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윤동규 36주차

규칙을 위한 규칙

2023.11.20 | 조회 5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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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윤동규

한 주간 쌓인 쓰레기들을 공유합니다

Part 1


1.
규칙적인 삶에 대한 일종의 막연한 동경이 있습니다. 한창 야근에 찌들어 살던 직장인 때. 오늘 열심히 했으니까 빅맥 하나 정도는 먹고 자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찾아간 맥도날드에서 한 대학생을 마주합니다. 새벽 1시가 넘어가는데 후드티에 수면 바지. 그리고 노트북을 하나 들고 슬그머니 과제를 시작하더라구요. 그 모습이 뭐랄까, 대학생때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지만 직장을 다닐 때엔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당연히 그 이유는 아니었지만, 여차 저차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지내는 시기에. 그 대학생이 이유가 되었는진 몰라도, 새벽 늦게 24시간 카페로 출근하고. 남들 다 출근하는 아침에 설렁 설렁 퇴근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습니다. 마치 시간을 내 입맛대로 쓸 수 있는 자유를 가진 냥. 프리랜서가 참으로 적성에 맞다고 착각하고 살던 날들이 있었지요. 그것은 뻑킹 게으른 잉여인간에 불과했습니다.

2.
프리랜서를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그 시간을 온전히 쓸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정해준 수업만 듣던 고등학생의 첫 수강신청과도 같았습니다. 내가 하나 하나 직접 시간표를 짜야 하지요. 다른 점이라면 같이 시간표를 짤 친구가 없다는 것. 어디 이렇게 짜야 한다고 알려주는 선배도 없다는 것. 시간표대로 출석하고 시키는 과제 하고 채점 해주는 교수도 없다는 것. 심지어 시간표를 짜지 않고 한 달 내내 놀고 먹어도 뭐라 할 사람 하나 없다는 것입니다.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개인작업 조금. 먹고 살긴 해야 하니까 외주 조금.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죄다 잠과 야동,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카페에서 죽치고 있는 날들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3.
단적으로 저는 프리랜서와 맞지 않습니다. 그날 밤 맥도날드에 가는게 아니었어요. 물론 이렇게 남 탓 할거 없이 그냥 게으름을 인정하면 되는거지만, 그렇다고 내 갖다 버린 시간들을 누가 보상해줄건데? 더 이상 나같은 피해자는 없어야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프리랜서는 누구보다 부지런한 사람, 계획적인 사람. 체계적인 사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돈독이 오른 사람이 가져야 하는 직업일 것입니다. 월 30만원만 벌어도 만족하던 인간은 프리를 논할 자격이 없다 이거에요. 지금 무슨 만원의 행복 찍습니까?

4.
그리하여 직장에 들어가고, 여차저차 꼬박 꼬박 들어오는 월급 맛을 알아버린 저는 이제서야 시간을 조금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루에 24시간을 쓸 수 있던 때엔 오히려 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만, 고작해야 2시간 남짓 자유 시간을 가지는 지금은 밥 먹는 시간도 쪼개가며 에세이, 대본 작업, 개인작업 편집이나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시간 은행 같은게 있어서, 프리랜서 시절에 내다 버린 시간들을 지금 꺼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루에 더도 말고 딱 3시간의 여유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 이 글의 시작이 되어 준. 규칙적인 삶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습니다.

5.
말하자면 어떻게든 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하루에 조금의 여유 시간이 있다고 한들, 그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은 나에게 달려 있다. 이건 프리랜서 시절과 다를게 없습니다. 24시간을 쪼개냐 2시간을 쪼개냐의 차이일 뿐이에요. 저같이 시간을 허투루 쓰는데에 달인의 경우, 이왕이면 적은 시간을 계획할수록 내다 버리는게 없겠죠? 돈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듯 합니다. 사치스러운 인간에겐 하루 용돈 100만원보단 만원이 안심이잖아요. 그럼 제 아무리 흥청망청 윤동규도 빅맥 세트는 무슨 노브랜드 버거로 향하게 됩니다. 사실 조금 흥청망청 써도 돼요, 나머지 시간은 육아와 직장으로 채웠잖아요? 하지만 그런 나른한 생각이 저를 망친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6.
말하자면 직장을 다니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퇴근 후 맥주 한잔에 피로를 풀어요. 직장을 다닌다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히 대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대단히 대단한 정도로 만족하고 싶지 않아요. 모두가 다 하는 그 대단한 일, 그냥 대단하다 치고 이제야 인간답게 사는 출발섬에 섰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조금 더 특별한 사람. 내가 원하는 나를 만들기 위해선 매일 한 걸음으 더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게 뭐냐? 네 아까 말한 그 두시간입니다. 점심시간에 밥을 굶으면 세시간은 되겠지요. 잠을 아끼면 네시간도 될지도 모르지만 잠을 아껴서 얻은 시간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 고로. 저는 하루 3시간을 규치적으로 사용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우디 앨런, 오에 겐자부로 모두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쓴다고 합니다. 제 경우엔 글만 쓰는 일이 아니다보니 어느날엔 글도 쓰고, 어느날엔 촬영. 또 편집. 이론을 공부하거나 그림을 그릴 때도 있습니다. 레퍼런스도 찾아봐야 하고, 이 모든건 야근하지 않는다. 혹은 육아가 순탄하게 흘러간다는 가정 하의 계획입니다. 언제든지 조져질 수 있는 계획이지요. 그렇지만 그런 계획이라도, 규칙적이고 싶습니다.

7.
그 규칙은 제가 알아서 잘 짜보고. 다음에 기회가 될 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에세이를 투 두 리스트나 브레인스토밍 연습장으로 사용한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도 조금은 있습니다. 애초에 <규치적인 삶에 대한 일종의 막연한 동경이 있습니다> 한 줄로 시작된 이야기니까요. 그럼 여기까지 읽어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다음 주에는 그래서 어떤 규칙을 만들었는지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성장하는 저를 지켜봐주세요. 이 에세이 장르 성장물인가요? 주간 윤동규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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