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취, 영감, 즐거움과 추락의 비슷한 얼굴

*이번 주부터 오브레어를 토요일 오전에 보냅니다. 앞으로는 구독자님의 주말을 함께 열어볼게요. 👀

좀 예전에 인터넷에서 유행한 짤인데.. '호사분면' 아시죠?

이 짤이 한참 유행할 때 저는 '대리 연차'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주위 선배들과 임원(..)분들을 호사분면에 따라 분류하는 작업에 열을 올렸던 것이 기억나요. 그런데 저처럼 주위 사람을 분류해보신 분들은 아실텐데, 대략 이런 구조가 나옵니다. 호랭이가 채찍질해서 끌고 가면, 호구가 서포트하고, 호로새끼는 꿀을 먹는(?) 그런 구조요. 그래서 각 그룹의 포션에 따라 조직의 분위기나 성장이 정해지는 것 같아요. 호랭이가 많으면 경쟁적이고 야근을 자처하는 분위기가 되고, 호구가 많으면 다소간 정체되는 분위기가 되는 것 같아요. 호로새끼가 많으면 뭐.. 얼른 탈출해야죠.

여기서 가장 희귀한 타입은 '호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호인'은 정말 없어요. '호인'을 힘들게 찾아내면 보통 곧 퇴사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간혹 과장까지 호랭이였는데 한 번 크게 아프고.. 호인으로 거듭나시는 예도 본 것 같고요. 제 주위에서 일 좀 잘한다는 사람들의 반응을 떠올려 봐도, 스스로를 '호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호랭이'로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뭐 회사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우리는 ‘천재’, '높은 역량'과 ‘어진 성품', '사회성’은 양립하기 어려운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실제로 그런 사람이 많지 않나요? 하는 생각은 개개인의 경험적.. 사실에 기반하는 것이니 차치하고, 콘텐츠에서도 천재를 그런 식으로 많이 그리잖아요. 똑똑하고, 자기 분야의 역량은 엄청난데. 싸가지가 없어. 사람들 무시해. 친절하지 않아. 뭐 그런 식으로요. 그런데 일생의 사랑을 만나게 되고.. 사실은 속으로 외로웠음을 깨닫고.. 이런 내 곁에 남아준 사람은 니가 처음이고..👀

그리고 현실에서 그런 사람을 보면, '그래도 일은 잘하니까', '그래도 노래는 잘하니까', '연기는 잘하니까', '그래도 돼(?)'라는 식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조금 옆길로 샌 얘기지만 <위플래쉬> 플레쳐 선생이 ‘참스승’으로 둔갑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고요.

반면 ‘성공', '직업적 성취'과 ‘자기파괴적 취미', '약물 중독’은 반드시 붙어 다니는, 어쩌면 거의 인과관계에 가까운 가치들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 또한 많은 실존 인물들, 할리우드 스타들(아니 사실 할리우드까지 갈 것도 없죠..!)과 엄청난 부를 갑자기 갖게 된 사업가들이 몸소 이런 사례를 보여주기도 했고요. 아마도 수많은 영화, 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그들에게서 영감을 받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겠어요.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지난 달에 공개된 <홀스턴>은 미국의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 '홀스턴'을 주인공으로, 그가 가장 높이 떠오르는 시기부터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시기까지 그의 성취와 삶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홀스턴에게는 자기 이름을 딴 '홀스턴'이라는 브랜드가 있었대요. 저는 솔직히 이 브랜드를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는 몰랐어요. 로이 홀스턴이라는 디자이너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시리즈에서 언급되는 다른 디자이너들, 미국의 오스카 드 라렌타, 앤 클라인, 프랑스의 이브 생 로랑, 지방시, 에마뉴엘 웅가로, 피에르 가르댕과 그들의 브랜드는 알고 있고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하니, 음 나 빼고 다 아는 유명하고 훌륭하신 디자이너이신가 보다.. 하고 일단 시리즈를 보기 시작했어요. 

