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남을
불편하게 하는 말은 절대 못 하는 사람이었어요. 빨리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출발해야 다음 일정에 늦지 않는 상황에서도 상대의 이야기를 끊지 못해서 지각을 하기 일쑤였고요. 남에게 부탁도 잘 못하고 거절도 잘 못하는 사람이었어요. 특히 뭘 사러 가게에 갈 때면 굉장한 '환영'을 받았답니다ㅎㅎㅎ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고, 그랬다가 남에게 미움받지는 않을지 두려웠어요.
그러면서도
스트레스받지 않고 그냥저냥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불행히도 저는 남들이 저를 함부로 대하는 것에 굉장히 예민한 호구였어요. 어떻게 하면 더는 무시당하지 않을지 연구를 거듭한 결과! 몇 년 후에는 기어이 조금씩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데요,
구독자님, 인터넷에서 그 사진을 보신 적이 있으세요? 아주 여리고 순수해 보이는 사람이 사실은 '기존세', 그리고 짙은 화장을 한 사람은 사실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는 짤이요. 전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지금까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구나! 저런 화장을 하진 않았지만, 남에게 화를 내면서 나를 지키고 있었구나! 하고요 ㅎㅎㅎ
내가 상처받지
않으려고 남을 짓밟고 무시하면 당장 그 싸움에서는 이길 수 있어도, 인생에서는 질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그 짤 속의 여려 보이면서도 할 말은 하는 사람들은 웃고 있었어요! 다른 사람으로부터 상처받지도 않고 남에게 상처 주지도 않는 경지에 이른 것 같았어요. 그리고 저 상태가 진정 '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구나 생각했죠.
그 뒤로는
어떻게 하면 내가 지지 않을지를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냥 어떤 순간에도 나를 내 중심에 두는 것을 연습했어요.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내려놓고, 남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도 내려놓고, 그냥 이기든 지든 나는 언제나 나라는 사실을 늘 상기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렇게 하니까
점점 자연스럽게 상대가 나를 무시하거나 기싸움을 걸어올 때 당황해서 내 여유를 상대에게 넘겨주는 일이 적어졌어요. 상대의 여유를 뺏어서 내가 이기고 싶었을 때에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에요.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기술(?)이지만, 최대한 말로 표현해 본다면 이런 과정인 것 같아요. 상대가 내게서 원하는 것을 얻고자 내 존엄성을 건드리려고 하면, 그것에 흔들리지 않고 내 페이스를 지키면서, 나도 상대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정중하지만 분명하게 표현하는 거예요. 그러면 신기하게도 다시 저를 공격하는 일 없이 대부분 이야기가 잘 풀리더라고요!
제가 이번 생에
제 이상향이던 '기존세'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보다는 남과 나를 상처 주는 일에서 자유로워진 것 같아서 만족스러워요. '기존세'까지는 아니어도 기가 조금 센 '기조세' 초식동물은 된 것 같아서 퍽 편안합니다. 이렇게 또 하나 발전했구나 싶어서 뿌듯하기도 하고요! 구독자님도 최근에 발전한 모습이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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