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먹는 나
1호를 발행하고 3개월이 흘렀다. 덥고 습한 날씨로 연신 흐르던 땀을 훔치다가 옷으로 꽁꽁 싸매고 다니는 계절이 되었다. 여름에서 겨울로. 1호가 발행되고 벅찬 마음에 2호 계획을 야무지게 세웠었다. 9월에 초고를 쓰고 10월에 퇴고를 하고, 11월 2퇴고와 발행 작업을 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그려봤다. 삶이 계획대로 된다면 수많은 변수들이 서운해 하겠지, 라는 변명을 붙잡고 11월 28일 초고 작업에 나섰다.
“네 원고가 있으면 다음 호 발행도 할 수 있어.”라는 하동 친구의 말을 1호를 발행하고 마음에 새겼다. 약 2년 4개월만에 0호에서 1호가 된 우리의 이야기. 다시 시작한만큼 그리고 내 이야기를 해보자 마음먹은 만큼, 또다시 구덩이에 파묻혀 주저앉기 싫었다. 나는 그동안 틈틈이 그 말을 떠올렸다. “내 원고 = 다음 호 발행”이라는 공식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그걸 잊지 않으려고 9월 1일, 뉴스레터에 쓸 글감을 모았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기나긴 시간들을 버텨내고 존재할 수 있었는지- 그때마다 어디에서 용기와 힘을 얻었는지에 대한 조각들이었다. 마침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보고 난 후였고 그것과 뮤지컬 3편을 엮어보면 어떨까 하는 글감이었다. 이 4편의 작품으로 내가 어떻게 셀프코칭을 했는지(이건 다음 호에서 coming soon–). 그러다 셀프코칭 경험형 전시 [자문자답(自問自答) 展 : 나를 발견하는 여행]을 준비하게 되었다.
“지역에 코칭을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2013년에 코칭을 알게 되고, 2017년 코칭 교육을 이수한 후부터 내가 품은 질문이다.
그러다 우연히 유익한상점의 한옥 뒷편 반투명 창고를 고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창고를 활용하고 싶어서 단장하는 중이라고 했다. 무턱대고 “저 자문자답 전시를 해보고 싶어요. 12월 20일부터 1월 13일까지요.”라고 말했다. 내뱉은 일정은 god 윤계상 씨의 생일부터 god의 데뷔일이었다. 중학생부터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위로를 받고 힘을 냈던 것처럼. 가장 힘들었던 2014년 그들의 재결합 콘서트에서 에너지를 받은 것처럼. 내가 무언가를 표현하고 선보이고 싶을 때 작게나마 그들에 의지하며 나아가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었다. 그렇게 도전이 시작되었다.
9월 19일 ~ 22일 사이 구두로 함께 할 동료를 섭외하고 10월 20일은 단장을 마친 유익한상점의 창고를 사전답사했다. 10월 29일에는 두 동료에게 정식으로 전시 초청 메일을 발송했다.

11월 4일과 11월 7일, 두 번에 나눠 동료와 장소 미팅을 했다. 그들과의 이야기를 나눈 후, 내 내면에서 올라오는 말은 같았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왜 할까? 나는 이 프로젝트로 사람들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사유하는 경험 +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삶 + 문화의 다양한 선택지
그것을 코칭을 통해서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자기 자신의 코치가 되어 질문하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우리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들을 흘려 보내지 않고, 때때로 붙잡으면서 더 나은 하루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의 방향이 아니라 각자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동료와 첫 미팅을 마치고 써내려간 모닝페이지에 그동안 코칭 주제로 꺼낸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 주제에 나만의 답들을 써냈다.
“나는 내가 꿈꾸던 것을 세상에 펼치는 게 좋아. 현장. 그 속에 있는 나는 생기와 활기로 가득해. 그토록 갈망하던 협업할 동료가 있고, 바라던 공간이 있으며, 꿈꾸던 콘텐츠가 있으니 해보는 거지. 난 역시 현장이 좋아.”
누군가는 이번 전시 이야기를 듣고 사람이 많은 서울에서 하는 게 낫지 않냐고 물었다. “지역에도 사람이 있어. 나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엄마밥을 먹으면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면 좋겠어. 그 경험으로 자신이 무얼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할 때 행복한지를 알았으면 해. 지역에도 문화의 다양한 선택지가 있길 원해.”라고 답했다.

