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윤동규를 마칩니다. 사실 저번 주에 최종편을 적었다가 이게 맞나 하는 생각에 주저하느라 보내지 못했습니다. 보내지 못한거엔 보내지 못한 이유가 있다 생각하고, 굳이 다시 첨부하진 않겠습니다. 담담하게 그만둔다는 이야기만 하고 싶지만, 그냥 힘들어서 내빼는구나? 하고 생각하는게 조금 억울하잖아요? 그래서 핑계는 좀 대기로 합니다?(제 물음표로 끝나는 문장들은 <롤러코스터>의 안과 의사의 대사 “바지는 안 벗기는걸로 합니다?”를 생각하고 읽으시면 됩니다”)
사실 별건 아니고. 애초에 주간 윤동규의 시작은 워낙 여기 저기 다양한 플랫폼에 콘텐츠를 올리다보니, 한 곳에 모아보기 위해서 전달하는 뉴스레터였습니다.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브런치, 블로그까지. 그걸 하나 하나 구독하고 챙겨보진 못해도, 주간 윤동규를 구독하면 한 주에 올라오는 콘텐츠 소식은 들을 수 있습니다. 땡기는게 있으면 눌러 보시오. 그러다가 콘텐츠가 그리 부지런히 올라가지도 않고, 같은 내용을 플랫폼만 다르게 업로드하게 되며 자연스레 사라졌지요. 이걸 대충 시즌1로 칩시다. 창간호는 22년 6월 29일에 발행되었네요. 나름 역사가 있습니다.
그렇게 흐지부지 되었다가, 23년 8월 28일. 에세이의 형태로 새롭게 시작한 주간 윤동규 시즌2는, 사실 기본적으로 독자보단 작가를 위한 프로젝트였습니다. 꾸준히 글을 쓰고 싶고, 그렇다고 혼자 자위하는 내용보단 독자의 눈치를 보는. 어느정도 완성도를 갖추는 글을 쓰고 싶었지요. 그런데 글 쓰다가 갑자기 생각나는건데, 혼자서 만족하는 작업을 자위로 비교를 많이 하잖아요? 근데 그럼 대중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작업은 섹스입니까? 10만명이 본다고 생각하면 무슨 1:100,000 섹스에요? 이거 비유가 좀 이상합니다. 그러니까 자위만 쓰고 섹스는 안 쓰겠죠?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따위 글을 쓰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했고. 주간 윤동규의 1000여명의 구독자는 저에게 아주 좋은 보험이 되어 주었습니다. 쓰기 싫어도 써야만 하고, 대충 쓰고 싶어도 최선을 다하도록 해주었지요.
그리고 그만두는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쓰기 싫어도 써야만 하는 연재처가 생겼고. 대충 쓰고 싶어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일입니다. 주간 윤동규의 구독자보단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읽습니다. 자연스럽게 더 신경써서 글을 쓰게 될 것이고, 잘 쓴 글은 확실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을겁니다. 운 좋으면 원고료도 받을 수 있구요. 계정을 키을 수도 있습니다. 뉴스레터 형식은 반응이 좋다 하더라도, 더 많이 확산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제 본진(주로 인스타그램)을 더 키우는 수 밖에요. 그럴거면, 본진에다가 글을 쓰는게 낫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그렇게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까지 오래일 필요도, 이렇게까지 사랑해주실 필요도 없는데도 과분한 사랑 감사합니다. 저도 여러분에게 과분한 사랑을 드렸으니 쎄임 쎄임이라 치고 좋게 좋게 끝냅시다. 행사나 촬영장에서 만날 때 “저 주간 윤동규 구독자에요!”라고 하시는게 마치 진짜 찐팬이다, 하는 인증 같아서 유쾌했는데 그건 좀 아쉽게 됐군요. 앞으론 “저 주간 윤동규 구독자였어요”라고 하시오. 이만 마칩니다. 50회, 끝내기 딱 좋은 숫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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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영
무려 50회의 연재! 고생 많으셨어요. 새로운 연재처(본진)에서의 더 멋진 글도 응원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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