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월요일이 돌아왔습니다.
갑자기 날씨가 꽤 추워졌네요. 월요일과 함께 겨울도 성큼 다가온 걸까요?
저는 늘 월요일부터 레터를 쓰기 시작해요.
저만의 루틴이되었죠.
옆에는 아침부터 마신 홍차가 놓여 있고요.
레터의 날짜를 바꾸고, 제목을 적는 이 과정이 한 주를 시작하는 작은 의식처럼 느껴집니다.
오늘은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해요.
불과 몇 년 사이, 디카페인 커피를 취급하는 카페가 눈에 띄게 늘었죠.
카페인에 민감한 사람들에겐 참 반가운 변화입니다.
특히나 하루에 두 잔 이상 커피를 마시기 힘든 저 같은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택지이기도 하고요.
회사를 다니던 시절,
점심 식사 후에는 늘 카페로 향하곤 했어요.
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들고 회사 근처를 산책하기도 했죠.
그래서인지 ‘커피 마실래요?’라는 말은 ‘지금부터 이야기 좀 나눌까요?’라는 뜻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 때문일까요, 팀장님이 갑자기 “커피 드실래요?”하고 부를 때면 가끔 무섭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맥락을 몰라서,
“저요? 저는 지금 오후 4시라 커피 안 마시는데요.”라고 대답한 적도 있었죠.
그런데 그게 알고 보니, 그건 “같이 이야기 좀 하자”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여러 감정이 교차해요.
일이 잔뜩 밀린 나른한 오후, 날씨는 좋고, 일은 하기 싫고.
그럴 때면 옆자리 후배를 꼬셔서 “우리 커피 마시러 갈래요?” 라고 했지요.
그때 마신 커피의 맛을 잊을 수 없어요.
아니, 실은 그 분위기를 잊을 수 없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살랑거리던 바람, 달달한 커피, 느긋하고 나른한 사람들.
한 블록만 건너면 회사라는 그 가벼운 일탈감도 한몫했겠지요.
지금은 회사를 다니지 않아서, 그때의 공기와 햇살, 그 분위기가 종종 그리워집니다. 커피와 바람과 오후의 햇살까지도요.
요즘은 커피 마실 일이 거의 없어요.
먼저 “커피 마실래요?” 묻는 사람도 없고요. 이런 게 재택 노동자의 비애일까요?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그냥 혼자 마시면 됩니다.
웅성이는 사람들 속에 있고 싶어서 여전히 카페에 가지만, 이제는 디카페인을 주문하게 되네요.
처음에는 좀 억울했어요.
예전엔 커피 마셔도 멀쩡했는데!
세월이 흐른 건가, 어째서 내게 이런 일이!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심지어 디카페인 커피는 카페인을 줄였는데도, 추가금을 받잖아요.
500원, 1,000원씩 더 내야 하고, 어떤 카페에서는 “저희는 디카페인 커피 없어요.”라는 말까지 들어야 하니까요.
괜히 민망해지기도 합니다.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면, 평소 마시던 커피의 절반만 마시는 느낌이에요.
돈은 더 내는데, 본래의 커피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기분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깨달았어요. 내가 그리워한 건 ‘카페인’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었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오후의 일탈, 동료와의 수다, 컵을 감싸는 손의 온기와 커피 향이 주는 작은 위안.
그리고 웅성이는 불특정 다수 속에 속해 있다는 은근한 안정감.
이 모든 건, 카페인이 있든 없든 변하지 않는 것이더라고요.
디카페인은 여전히 커피입니다.
단지 밤잠을 방해하지 않는 착한 커피죠.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의 많은 것들이 디카페인 커피 같지 않을까?
본질은 그대로인데, 조금만 방식을 바꾸면 더 편안하게 누릴 수 있는 것들 말이에요.
완벽주의를 내려놓으면, 우리는 비로소 작은 걸음이라도 시작할 수 있어요.
빠르게 뛰면 보이지 않던 풍경이, 천천히 걸으면 보이기 시작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오늘도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주문합니다.
가끔 시럽을 살짝 곁들이기도 해요.
카페인은 빠졌어도, 그 안에 담긴 마음은 그대로니까요.
다음 편지에서는 ‘커피’에 관해 지금까지 나눴던 이야기들을 총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도 함께 이야기 나눠요.
언제나 금요일에 만나요.
애나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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