내 아명. 콩예. 콩 팔아서 예술하라는 의미인가, 싶다. 가을에 부지런히 판 땅콩값으로 전시 예산을 준비했다. 작고 소중한 예산 안에서 해내고 싶은 것이 많아서 부대낌이 많은 요즈음이다. 전문 녹음실에서 음성 가이드를 녹음하고 싶었고, 전시 공간도 포근하고 따뜻하게 만들고 싶었다. 현실이 녹록치 않아서 아쉬움이 커져만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고 싶은 것은 코칭도 하나의 문화콘텐츠가 될 수 있을거라는 희망. 책을 보듯이,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처럼 일상에서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뮤지컬 [호프 :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의 빛날거야 에바 호프 노랫말에 이런 구절이 있다.
“자신을 더 읽어 봐 (...) 너를 누구보다 아껴왔던 네가. 네 인생에 써 줬어. 당신은 알아. 이미 알고 있어. 당신이란 책을 제대로 읽어봐. 그 속엔 네가 잊었던 문장이 많아. 넌 수고했다. 넌 충분하다. 넌 살아냈다. 늦지 않았다.
앞으로 써나갈 이야기가 더 많아. 시작이 아냐. 잠시 멈췄던 거야. 반전은 항상 마지막에 있어. 내가 아닌 너의 이야기로 채워. 누구보다 빛나는 결말을 맺어. 빛날거야 에바 호프”뮤지컬 [호프 :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 중에서
완벽하게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때때로 나를 멈춰 세운다. 내가 이걸 진짜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자신이라는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붙잡는다. 전시까지 2주 정도가 남았다. 서툴고 부족해도 응원 받고 싶다.
잘 해내고 있다.
[홍보]

놀기 위해 태어났다.
여수에 살고 있지만, 여기가 내가 계속 살 곳인지 모르겠다.
다른 지역을 기웃거리고 있다.
적게 일하고 시간과 자유를 버는 생활작업자로 산다.
문화기획, 코칭, 농(農)을 기반으로 지역의 일상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인다.차화진
광활한 초원에서 마주한 평안, 아름다움
여행은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새로운 경험을 찾는 예술적 행위다. 그 행위는 안락하지만은 않지만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순간, 삶에 뜻밖의 경험을 펼쳐 보인다.
순천에서 2년 여 정도의 직장생활은 규칙적이고 안전했다. 그 규칙 안에서 어느 정도의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기도 했다. 편안함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시점, 그런 익숙함이 오히려 불안을 만들었다. 변화지향적 삶을 살던 내게 그런 익숙함과 안정감은 변화를 더이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태로 만드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때즈음 떠난 곳이 몽골이었다.
몽골은 한마디로, 불편함 자체였다.
도심을 벗어난 광활한 초원에서의 숙소는 '게르(Ger)'다. 텐트와 집의 중간 형태인 게르는 간이침대만 놓여져 있었고, 우기를 비웃듯 쏟아지는 장대비가 샜고, 게르 바닥 뚫린 틈으로 들어온 바람은 한 여름의 밤도 쌀쌀하게 했다. 화장실은 게르 밖 외부 공용화장실을, 이동 중에는 흙바닥 위에 판자로 엮은 간이 화장실을 이용해야했고, 따뜻한 물은 간헐적으로 나왔고, 유심칩은 소용없이 인터넷은 연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포장되지 않은 흙길, 비포장 도로를 쉴새 없이 달리는 덜컹거리는 차 안에 몇 시간씩 몸을 맡기는 것과 고기가 주를 이루는 식사는 여행이 끝나는 시점을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했다.
하지만, 이 모든 불편함은 역설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뜻밖의 선물'이 되었다.
익숙한 도시의 안락함을 잠시 내려놓고 낯선 땅으로 향하는 그 발걸음은 ‘뜻밖’을 향해 열려있었다. 몽골 초원의 밤- 간이 침대에 의지해 누워 있을 때 편리함이 얼마나 큰 장막이었는지 깨달았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르는 초원의 바람 소리, 빗소리, 밤새 우는 방목 동물의 소리, 닿을 듯한 뭉게구름과 무엇보다 별이 쏟아져 내릴 듯한 하늘과 고요를 선물했고, 몽골의 올레길을 걸으며 우연히 만난 강물을 가로지르는 젖소들은 동화 속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무엇보다 초원에서 만난 몽골 사람들은 소박하고 따뜻했다. 게르 주변을 산책하다 마주친 아저씨는 도시에서 미술선생님을 하다 은퇴 후 유목생활을 하고 있음을 띄엄띄엄 영어로 소통했고, 별이 아름다운 장소를 알려주었다. 한국에서 공부하고 왔다는 가이드는 몽골의 위대한 역사부터 현재까지를 자세히 소개해주었고, 이르면 만 세 살부터 말을 탄다는 아이들은 자랑하듯 말을 타고 빠르게 달렸다. 또 푸르공을 운전하는 아빠와 그의 어린 아들은 여행객의 인증사진을 따라 찍으며 웃음을 선사했다.
