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제이에게

예민함이 잘못이라면

2025.06.13 | 조회 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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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다 가는 길은 지루하니까, 약간 어긋난 박자로 걷습니다.

제이. 드디어 다섯 번째 편지야.

오늘은 조금 자축하는 기분으로 이 편지를 쓰고 있어. 드디어 마의 구간을 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 주는 사실 그리 편안하지 못했어. 정확히 말하면, 지난주부터 계속 아팠어.

위패를 모신 사찰에 다녀왔는데, 날씨는 무척 맑았지만 마음은 무겁고 슬펐어. 무언가에 짓눌리는 기분이었달까.

돌아오는 길에도 기분이 내내 가라앉아 있었고, 결국 그날 저녁 탈이 나고 말았어.

 

왜 그런 상태가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봤어. 아마도 감각이 너무 열린 채로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다.

슬픔과 애달픔, 위로와 아쉬움 그런 것들이 파도처럼 나를 덮쳤던 것 같아.

 

난 사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잘 공감하지 못 해. 아니, 오히려 너무 깊이 공감해서 문제야.

타인의 일을 내 일처럼 느끼다 보니, 결국 나까지 아프게 되더라고. 그래서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는 연습을 하게 된 것 같다.

 

그런 예민함이 어쩌면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힘이기도 해. 하지만 한편으로는 좀 더 무뎠다면 살기가 더 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사람들은 흔히 예민함을 부정적인 의미로 쓰고는 한다.

넌 왜 그렇게 예민해?”, “그런 일로 예민하게 굴지 마.” 이런 말들 말이야.

 

하지만 제이. 예민하다는 건 정말 잘못일까?

넘실대는 감정의 파도를 받아들이는 것이 잘못이었을까?

누군가의 고통에 깊이 공감한 것, 그것도 잘못이라면. 정말 그럴까?

 

난 예민함이 달팽이의 촉수 같다고 생각한다. 그 끝에 눈이 달려 있어서 명암을 구분하고 움직임을 감지한다지.

그래서 먹이를 찾고, 위험을 피하는 데 꼭 필요한 감각기관이라고 해. 누군가 촉수를 건드리면 달팽이는 본능적으로 촉수를 숨겨.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반응이야.

 

제이.

그래서 난 예민함은 잘못이 아니라 센서라고 생각해. 달팽이의 촉수가 빛과 어둠을 구분하고, 위험을 감지하듯이, 우리는 그 예민함 덕분에 세상을 더 선명하게 느끼고, 위협을 빠르게 감지하지.

 

다만, 언제나 그 센서가 100% 작동 중이라는 게 문제라는 것. 가끔은 잠시 꺼둘 수 있다면 좋겠다. 나도 그걸 연습 중이야. 내가 굳이 반응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는, 센서를 켜지 않기로.

 

제이.

나는 네가 가진 예민함을 결함이나 잘못이라고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너 자신이 느끼는 어떤 단점을 스스로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와 내가 다르듯이, 제이의 마음도 제이의 것이니까. 그 자체로 소중하니까. (이런 말은 좀 오래된 드라마 대사 같기도 하지?)

 

그래도 지난 편지에 썼던 것처럼 제이의 마음이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온전하기를 바라고 있어. 이건 정말 진심이야.

 

애나의 추천 목록

가슴-명치-복부 순으로 3단 심호흡하기

이 일은 내 일이 아니야라고 속으로 말하며 센서 끄기

 

P.S. 이번 편지는 엔진을 잠시 끄는 연습을 위한 거야.

요즘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있지. 제이도 부디 아프지 않기를 바랄게.

 

Offbeat에서 따뜻한 홍차를 마시며, 애나 씀

 

이 편지는 애나가 제이에게 쓰는 레터입니다. 제이: 이 글을 읽는 모든 당신의 가명 애나: 글쓴이의 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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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0
    6 months 전

    애나, "예민"이라는 단어가 긍정의 이미지 보다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사용되어서 그렇지 예민한 것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 예민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연습하면 엄청난 장점이지 않을까 싶어. "위패"는 누구의 것을 말하는지... 5번째 편지까지 읽으면서 조금씩 애나를 알아가는 것 같아. 장마라고 하네. 건강 조심하고... 특히 마음, 기분의 건강. 제이가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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