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윤동규 38주차

사람을 싫어합니다.

2023.12.04 | 조회 5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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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윤동규

한 주간 쌓인 쓰레기들을 공유합니다

Part 1


0.
사람을 무턱대고 싫어하는 편이다. 딱히 편견같은거 없이, 그냥 일단 싫어한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라는 생각에서 이 악물고 한 걸음 더 나간다. 말하자면 사람을 싫어하려고 노력한다. 어쩌다 이런 꼬인 인간이 되었는지를 서술하시오(5점).

1.
최소한 타전공 수업때 옆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연락처를 물어보던 대학생때는 달랐다. 무슨 골든 리트리버마냥 사람이 좋아서 헥헥거린 정도는 아니라도, 최소한 싫어하지는 않고. 심지어 좋아하려고 노력하기까지 했었다. 첫인상이 별로거나 목소리가 듣기 싫다는 등의 생각이 스치면 급히 고개를 저으며 '아니야! 그런 선입견으로 사람을 대하지 말자!'하고 자책하기도 했다. 실제로 경해나 동일이 같은 인상이 마냥 좋은 친구들은 덮어놓고 좋아했고, 다혜같이 좀 쎈 캐릭터들은 거리를 두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결론적으로 친해졌으니, 일종의 극복이라 봐도 되지 않을까. 모든 사람은 알고 보면 괜찮은 사람이다! 인간 찬가를 외치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2.
그런 내가 어쩌다 인간 혐오로 빠져들었는가? 거기엔 감정적인 이유가 하나. 그리고 몹시나 계산적인 이유가 하나 들어선다. 사실 글을 쓰는 지금 시점에는 아직 모르지만, 일단 하나씩만 꼽으면 되니까 뱉어놓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감정적인 이유는 <좋아하다가 싫어지면 낭패다>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생각해봐라. 누군가 당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날인가 슬슬 거리를 두고 밥도 같이 안 먹으려고 한다면. 상처 받지 않겠는가? 상처 수준이겠나, 그 배신감에 평생 원망하고 마음의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처음엔 당신을 싫어하는 줄 알았던 사람이 최근 들어선 이것 저것 주전부리를 권하거나 안 쓰는 물건이라며 선물을 가져다 준다거나. 어쩌다 같이 지하철을 타게 됐는데, 자리를 양보한다거나 하면 금새 좋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3.
그렇다. 결국 시작보다 중요한건 나중의 감정이다. 처음에 좋은 사람인걸 유지할 수 있으면 문제 없지만, 십중 팔구 사람은 사람에게 실망을 하게 되고. 초장부터 좋아해버리면 결국 평생 싫어함을 숨기거나, 배신을 때리고 가식적인 사람이 되거나 둘 중 하나다. 둘 다 비극이다. 그러나 초장부터 싫어해버리면? 계속 싫으면 역시 안목이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고, 나중에라도 좋아지면 첫 인상은 별로였는데 알고 보니 진국인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 어떻게 봐도 싫어하는게 이득이다. 말하고 보니 감정적인 이유가 곧 계산적인 이유로 이어지는 것 같긴 한데, 아직 하나 더 있으니까 기다려봐요. 

4.
두번째 이유는 감정의 책임감이다. 기본적으로 이 사람은 어떻다, 하고 판단을 내리면 자신의 판단에 책임을 져야 한다. "저 집 카레는 맛 없어!"라고 뱉는다면, 그 집 카레가 땡기더라도 참을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어쩔 수 없이 먹었는데 어라 존맛 이라도 괜히 인상 쓰며 퉤퉤 거려야 한다. 그래야 한다는 규칙은 없지만, 본디 사람은 자기가 뱉은 말을 지키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무게감이 생긴다. 결국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 없는데, 그걸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한없이 가벼워 보인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둘 중 어떤 감정이 책임감을 가지고 지키기에 더 좋을까? 물론 정답은 좋지도 싫지도 않다 겠지만, 매사에 그렇게 한발 빼고 접근하다보면 회색분자 소리 듣기 십상이다. 이봐요 제가 사람 싫어한다는 주제로 글을 써서 어쩔 수 없으니까 편 좀 들어주세요. 싫어하는 사람을 계속 싫어하는건 그리 큰 부담 없지만, 좋아하는 사람을 계속 좋아하는건 꽤나 소모적이다. 그 사람의 좋은 점을 계속해서 찾아야 함은 물론이고, 싫은 점을 발견한 뒤에도 애써 모른 척 해야 한다. 하지만 싫은 사람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모른 척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달콤한 외면이고, 계속해서 싫은 면을 찾아내는 것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행동이다. 좋은게 좋은거라고. 싫었던 사람이 결국 좋아지면 이보다 더 좋은게 어디 있을까?

5.
이런 주제의 글을 써야겠다고 얼추 생각하고 나름 꽤나 오래(1시간 정도) 글을 썼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아먹었다. 글을 쓰면서 생각하는 스타일은 우연히 얻어 걸리면 꽤나 괜찮은 글이 나오지만, 지금처럼 말아먹으면 한도 끝도 없이 말아먹게 된다. 최근 스티븐 킹의 산문을 읽고 있는데, 그 부드럽고 자유분방한 문장들이 여간 부러운게 아니었다.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새벽 4시에 잠에 든 지구 덕에 3시간 밖에 못 잔 나의 상태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뭐가 됐든 변하지 않는 것은 이번 편은 매주 월수금 타는 쓰레기에 내놓아도 반려당할 정도로 형편없는 글이라는 것과. <주간 윤동규>의 정신은 이런 형편없는 글이라도 계속해서 쓰게 하는 일종의 강제성이라는 것이다. 처음 써내려간 주제와 끝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떠벌이는 것 또한 하나의 매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은 뻔뻔하게 주간 윤동규 마칩니다. 왜냐면 이제 곧 퇴근 시간이거든요. 네? 저 덕분에 사람이 싫어질 것 같다구요? 그럼 저 대신 사람 싫어하는 것이 매력적인 이유 좀 생각해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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