴 한거야? 주간 윤동규 33주차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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