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정도 확실한 여유시간이 생기면 글을 쓰는 편입니다. 두시간 넘게 여유가 있으면 편집을 한다거나, 촬영을 하거나 쉬거나 영화도 볼 수 있고 어디 다녀올수도 있지만 한 시간은 애매합니다. 그리고 보통 회사 점심시간이 딱 한시간입니다(혹시 한 시간, 한시간 띄어쓰기가 좀 신경쓰이시나요? 저는 띄어쓰기 무쓸모론자로서 의도적으로 섞어 쓰는 중이니 신경쓰여도 좀 참아주세요). 이것 저것 다 해봤는데, 글쓰기가 만족도가 가장 높았습니다. 확실한 하나의 아웃풋이 나오고. 그 아웃풋을 바로 올릴 수 있고, 글쓰는데 한시간이 모자란 경우는 잘 없으니까요. 시간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시간을 잘 쪼개는 사람부터 궁리하는게 좋습니다. 한시간치 열정, 두시간치 열정, 하루치 열정을 구분해서 사용하는거죠. 열정이 있다면요
그런데 이쯤에서 고민이 생깁니다(어찌보면 고민을 위한 고민인 것 같기도 하구요, 나 고민중독이네). 똑같은 점심시간에 쓰는 한시간인데.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시간, 똑같은 글을 쓰는데. 어떤건 블로그에 휘뚜루 마뚜루 올라가고, 어떤건 브런치에 조금 정성들여 올라가고. 또 어떤건 월에 한번 보내는 뉴스레터에 올라가고. 심지어 어떤건 청탁을 받아 원고료를 입금 받고 종이책에 인쇄되기까지 합니다. 이럴수가! 이래도 되는건가요? 똑같은 시간, 똑같은 마음가짐인데. 결과물의 활용이 이렇게 달라도 되는건가요? 아마 안 되지 않을까요? 뉴스레터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제가 고민이라고 하는게 바로 이 <똑같은 마음가짐>입니다. 같은 한시간이라고 해도, 마음가짐이 다르면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한시간과 회식 끝나고 우연히 지하철 방향이 같아 옆 부서 팀장님과 어쩔 수 없이 같이 가는 한시간은 같을 수 없잖아요. 같은 글쓰기 라는 행위를 했다고 해서, 같은 결과물이 나오진 않습니다. 그러니 저의 마음가짐이 똑같다고 할 수는 없을겁니다. 아무래도 한달에 한번 쓰는 글에 조금 더 성의를 보이겠죠. 원고료를 받으면 최선을 다한 성의, 원고료가 쎄지면 쎄질수록 슈퍼 짱짱 최선을 다한 성의가 들어갈겁니다. 그런데 왜 <똑같은 마음가짐>이라 표현했느냐. 여기선 제 추구미라는 개념이 들어갑니다.
정확히는 <똑같으려 노력하는 마음가짐>인겁니다. 블로그에 올리든, 브런치에 올리든, 뉴스레터에 보내든, 책에 실리든, 뭐 아무데도 안 올라가고 그냥 심심해서 쓴 글이든 뭐든간에. 제가 쓴 에세이는 모드 같은 마음가짐으로, 더하거나 덜거나 하는 것 없이 평온한 글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이건 일종의 운동선수나 연주자, 연기자를 향한 동경입니다. 연습실에서의 나와 무대에서의 내가 한결같았으면. 리허설때의 나와 본 촬영때의 내가 똑같았으면. 일종의 <글을 쓰는 삶>이 체화되어, 그것을 연기하지 않아도 이미 그러고 있는 상태가 되었으면 했습니다. 왜냐면, 그 편이 더 매력적이니까요. 추구미라는게 원래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조금만 더 추구미에 대해 떠들어도 될까요? 원래 오타쿠들은 누가 물어보지도 않은 것들을 이야기하기 좋아합니다.
일종의 어떠한 경지. 달관. 초월. 해탈 같은 열반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없는것은 아닙니다. 속세의 사정에서 벗어나 단지 나의 길을 걸어가는 것. 얼마나 멋져요. 그치만 전혀 벗어나지 못해놓고 그런 척만 하는건 코스프레 이상이 될 순 없잖아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 코스프레를 하고 싶은겁니다. 그런 사람인 척 하고 싶은거에요. 그럼 그런 사람이 된다고 믿으니까요. 그런 사람이란 무엇이냐? 힘을 주지 않는 사람입니다. 평온하게 온화하게 할 일을 하는 사람.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 그러다 보면 지나온 길이 숲이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매사에 모든 작업이 그럴 순 없겠죠. 유튜브 콘텐츠를 찍는 것과 뮤직비디오를 찍는 것. 영화를 찍는 것에 마음가짐의 차이를 벗어 던질 자신은 없습니다. 그러니 글쓰기만큼은. 글쓰는 것 하나만큼은 평온하고 싶다는 욕심인거죠. 제 추구미, 어떻게 좀 이해가 되셨을까요?
안타깝게도 경지에 오르지는 못해서. 100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쳤을 때, 늘 8-90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20이었다가 70이었다가 어떤 날은 100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차라리 줄곧 50인 사람이 좋습니다. 왜 100을 다 토해내야 해? 100은 그렇게 쉽게 나오는게 아니야. 하지만 난 쉽게만 살아가도 재미있어 빙고인 사람이고, 어려운 100보다 쉬운 50이 좋습니다. 애초에 어렵게 썼다고 100이 나오지도 않습니다. 슬프지 않겠습니까? 힘들게 썼는데 대충 쓴거랑 비슷하다니요. 근데 다 그렇습니다. 노력한 만큼 확실한 보상이 따라오는건 공부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전 확실한 보상 만큼만 노력하겠습니다. <한 시간 동안 글을 쓴다>. 그리고 <글쓰기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이것이 제가 지키고 싶은 자세입니다.
뭐야, 고민이라 해놓고 지 혼자 북치고 박치네?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이건 제 추구미일 뿐이고. 이 추구미를 사람들이 좋아할지 아닐지는 또 모르겠습니다. 난 이 옷이 멋지니까 입겠지만, 사람들도 멋지다고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은 가질 수 있잖아요? 나만 멋진건가 너희 눈에도 멋진가. 물론 구리다고 해서 안 입을 생각은 없지만 최소한 나쁘지 않네 정도의 이야기는 듣고 싶은 마음인겁니다. 이번 월간 윤동규 뉴스레터는 이런 마음가짐으로 쓰여졌습니다. 왜 그걸 굳이 이야기하냐면, 그래도 월간이잖아요. 월에 한번 나가는 글인데, 매일 매일 쓰는 흔한 글과는 차이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압박에서 벗어나겠다는 선언입니다. 차이 없습니다. 이거 그런 특별한 글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만 읽을 수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특별할 순 있겠네요. 제 글이 특별해서 뭐하겠어요. 이걸 읽는 여러분이랑 이걸 쓰는 제가 특별하면 됐지. 월간 윤동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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