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친구 집에 가게 되면 집 입구에서부터 느껴졌어요.
우리 집과 확연히 다른, 친구집의 냄새가요.
아직도 기억 나는 게, 친구 중 한 명에게서는 늘 쿰쿰한 곰팡이 냄새가 났어요.
그래서 ‘왜 그런 냄새가 나지? 옷을 안 빨았나?’ 그런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그 친구 집을 가보고 나서야 알게 됐어요. 그 냄새는 바로 그 집에서 나는 곰팡이 냄새였던 거예요.
이렇듯, 집에는 그 집만의 고유한 냄새가 있습니다.
같은 세탁세제와 같은 섬유유연제를 써도, 집의 냄새는 다릅니다.
어떤 집에서는 오래된 목재 나고, 어떤 집에서는 김치 냄새가 나지요.
왜 그럴까요?
그건 사람마다 지문이 다른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같은 지문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듯이, 같은 냄새를 가진 집도 거의 없습니다.
그 냄새의 주된 요인은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생활 습관과 음식 : 어떤 집에서는 된장 냄새가, 또 어떤 집에서는 김치 냄새가 납니다. 각 가정의 요리 방식, 즐겨 먹는 음식, 그리고 환기를 얼마나 자주 시키는지에 따라 냄새는 크게 달라집니다.
생선을 자주 먹는 집과 치즈나 와인 같은 음식을 주로 먹는 집의 냄새는 확연히 다르겠죠.
2. 가구와 건축 자재 : 가구, 벽지, 바닥재 등 집을 구성하는 재료 자체에서 나는 냄새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래된 목재 건물에 들어서면, 나무 냄새가 확 끼치는 것처럼요. 특히나 새집의 경우, 페인트나 접착제의 냄새가 한동안 남아 있기도 합니다.
3. 반려동물: 전에 이사를 하려고 집을 보러 다닐 때, 강아지를 키우는 집을 본 적이 있어요. 집은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지만, 반려동물 특유의 냄새가 나더군요.
4. 흡연: 담배 냄새는 단순히 공기 중에 떠다니는 연기 냄새가 아니라 ‘3차 흡연’이라는 형태로 집안 곳곳에 달라붙습니다.
담배 연기의 미세한 입자들이 벽, 천장, 가구, 커튼, 카펫에 스며들게 되는 거죠.
게다가 담배 냄새는 다른 냄새와 섞여 복합적인 악취를 만들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우리는 정작 ‘우리 집의 냄새’를 못 맡는다는 겁니다. 이를 ‘후각 순응’이라고 합니다.
우리 뇌는 지속적인 자극을 ‘안전하다’고 판단하고 무시하기 시작해요.
핸드폰을 들고 있으면서도 ‘내 핸드폰 어디 있지?’라고 찾는 것처럼요.
진화적으로 보면 이건 매우 합리적인 일입니다. 익숙한 냄새는 걸러내고, 새로운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아주 긴 여행을 다녀 온 뒤, 현관문을 열 때 아주 잠깐 ‘우리집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곧 무감각해지죠.
매일 아침에 끓이는 커피 향, 빨래에서 나는 섬유유연제 향, 파와 마늘 냄새, 각자 쓰는 바디워시와 샴푸의 향 같은 것들.
이 모든 것들이 지층처럼 쌓여, 그 집만의 고유한 냄새를 만들어 냅니다.
어쩌면 집의 냄새는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지문’이 아닐까요?
지금, 어린 시절 살던 집의 냄새를 다시 맡을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시절의 기억을 생생히 되살릴 수도 있을 겁니다.
오늘 집에 들어갈 때, 잠시 멈춰 깊게 숨을 들이쉬어 보세요.
비록 우리 집 냄새는 잘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아주 미세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요) 적어도 여기가 ‘내 집이구나’하는 안도감은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다음 편지에서는 ‘집에 관한 믿음’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언제나 변함없이, 금요일에 만나요.
애나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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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집의 냄새는 삶의 지문’이라는 표현이 참 인상 깊습니다. 어린 시절 친구 집에 들어갔을 때 느꼈던 냄새들, 저도 아직 기억이 나요. 글 덕분에 오랜만에 제 어린 시절 집 냄새가 떠올랐습니다. 제이가”
Offbeat
집마다 다르니까요. 지문과도 비슷할 거 같아요. 오래된 양옥집에 한동안 산 적이 있는데, 그 때 냄새가 저도 아직 기억나요. 어떤 후각 기억은 정말 오래가는 것 같아요. From 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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