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윤동규 46주차

런치 타임 에세이

2024.02.05 | 조회 4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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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윤동규

한 주간 쌓인 쓰레기들을 공유합니다

1.


이 악물고 패션을 멀리했다. 아,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주간 윤동규의 경우 일종의 독자를 향한 편지의 개념을 가지니, 존댓말을 써야 하지 않나? 하고 자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치만 존댓말을 쓰는 만큼 글의 양이 늘어나고, 정작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쓸 공간이 줄어들잖아요? 그렇다고 애매하게 1200자 쓰기 이런건 좀 짜치니까, 마음만은 존댓말로 하고 그냥 반말 하는걸로 합니다? 물론 이런 사족 안 붙이면 존댓말로도 충분히 할 말 다 하는거 알고 있습니다. 그치만 이게 제 할 말이기도 하니깐요. 어쨌든 패션을 멀리한다. 패션에 관심을 가지더라도, 어이쿠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며 학을 떼고 애써 관심을 지운다. 이건 일종의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편견과 아집으로도 볼 수 있다. 왜냐면 주구장창 "인간은 외면보다 내면이 아름다워야 한다!"라고 외치며 살았기 때문. 그런데 말이에요, 패션이 과연 외면인가요?

터무니 없는 소리. 패션은 내면이다. 내면, 그 중에서도 정말 깊고 코어한 내면이다. 얼핏 겉모습을 치장하는 도구 정도로 비하하기 쉬운데, 그 겉모습을 치장하는 도구를 선택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냥 어디 302호 김씨 아저씨가 골라주는가? 아니, 하다못해 김씨 아저씨가 골라준다 해도 나이 찬 성인이라면 "난 김씨 아저씨가 골라주는 옷을 입어"라는 취향을 가진다고 봐야 한다. 취향까지 갈 것도 없다, 그것은 인간의 자유의 영역이다. 말하자면 패션은, "패션에 신경쓰지 않는 것" 혹은 "패션을 싫어하는 것"까지도 패션이다. 이걸 부정하고 나는 패션이 싫어요~ 내면의 아름다움을 꾸며요~ 말하고 다니는 놈들을 조심하라. 당신이 정말로 패션을 싫어하고 그것을 몸소 실천하고 싶다면 입고 싶은 옷이 없음은 물론, 입기 싫은 옷도 없어야 한다. 이제 우리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거울을 보며 외쳐보자. 나는 옷을 잘 입고 싶은데 못 입어서, 패션을 싫어하는 척 했어요! 적어도 나는 그렇다. 반성하는 의미의 산문을 시작하려고 한다. 오늘의 키워드는 <패션>입니다. 맙소사. 윤동규가 패션 이야기라니. 

 

 

2.


먼저 나의 취향을 파헤쳐보자. 내 패션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부산대학교 앞 보세 옷가게에서 마주친 밝은 회색 짚업 후드티였다. 그냥 흔하디 흔한 후드티였지만, 무려 지퍼가 형광 연두색으로 되어 있는게 아닌가! 나는 당시에도 패션에 열광하는게 조금 창피했기 때문에, 소극적인 자세로 직원에게 입어도 되는지 물어봤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이즈가 없어서 못 샀다. 하지만 집에 가서도 생각나고, 다음 날에도 생각나고, 그 다음 날에도 그 멋진 형광 지퍼 후드티가 아른거리는게 아닌가. 이렇게까지 날 흥분시킨다면 그것은 가져야 하는 것이다! 확신을 가지고 다음 주말에 곧바로 부산대학교를 향했고, 드라마틱하게 가게가 문을 닫았다거나 하면 좋겠지만 사실 잘 기억은 안 난다. 어쨌든 못 샀다는게 중요한거니까. 

물론 같은 제품을 지금 본다면 절대로 사고 싶진 않다. 기본적으로 난 나의 취향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믿지 않는다. 이거 멋있다, 좋다고 샀다가 옷장에 쳐박혀 있는 옷이 1열 종대로 운동장 두바퀴다. 물론 과장이지만, 사서 입는 옷과 버리는 옷의 비율이 비슷한 것은 거짓이 아니다. 늘 같은 옷만 입고 다니는 것 같지만, 옷에 대한 애착보단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는 능력이 부족할 뿐이다. 헌옷 수거함에 들어간 옷들이 기부금으로 치면, 이번 연말정산때 환급 좀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런 날들을 지나며. 결국 난 나의 취향이나 확신을 멀리 하고, 무난하고 나쁘지 않은. 좋진 않지만 그렇다고 막 싫지도 않은 것들에 시선을 두었다. 지금 가장 좋아하고, 내가 가진 옷의 8할을 차지하는 브랜드는 유니클로다. 그것만으로 내 패션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유니클로에서 옷을 사 입는 사람, 이라는 것으로 사람이 설명이 된다니. 브랜드의 힘이란게 참 대단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마무리하기엔 오늘의 산문이 너무 빈약하잖아요? 다음 편에서 패션 이야기의 마무리를 지어보려 합니다. 

