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비가 많이 오네. 제주에는 벌써 첫 태풍이 들이닥쳤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 영향 때문인지 이번 주말은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지.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주말 날씨는 참 쨍쨍했어. 이상하게 말이야.
제이는 주말에 보통 뭘 하면서 지내?
나는 주말이면 반드시 가족들과 보내려고 노력해.
그러다 보니, 사실은 내가 원하는 걸 하지 못할 때가 많아.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지도 못하지.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건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의 피로를 동반하는 것 같아. 내가 양보해야 하는 지점도 있으니까.
이번 주말을 보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
‘왜 이렇게 지루하지?’
설거지를 하면서, 세탁기를 돌리면서,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왜 이 모든 게 이토록 지루하게 느껴지는 걸까? 답답함이 가슴 가득 차오르더라.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어.
지루함은 기척도 없이 찾아와 우리를 서서히 잠식하는 것 같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해냈을 일들이 괜히 버겁게 느껴지기도 해.
제이. 너도 그런 기분을 느껴 본 적 있어? 하루하루가 반복되는 느낌. 새로움이 거의 없는 일상을 말이야.
나는 아주 작은 새로움을 발견하려 애쓰지만, 이런 날에는 그런 노력조차 기울이기 어렵더라.
왜일까? 어쩌면 내가 이미 너무 익숙함에 길들여져 있었던 건 아닐까?
설거지의 감촉, 세탁물을 개는 손끝의 감정,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조차 하나의 배경음처럼 희미해졌어.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도파민 회로가 둔화한다지. 게다가 일상이 루틴화되면서 새로운 자극 자체가 줄어든다더라.
지금 이 기분은, 어쩌면 내가 조금씩 나이 들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제이. 나는 노인이 되어서도 호기심이 왕성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익숙함에 젖어 우울에 잠식되기보다는, 낯설고 작은 것들에 눈을 반짝일 수 있는 그런 사람. 너는 어때?
우리가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하루를 즐겁게 맞이할 수 있을까? 지루함보다는 새로움으로 하루를 채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지루함을 느끼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지루함은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을 다르게 살아보라’라고 속삭이는 작지만 진지한 신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작은 실험을 해보기로 했어.
설거지할 때는 물줄기의 세기에 집중해보고, 세탁물을 개며 옷의 질감을 느껴보는 거야.
아주 사소한 변화겠지만, 작은 감각의 전환들이 조금씩 내 일상을 다시 살아 있게 만들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이야.
제이. 혹시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그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그 속에서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어떤 작은 시도를 해볼 수 있을지 잠깐 멈춰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지루함은 때때로 삶이 우리에게 보내는 초대장 같은 거니까. 더 생생하게 살아보라는 조용한 권유니까 말이야.
언제까지나 제이가 호기심이 가득한 사람으로 남기를 바라며.
애나의 추천 목록
□ 왼손으로 양치질해보기
□ 의도적으로 10분간 아무 생각 하지 않기
P.S. 나는 매일 3단 심호흡을 하고 있어. 어느 순간 올라온 감정도, 그렇게 천천히 가라앉더라.
Offbeat에서 아무 일도 없는 오후 4시에, 애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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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애나! 메일이 온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저런 일로 오픈을 미뤘다가 지금, 일요일 새벽에 읽고 답장을 쓴다. 나는 내가 가족의 삶에 영향이 있는 것을 좋아해. 빨래도 하고, 청소, 설겆이.... 뭐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하지. 맞벌이로 살아서 내가 조금 더 한다는 것은 아내를 비롯한 가족이 덜 힘들고 더 쉴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니까. 지루보다 빨리 끝내야 하는 미션 같은거지. 그래야 다른 것도 하고 나도 쉬고... 이제는 아이들이 다 크고 시간적 여유가 많아져서 같은 루틴을 조금 더 편하게 하는 것 같아. 애나가 말한대로 여유가 생기니 다양한 것을 느낄 수 있어 좋아. 아내랑 같이 빨래도 개고, 같이 식사 준비도 하고... 일이 아닌 같이 하는 삶, 그 삶에서 즐거운과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 같아. 잠을 못자서 그런지 횡설수설 하는것 같네. 새벽에 일을 하나 끝낸 5시에 제이가.
Offbeat
제이. 주말에 쓴 글을 주말에 읽어주었구나! 그래서 그런지 나도 주말에 답장을 쓰고 있어. 벌써 주말이 끝나가네. 제이의 이번 주말은 어땠어? 새벽에 일을 끝내고 새벽 5시에 답장을 보내준 걸 보고 조금 걱정했어. 제이, 너무 무리하고 있는 건 아닐까, 모든 일을 끝내고 충분히 쉬고 있기를 바랄게. 나는 여느때와 다를바 없는 주말을 보냈어. 여유는 별로 없었지만 조금씩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해. 제이도 즐거운 주말되길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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