그간 많은 영화와 시리즈물에서 패션 업계, 실존 인물인 디자이너를 주인공으로 삼아서 '이 업계의 명과 암', '천재인데 까칠한 디자이너' 혹은 '영감을 얻기 위해 약에 손을 댐', '우연히 만든 제품으로 큰 성공을 거뒀고, 부자가 되고나니 흥청망청 파티를 즐기며 약을 하기 시작했음', '힘든 시절에 같이 으쌰으쌰한 친구들이 하나 둘 떠나감', '결국 말년에 외로워짐' 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를 이미 많이 보여줬잖아요. 그리고 그건 거의 '패션업계물' 장르의 클리셰처럼 자리를 잡았고요.

<홀스턴>의 이야기도 비슷한 모양으로 흘러가요. 그래서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가 딱히 궁금하지 않습니다. 실존 인물을 다루기는 했지만 저는 로이 홀스턴이라는 디자이너를 몰랐잖아요. 그런데도 굉장히 예상대로 흘러가요. 브랜드 '홀스턴'의 라이센스를 소유한 사업체의 대표 데이빗 마호니가 분명한 악당의 역할을 하고, 복선을 굉장히 직접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초반 에피소드들은 홀스턴의 유년 시절 기억이라든가, 모자 디자이너로 처음 대성공을 거뒀다가 그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는 과정, 거기서 얻은 레슨런을 복기하는 것 같은 모습, 명성을 얻기 시작하면서 데이빗 마호니와 손을 잡기 직전까지 고민하는 모습 같은 부분을 보면 이전에 봐 온 작품들과 다르게 풀어 나가는 것 같아서 흥미로웠거든요.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이야기는 점점 더 익숙해져만 갑니다.

정작 이 시리즈에서 빈번하게 언급하는 것은 홀스턴이 ‘자기 이름을 지키지 않은/못한 디자이너’라는 것인데요. 홀스턴은 부족한 자본 때문에 고통받고, 밭은 타임라인 앞에서 코너에 몰려 데이빗 마호니와 처음 손을 잡았고, 이후 커리어가 급격히 나락으로 떨어질 때, 한 번의 계약으로 그의 이름을 딴 브랜드의 사업권을 타인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아마 제작진도 홀스턴의 삶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지점은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 막상 시리즈는 그가 불행한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을 자극적으로 묘사하는데 더 초점을 두는 것처럼 보여요.

시리즈가 공개된 후에 홀스턴의 가족들이 이 드라마 속 홀스턴의 행동들이 '부정확하고', '소설화'됐으며, 이 시리즈가 제작되는 동안 제작진으로부터 한 번도 연락을 받거나 감수를 의뢰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또 과거에 'Norton Simon'에서 PR 담당 임원으로 재직하며 데이빗 마호니와 함께 일한 David Rosendale은 시리즈에서 왜곡한 홀스턴과 데이빗 마호니 사이의 몇 가지 사실에 대해 밝히는 글을 기고했어요. '데이빗 마호니가 시리즈에서 묘사된 것처럼 그렇게 악한 사람은 아니다'라는 논조고, 왜 밝혀야만 했는지 이해가 충분히 가는 것들도 있더라고요. 이것조차도 과거의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 일부 영화들과 그 영화들을 둘러싼 논란과 닮아 있는 모습처럼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홀스턴>이 가진 매력을 찾아보자면, 패션, 예술, 음악계가 구분 없이 함께 일하고 즐기던 70년대 뉴욕의 화려하고 자극적이고 가끔은 극단적인 비주얼이 눈을 사로잡는다는 점이에요. 뉴욕이 왕창 내려다보이는 통창으로 둘러싸인 홀스턴의 사무실도 그렇고요. 그리고 홀스턴을 연기한 이완 맥그리거의 연기는 뭐..! 여기서도 굉장히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루이자 미넬리, 엘사 페레티 등 홀스턴과 함께 지낸 친구들을 연기한 배우들의 연기도 굉장히 좋아요.

원래 브랜드 '홀스턴'을 알고 있었던 분이라면, 아니면 읽다보니 이 사람 조금 궁금해졌다면, 모르겠고 화려하고 흥청망청하는 비주얼을 왕창 눈에 때려넣고(?) 싶은 나른한 주말이라면! <홀스턴>은 나쁘지 않은 선택일거에요. 🪡

👗 <홀스턴>에 나오는 1973년 베르사유 배틀이 더 궁금해졌다면..!

🍄 뛰어난 디자이너는 정말 다 성격이 이상할까? 만약 만만치 않은 파트너가 곁에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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