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확률로, 시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쭉. 그런 생각이 든다. 시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흠모하는 편에 가깝다. 그렇다면 시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 고쳐 쓰는 것이 좋겠다. 나는 본디 시가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다. 지나치게 멋스러운 것을 외면하려 한다. 진심을 다해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에 쑥쓰러움을 느낀다. 그것을 예쁜 포장지에 담아내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한다. 그 안에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차라리 냄비로 쉽게 만드는 꼬들밥 레시피가 시적으로 적혀 있다면 마음껏 음미했을건데, 사람의 마음을 시라는 형태로 표현하는 것은 심적 거리감이 8차선 도로를 무단횡단 하는 것 보다 멀게 느껴진다. 그 증거로 지금까지 나름대로 시적으로 적어보려 했는데, 두가지 사실을 알았다. 1. 난 시적인걸 좋아하지 않는다. 2. 그리고, 시적인게 뭔지도 모른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까봐 참았지만, 여기까지 읽었으면 내가 시를 힘들어 하는 것이 전해졌으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시는 느끼하다. 담백하고 좋은 시도 있지만, 담백하고 좋은 산문은 그보다 제곱은 더 많다. 세탁기나 청소기 메뉴얼도 담백함으론 지지 않는다. 소설로 가면 어떻고? 느끼한 소설은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어 알라딘 고객이 오늘 판 책으로 향한다. 하지만 시는 담백함이 필수 조건이 아니다. 담백함을 원하는가? 병원식을 드세요. 물론 시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하는 얘기라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선입견으로서. 몇 권 안 읽어본 나로선. 유명한 시 몇개만 얼핏 본 나로선, 시 낭독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 했던 나로선. 느끼함 없는 시는 커피 없는 카페보다 더 낯설게 들린다. 커피 안 파는 카페도 있긴 있으니까요.
커피 없는 카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부산의 남포동의 한 골목에 인테리어가 상당히 특이한 카페가 있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 마치 화장실에 들어가 있는 듯 한 인테리어였다. 다행히도 꽤나 부자집 화장실. 아마 모든 벽이 타일 패턴이어서 그랬겠지만, 구석 구석 느껴지는 디테일이 화장실처럼 보여지려 노력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도대체 왜 그랬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카페에선 따로 주문을 받지 않았는데, 앉은 사람들 수에 맞춰 음료가 준비되는 시스템이었다. 어차피 메뉴가 하나 뿐이고 1인 1주문이 원칙이니, 주문을 받는다는 행위가 무의미했다. 그리고 그 메뉴 하나는 다름아닌. 내 기억이지만 나도 믿을 수 없는. 혹시 그 날 하루만 임시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아니면 그냥 내가 여우에 홀린 것일지도 모르는(그도 그럴게, 다음 번에 또 방문하려 했으나 가게를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메뉴는 바로 바로-
시는 이런 식으로, 이야기 도중에 옆길로 샐 수가 없다. 물론 기본적으로 옆길로 새지 않는 것이 좋지만, 샐 수 있는데 안 새는 것과 샐 수 없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나는 특히나 옆길로 새는 것을 좋아한다. 한참 글을 쓰다 보면 ‘그러고보니 나 원래 무슨 이야기 중이었지?’하고 돌아보는 기분이 좋다. 어차피 다시 그 주제로 돌아갈 생각도 없으면서 형식적으로 주제를 되새기는 보여주기식 퍼포먼스가 마음에 든다. 여기서 난 일종의 자유를 느낀다. 시는 글을 짤주머니로 짜내어 케이크 위에 쓰는 느낌이다. 케이크를 벗어나선 안되며, 글씨가 엉망 진창이어선 안되며. 획이 일정해야 하고 색감도 좋아야 한다. 나는 케이크를 집어던지고 페인트 마카로 거리에 낙서를 하고 다니고 싶다. 나에겐 케이크가 너무 좁은 것이 아니다. 단지, 케이크와 짤주머니가 아니어도 글을 쓸 수 있는 곳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것을 까지 않으려고 한다. 정신 차려보니 시를 까고 있는데, 정확히는 시를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시, 당신은 무엇이길래 이토록 어렵고 난해하고 느끼하신가요. 내가 당신을 제대로 본거라면 당신은 몹시 느끼한 것이며, 내가 당신을 오해하고 있다면 당신은 몹시 어려운 것입니다. 뭐가 됐든 당신이 어렵다는 것은 바뀌지 않습니다. 사실, 당신의 가장 큰 매력이 어려운 것에 있습니다. 어렵기 때문에 어떻게든 정복하고 싶어요. 하지만 느끼하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쉽지 않네요, 시라는 것은.
어찌보면 대부분의 것들이 저에겐 시와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뭔지 잘 모르기 때문에 두렵고. 하지만, 멋있기 때문에 가까이 가고 싶고. 느끼하기 대문에 멀리 하고. 하지만 궁금하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고. 그러다가 생각보다 느끼하지 않잖아, 생각보다 어렵지 않잖아. 생각보다 더 멋있잖아! 여러가지 이유로 새로운 것을 시작하거나, 하던 것을 멈추고는 합니다. 어찌보면 저의 재능은 그런 것들을 궁금해 한다는 것에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요. 데이빗 보위와 비틀즈, 서핑이나 테니스, 히치콕 오에 겐자부로 뭐 이런 것들이요. 하나밖에 없던 메뉴는 바나나 주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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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초요정
느끼하지 않은, 담백하고 (의도하지 않았다해도)유머러스한 동규님의 글이 좋아요 :) 앞으로도 시는 쓰지 말아주세요 ㅋㅋㅋ
월간 윤동규
하나 써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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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규
저는 개인적으로는 수필도 좋지만 시가 더 좋더라고요 ㅋㅋ 시는 한 문장 문장 읽을 때 마다 깊게 반추해보면서 느껴지는 감정 심상들이 남기는 여운이 좋더라고요 다만 수필은 전반적인 맥락을 파악 하는 글이니깐 이런게 덜하고요 (도파민 때문에 긴 글 못 읽는건 비밀 ㅋㅋ)
월간 윤동규
오 추천하는 시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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