 

 

3.


최근에 관심이 가는 패션은 아웃도어다. 하지만 야외 활동을 일절 하지 않는 나에게 아웃도어는 뭔가 살짝 주제넘은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방수도 되고 수납이 짱짱하고 땀이 잘 배출되어요! 그래요? 나는 집에만 있어요. 그런데 그런 기능적인 요소들을 차치하고서라도, 확실히 매력적이다. 처음엔 뮤지션 죠지의 <Boat>뮤직비디오를 보고 이렇게 입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아주 천천히 브랜드에 관심이 가면서 패션을 넘어선. 아니지, 비주얼을 넘어선 패션의 철학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냥 보고 예쁘면 끝이지 뭐, 가 아닌. 소비자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그것을 패션이 어떻게 만족시켜 주는 것인지. 입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던 옷이, 마치 내 삶을 증명하는 도구로서 쓰이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익숙한 기분이다. 익숙하긴 한데 언제 익숙했더라. 뭐더라, 뭐였지... 그러다가 결국 떠올랐고, 저는 반성하고 있습니다. 맞네, 카메라 살 때의 나 같네.

이젠 카메라와 옷의 공통점에 대해서 써야 할 것 같다. 조금은 내 영역이 들어가서 신이 난다. 말하자면, 둘 다 몹시도 기능적인 것들이 중요하다. 해상도, 센서 크기, 화각, 조리개, AF, 내장 ND 필터, 배터리 성능. 옷으로 치면 땀 배출, 세탁, 착용감, 소재, 수납, 통기성 등등 옷알못인 내가 미처 모르는 수많은 기능들이 담겨 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건, 기능 외적인 것들이다. 카메라랑 비교하는데 기능 외적인걸 따지면 어떡해요!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난 최근 1년간 풀프레임에서 크롭으로. 크롭에서 1인치로. 1인치에서 1/2.5" 로 성능적인 다운그레이드만 가져갔다. 이유야 간단한데, 그게 더 나에게 잘 맞기 때문이었다. 기능적인 아쉬움은 존재한다. 하지만 좀 추워도, 좀 더워도 입고 싶은 옷을 포기하지 않는 것 처럼. 자신이 추구하는 코어한 무언가를 갖고 싶어 하는 것에는 무어라 설명 할 수 없는 깊은 동기가 작동된다 생각한다. 브랜드는, 그리고 패션은. 그 동기를 건드린다. 마치 더 젋고 더 키가 크고 더 어깨가 넓은 남자를 두고 배 나온 아저씨와 사랑에 빠지는 것 같기도 하네요. 안 빠질 수도 있구요. 

 

 

4.


이렇게 글을 쓰면, 그냥 결국 긴 글을 나눠 올리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패션이란 주제가 제대로 마무리 되지도 않았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이 악물고 다른 주제를 떠올려봤지만, 그보다 늘 하는 것 처럼 그때 그때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을 건져 올리는게 효율적이더라. 그리하여, 점심시간에 글을 쓰는 것은 몹시나 행복한 시간이다. 우리가 살면서 온전히 혼자서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는 때가 얼마나 있나? 출근 후의 사무실에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알트 탭을 눌러가며 글을 쓴다고 해도 이 불편한 마음을 안고 살아야 한다. 그럼 퇴근 후에는 어떠냐고? 육아가 기다리고 있는데 잘도 글이나 쓰고 있겠다. 그것은 아내분이 허락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허락 할 수는 있겠지, 아니 오히려 나서서 하고 싶은거 다 하고 오라고 하지. 그런데 나의 글은 기본적으로 수익성도 없고, 어떠한 가치를 가지지도 못한 온전히 자위행위일 뿐이다. 자위 좀 하려는데 한시간만 써도 돼? 라고 물어보는데 허락한다 하더라도, 찝찝하고 불쾌할 뿐이다. 밤에 잠 잘 시간 아껴가며는 물론, 아침 일찍 출근해서 사람들 없을 때도 자기계발은 모르겠지만 자위는 그리 달갑지 않다. 

그리하여 찾은 나만의 시간이 바로 점심시간이다. 내가 밥 안 먹고 자위한다는데,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있는가. 물론 조금 비약해서 그렇지, 이 시간에 글도 쓰고 콘텐츠 대본도 쓰고 편집도 하고 공부도 하고 영화도 보고 만화책도 보고 다방면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이다. 자위의 예를 들었던 것은 단지 한심하게 써도 용서 받는 시간이라는 뜻이다. 중요한건 꼭 유용하고 쓸모 있게 써야만 하지는 않는 것. 여기서 오는 해방감이 상당히 만족스럽다. 아마 정 배고프면 자리에 앉아 와퍼를 뜯어 먹는 한이 있어도, 이 시간이 주는 중독성에서 벗어날 생각은 없다. 키친 테이블 노블 처럼, 저는 런치 타임 에세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글 역시 점심시간에 쓰여졌습니다. 네? 밥이나 먹으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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