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네 번째 편지네.
늘 세 번째쯤에서 고비가 오는 걸 보면, 작심삼일이라는 말은 언제나 유효한 것 같아. 이번에는 어떤 얘기를 할까, 너에게 어떤 말을 전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
솔직히 말하면, 이번엔 대충 써서 넘길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정성을 들이지 않고 쓴 편지를 받는다면, 제이의 기분도 썩 좋지는 않겠지, 하고.
그래서 나는 다시 처음 편지를 쓰던 날처럼 마음을 다잡고 이 편지를 쓰고 있어.
문득 이번 편지를 시작하려다가, ‘고통의 역치’에 대해 생각했어. 왜 그랬을까?
나는 자주 그런 생각을 해.
언젠가는 고통에 무감각해질 수 있을까?
우리는 흔히 그러잖아. 고통을 피하고 싶다고, 혹은 고통에 무뎌지고 싶다고.
아주 큰 일을 겪고 나면, 그 이후의 사건들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느껴지기도 해. 나는 그랬던 것 같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부터 내 기준으로 타인을 바라보게 되었어. ‘저 정도는 엄살이지’ 하고 속으로 생각할 때도 있었지. 지금 돌이켜보면 참 나쁜 마음이었어. 이제야 솔직히 고백한다.
고통을 감내하는 내 능력이 예전보다 높아졌다고 느끼면서, 그게 과연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한동안은 잘 모르겠더라.
왜냐하면 ‘고통의 역치’가 높아졌다는 건 그만큼 내가 많은 고통을 겪어왔다는 의미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자랑할 일은 아니야. 그런데 어쩌면 조금 자랑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나, 이만큼 아팠어, 근데 이겨냈어.’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니까. 그래서 문득, 내가 고통을 겪은 걸 기뻐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
요즘은, 아니 사실 예전부터 그랬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말들.
다들 너무 쉽게 고통을 감내하라고 말한다. 성장하고 싶다면 한계를 넘어야 한다고, 이겨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소라게를 예로 들고, 독수리를 비유하고는 해.
하지만 제이. 우리는 소라게도 아니고, 독수리도 아니잖아. 그저 사람일 뿐이야.
고통을 받으면 우리는 아프게 돼. 마음이든, 몸이든. 그러면 결국 무너지기도 한다. 우리는 강철로 만들어지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난 생각해.
제이. 네가 고통에 무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가 굳이 강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말에는 두 가지 마음이 담겨 있어.
하나는, 네가 고통에 무뎌질 만큼, 어렵고 힘든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는 소망.
다른 하나는, 네가 ‘힘들다’는 말조차 하지 못할 만큼 네 몸과 마음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어쩌면 진짜 강한 사람은, ‘힘들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몰라. 그렇지 않니?
네 마음이 언제까지나 그 모양 그대로, 온전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애나의 추천 목록
□ 코끝에서 나오는 숨을 느끼며 10초간 몸 스캔하기
□ 오늘 내 몸은 어디가 얼마나 아팠는지 10점 척도로 적어보기
P.S. 언제나 제이의 답장은 위로가 돼. 최근에 제이가 ‘멈추기로 결정했던 순간’이 있다면, 그 이야기를 답장으로 들려줄래?
Offbeat에서 무더운 저녁에, 애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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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애나! 지금은 새벽 5시가 넘은 시간이야. 이번 편지도 나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줬어. 나는 스스로 꽤 잘 참고, 잘 이겨내는 편이라고 생각해 왔거든. 그런데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굳이 겪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더라. 투잡을 하고 있는 나는, 주말이면 강의 준비로 인해 자연스럽게 새벽형 인간이 되곤 해. 오늘도 시험 문제를 출제하다가 네 편지를 확인하고 반가운 마음에 바로 읽게 됐지. 나는 늘 뭔가를 저지르는(?) 체질이라 ‘멈추기로 결정하는 일’은 많지 않았던 것 같아. 하지만 이번엔 좀 달랐어. 지금 링크드인에 연재 중인 ‘비주류 이야기’ 시즌1과 ‘소프트웨어공학으로 보는 삶’ 이야기를 이번 회차를 마지막으로 마무리하기로 했거든. 꾸준히 하는 것도 분명 의미 있지만, ‘글’이기에 ‘질’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두 연재 모두 1회를 남겨두고 있고, 이미 원고를 작성해 예약 걸어 놓은 상태야. 그랬더니… 마음이 꽤 편해지더라.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고, 즐겁기도 했지만,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나 봐. ㅋㅋ 이 편지가 애나에게 잘 전해지길 바라면서… 제이가.
Offbeat
답장 고마워. 제이! 이번에 멈추기로 결정했구나. 어쩌면 전부터 제이가 멈추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그렇지? 가끔 멈추면 또 다시 새롭게 뭔가를 시작하기도 하고, 그게 아니라면 나를 돌아 볼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 같아. 언제나 답장 고마워. 오늘 제이의 하루에 기쁨이 가득하길 바랄게. From 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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