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제이.
무더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네. 더위에 지치지는 않았을까?
나는 어제 잠깐 산책을 나갔다가 30분도 채 안 돼 땀범벅이 되어 돌아왔어. 계속 실내에만 있다 보니, 이렇게 더울 줄은 정말 몰랐거든.
작업실을 구했다는 이야기는 지난 편지에서 했었지? 그런데 그 이후에 정말 웃긴 일이 하나 있었어.
이번 월요일, 작업실에 가서 커피까지 야무지게 챙긴 뒤 노트북을 딱 켰는데,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거야. 순간 너무 당황했어.
어쩔 수 없이 집에 돌아가서 대신 패드를 들고 다시 나왔는데, 막상 패드로는 작업에 한계가 있더라. 그리고 집에 PC가 있는데 내가 왜, 여기서 패드로 이러고 있지? 이런 생각도 들고…….
그래서 제이에게 편지를 쓰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어. 조금 일에 수습되고 나서야,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어.
정말, 우당탕이지?
작업실도 처음 예상과는 조금 다르더라.
고요하게 집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옆방 소음이 너무 잘 들리는 거야.
처음엔 당황했지만, ‘그래, 어차피 들릴 거면 나도 그냥 음악 크게 틀자’하고 볼륨을 최대치로 올려봤어.
그런데 신기하게도, 작업실 밖에서는 노랫소리가 거의 안들리더라고. 그걸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어.
그 뒤로는 신나게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글을 썼어.
점심시간이 가까워오자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전자레인지 돌아가는 소리도 들렸지만 그냥 그 모든 소리를 배경음악처럼 흘려보냈어.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뒤, 슬쩍 건물 1층을 내려갔더니 식당이 있더라. 혼자 밥을 먹었어. 주변 테이블엔 다들 여럿이 앉아 있었지만, 혼자 앉아 있는 내가 전혀 이상하지 않았어. 아무려면 어때, 싶었거든.
그러면서 생각했어. 완벽한 조건 같은 건 애초에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말이야. 지난번에 ‘그대로 두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었지?
이번에는 그 반대였달까.
상황에 맞춰서 내가 바뀌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걸 새삼 느꼈어.
제이. 우리가 무언가를 계획할 때 완벽하게 준비할 수 있을까?
여행을 떠날 때도, 다 챙겼다고 생각했는데 중요한 걸 빠뜨리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우산 없이 뛰어야 할 때도 있잖아.
노트북이 갑자기 꺼질 줄 누가 알았겠어?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많이 걸었고, 패드에 저장돼 있던 오래된 기억들도 다시 만났어.
어쩌면 그런 예측 불가능함이 삶의 묘미가 아닐까?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그 안에서 새로운 기쁨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애나의 추천 목록
□ ‘완벽한 상황’을 기다리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걸 시작해보기
□ 예상과 달라졌을 때 “이것도 나쁘지 않네”라고 말해 보기
P.S. 노트북은 잘 작동 중이야. 하지만 왠지 또 이런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어. 그래도 뭐, 어때! 이번엔 익숙하니까.
Offbeat에서 언제나 우당탕탕, 애나 씀
의견을 남겨주세요
제임스
애나,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도 다양한 생각을 하구..멋지당. 이 메일을 읽을 때쯤이면 좀 새로운 사무실, 점심 시간이 익숙해졌을까? 이런 저런 일로 나도 바쁘게 지내고 있었어. 그래도 잘 지내고 있었으니 걱정은 안해도 되고.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나 외의 세상이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아. 오늘은 가볍게 여기까지.. 잘 지내. 애나! 제이가.
Offbeat
고마워 제이! 새로운 작업실에는 익숙해졌어. 음악을 크게 틀어 놓는 일에도 익숙해졌어. 요즘 많이 바쁜 거 같아서 걱정했는데, 잘 지낸다니 정말 다행이야. 그래도 마음에 여유가 있는 하루가 되길 바랄게. 늘 건강하길! From 애나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