특히, 게르 주변에서 뛰어놀던 아이들, 초원의 벤치에서 책을 읽던 아이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스마트폰도, 화려한 장난감도 없이 그저 맨몸으로 초원을 달리고, 말과 낙타를 타고, 양떼를 몰며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온 낯선 이방인에게 편히 다가왔다.
가장 단순한 곳에서 만난 소중한 것들
몽골에서의 삶은 아름다워 보였다. 걷다보면 숲 속에서 강물을 가로지르는 젖소를 만나고, 해 질 녘 게르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그리고 밤하늘의 쏟아지는 무수한 별과 은하수들은 인간이 감히 흉내낼 수도 없는 가장 완벽한 설치 미술처럼 느껴졌다.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어린 은중을 집으로 바래다 주던 어린 상학은 좁은 골목길을 카메라에 담으며 “예쁘다”고 말한다. 그런 상황에서 어린 은중은 어린 상학에게 “여기 살면 예쁘다 안 해요. 모르니까 그러지.-”라고 말한다. (사이) 어린 상학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사진 찍고 또 예쁘다고 말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나도 몽골에서 살아보지 않아서, 척박한 환경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여행을 와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문득, 움찔했다. 낯설음 자체가 아름다울 수 있기에.
하지만, 어린 은중이 상학이 내민 카메라 렌즈를 통해 골목을 보며 “예뻐-” 라고 말하는 것처럼, 어린 상학이 실제로는 골목이 아니라 어린 은중에게 말했을 수도 있는 “예쁘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아름답다고. 그 아름다움이 이방인에게 평안을 줄 수도 있다고.
뜨거운 물이 귀하고, 전기가 제한적이며,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는 환경, 벗어나지 않으면 소중한 줄 모르는 익숙한 환경, 그 곳에서 벗어나자 따뜻한 차 한 잔, 해가 진 후 켜지는 작은 전등, 그리고 함께 여행하는 이들과의 대화가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게 다가왔다.
다시, 순천에서 새로운 '선택'
몽골 여행을 돌아보며 '선택'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나오시마가 예술을 선택하여 불편함을 감수하고 방문하게 만드는 섬이었다면, 익숙함을 버리고 뜻밖의 여행지인 몽골을 선택하여, 불편함 속에서 빛나는 순간들을 경험했다.
그리고 다시, 순천에서 새로운 ‘선택’ 앞에 놓여있다. 2023년 뛰어들어 순천과 남도의 음식과 정서를 먹고 느끼며 2년 여 보낸 일을 마무리하고 2026년을 안식년으로 ‘선택’했다. 언젠가 순천에서 했던 다양한 시도를 소개할 수 있는 계기가 있기를 바라며, 이번에는 어떤 내적, 외적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안식년을 이어가기로 했다.
내 삶에 가장 빛나는 경험을 선사했던 곳은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다. 2015년 막연한 기대감으로 처음 방문하고, 2017년 온전히 느끼겠다며 다시 방문했던 곳. 그리고 2026년 다시 에든버러를 찾을 준비를 하고 있다.
덧,
촌에서 태어나 논둑길을 가로질러 학교를 다녔다. 서울에서 미술, 문학, 축제, 공연, 문화기획, 미디어 등을 20년 가까이 공부하고 일했다. 도시에서 만난 사람을 만나면 도시 말투를 쓰고 촌에서 만난 사람을 만나면 촌 말투를 쓴다. 도시가 편하고 익숙했지만 태생이 촌이라 도시가 맞지 않는다고도 종종 생각했다. 촌으로 온 지 2년 가량 되었지만 도시의 풍족함이 그리워 종종 놀러간다. 촌에 살며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기로 했다. 당분간.
문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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