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역 주택가는 처음 발을 디뎠지만, 묘한 친숙함이 느껴지는 동네였습니다. 한때 붐이 일었다가 다시 잦아든 듯한 상권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죠. 옛 감성이 깃들어 있으면서도 어색하지 않은, 오히려 정겨운 느낌의 골목이었습니다.
주택가 메인 골목에서 계단 하나를 더 오르자 풍경이 순식간에 바뀌었습니다. 상권이 거의 없는 조용한 동네 풍경이 펼쳐지는 그 자리에 빵집 구스베리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매장 문고리에 손때가 묻지 않은, 이제 막 오픈한 이 베이커리에 연락한 이유는 단순한 호기심에서였습니다. 저는 보통 제휴 요청을 할 때 제 취향을 믿고 한번쯤 가보고 싶은 매장을 찾아가는 편인데요. 빵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위치에서, 더욱이 흔히 말하는 '건강빵'을 판매하고 있다는 점이 네이버 지도를 보며 제 관심을 끌었습니다. 또한 생긴 지 한달이 되지 않은 매장인데도 네이버 리뷰에 남겨진 예비 단골들의 흔적이 호기심을 자극했죠.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책들이었습니다. 요리에 관한 과학적이고 깊이 있는 접근법을 다루는 서적들이 먼저 보였는데, 흥미롭게도 빵보다는 파인 다이닝에서 다룰 법한 내용들이었습니다. '이 곳은 뭔가 진심으로 하시는 분이구나'라는 첫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매장 크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주방이었습니다. 빵을 파는 것보다 빵을 만드는 과정 자체에 더 집중된 특별한 공간이었습니다.
책에 관한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요리 분야에서 일하셨는지 여쭤보니 맞다고 하셨습니다. 파인 다이닝 쪽에서 오랜 경력을 쌓으신 대표님이 독립하여 차린 첫 매장이 바로 구스베리였습니다. 자본도 많이 들고 혼자 시도하기 어려운 레스토랑보다는, 적은 인원으로 운영 가능하고 비즈니스 모델이 상대적으로 단순한 베이커리로 첫 창업을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본질과 핵심에 집중하는 대표님의 성향이 드러났고, 실제 빵을 맛보니 그 스타일이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늦은 오후였지만 점심을 거르고 온 터라 일단 빵 두 개를 주문했습니다. 소금빵 하나와 치즈 감자 치아바타였습니다. 자리에 앉자 올리브유와 발사믹을 함께 내어주셨는데, 치아바타에 찍어 먹자마자 "오, 맛있다"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대표님의 전문성이 가장 돋보인 부분은 발사믹과 올리브유 선택에서부터였습니다. 발사믹은 신맛보다 단맛에 조금 치우쳐 있었는데, 올리브유와 꽤 어우러지며 치아바타와 세트처럼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브랜드를 자세히 여쭤보진 못했지만, 이런 세세한 맛의 균형까지 기획된 것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혼자 맛있게 빵을 먹고 있는 사이, 어느새 매장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습니다. 곧 비가 쏟아질 듯한 우중충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일행을 맺어 자동차로 빵 투어를 하는 고객들이 우르르 매장에 들어와 각자 빵을 몇 개씩 구매해 갔습니다. 이어서 동네 주민분들이 오가기 시작할 무렵, 정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사장님과 본격적인 대화를 나누며 소금빵을 맛보기 시작했습니다.
소금빵 역시 훌륭했습니다. 구스베리의 소금빵은 명확히 버터가 주연입니다. 은은하게 퍼지는 고급스러운 버터향 덕분에 빵을 먹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정말 맛있네요"라고 세 번 정도 말씀드렸더니, 대표님은 오히려 고민하고 녹여낸 뉘앙스를 고려하면 그 맛은 당연한 결과라는 듯이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와인을 좋아하는 대표님은 구스베리의 빵에서 좋은 피노누아의 느낌이 나길 바라며 빵을 만든다고 하셨는데, 이 말을 듣자마자 구스베리 빵에서 추구하는 과하지 않은 확실한 기본기가 이해되었습니다. 이즈음 '아내와 팀원들에게도 이 빵을 맛보여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식 이야기를 넘어 다양한 주제로 깊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호밀 빵의 제빵 과정에서 신경 써야 할 점들, 앞으로의 매장 계획과 브랜드로서의 구스베리, 고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마케팅 아이디어, 인적 자원 측면에서의 매장 운영 등 주제가 다양했기에 두 시간이 짧게 느껴졌습니다.
대표님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끝없는 노력을 담담하게 수용하며 계속해서 더 나은 맛을 추구할 분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지금의 맛에서 어떻게 더 발전시킬지, 어떻게 하면 고객에게 더 나은 만족을 줄지에 대한 생각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니 '프로덕트 메이커'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모두가 결국 메이커이고, 각자의 방법으로 고객에 집중한다'는 생각이 들 무렵 비가 그치기 시작했습니다.
구스베리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서울 빵지순례 리스트에 오를 것 같은 곳입니다. 그만큼 진정성이 있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맛을 향한 열정이 느껴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개업한 지 3주밖에 되지 않은 매장에 이미 차를 타고 빵 투어를 오는 고객들과, 친구들끼리 "여기 빵 진짜 맛있어"라고 속삭이는 모습을 보며 그 가능성을 직감했습니다.
시간이 부족해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다음에는 좀 더 깊은 대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표님께서도 조만간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자며 아쉬움을 달래주셨는데요. 다음에는 더 깊이 있는 인터뷰로 구스베리의 오너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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