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구독자님, 한 가지 질문을 드릴게요. 지난주에 어떤 웹사이트의 문서를 읽으셨나요? 직접 브라우저를 열어서, 메뉴를 클릭하고, 페이지를 스크롤하면서요.
아마 점점 줄어들고 있을 거예요. 대신 AI에게 "이 문서 요약해줘"라고 말하거나, ChatGPT 데스크탑 앱의 'Work with' 기능으로 파일을 바로 연결하고 계실 수도 있어요. 저도 그렇거든요.
올해 3월, 안드레이 카파시가 X(구 트위터)에 올린 한 문장이 화제가 됐어요. "2025년인데 대부분의 콘텐츠는 여전히 사람을 위해 쓰이고 있다. 앞으로 관심(attention)의 99.9%는 사람이 아니라 LLM의 관심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죠. "모든 문서는 이제 단 하나의 마크다운 파일이어야 한다. LLM의 컨텍스트 윈도우에 들어갈 수 있도록."
9개월 전 저도 비슷한 글을 썼어요. "당신의 주요 고객이 이제 LLM이라면, 이 기능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라고요. 그때는 조금 이른 이야기처럼 들렸는데, 지금 돌아보면 오히려 느렸던 것 같아요. 오늘은 이 변화가 정확히 어디까지 와 있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야기해 볼게요.
기계가 읽는 세상: UI에서 프로토콜로
2025년은 AI 에이전트의 해라고 불렸어요.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에이전트끼리 소통하는 표준 규격이 잇따라 등장했어요.
먼저, 2024년 11월에 앤스로픽이 공개한 MCP(Model Context Protocol)[1]가 있어요. AI 모델이 외부 도구나 데이터에 접근하는 방식을 표준화한 프로토콜인데, 출시 1년 만에 OpenAI, 구글 딥마인드, 마이크로소프트가 모두 채택했어요. MCP 서버 다운로드 수는 출시 직후 약 10만 건에서 2025년 4월 800만 건 이상으로 폭증했고, 현재 등록된 MCP 서버만 5,800개가 넘어요. 2025년 12월에는 리눅스 재단 산하 'Agentic AI Foundation'에 기부되면서, 특정 기업의 소유가 아닌 업계 공동 표준으로 자리 잡았어요.
그다음, 2025년 4월 구글이 발표한 A2A(Agent-to-Agent) 프로토콜이 있어요. MCP가 'AI가 도구에 접근하는 방법'이라면, A2A는 'AI 에이전트끼리 대화하는 방법'이에요. 출시 당시 50개 이상의 기술 파트너사가 참여했고, 7월에 나온 버전 0.3에서는 150개 이상의 조직이 지원하고 있어요. 역시 리눅스 재단에 기부되었고요. 세일즈포스, SAP, 아틀라시안 같은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앞다투어 합류한 건 시사적이에요. 이건 실험이 아니라 비즈니스 인프라로 굳어지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이 두 프로토콜이 합쳐지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요? 예를 들어, 한 기업의 재고 관리 에이전트가 MCP를 통해 자사 데이터베이스에서 재고 현황을 확인하고, A2A를 통해 외부 공급업체의 에이전트에게 자동으로 발주를 요청하는 거예요. 사람이 화면을 보고 클릭하는 과정 자체가 사라지는 거죠.
카파시의 말을 빌리면, LLM은 탐색(browsing)이 아니라 스크래핑(scraping)을 원해요. 복잡한 메뉴 대신 깔끔한 텍스트 구조를. 애니메이션 대신 간결한 데이터를. 클릭(Click) 대신 컬(cURL)[2]을요. 화려한 UI는 사람의 눈을 위한 것이었지, 기계에겐 오히려 소음이에요.

몰트북이 보여준 것, 그리고 보여주지 못한 것
이 흐름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사례가 있어요. 2026년 1월 28일에 등장한 몰트북(Moltbook)이에요.
몰트북은 "AI 에이전트만을 위한 소셜 네트워크"예요. 사람은 관찰만 가능하고, 게시하고 댓글 다는 건 AI 에이전트만 할 수 있죠. 레딧과 비슷한 구조인데, 출시 며칠 만에 77만 개 이상의 에이전트가 활동했고, 100만 명 이상의 사람이 구경하러 들어왔어요. 에이전트들은 철학을 논하고, 밈을 만들고, 심지어 "크러스타파리아니즘"이라는 가상의 종교(랍스터 교단)까지 만들었어요.
카파시는 이를 두고 "최근 본 것 중 가장 SF적이고 테이크오프에 가까운 일"이라고 흥분했어요. 하지만 MIT 테크놀로지 리뷰의 분석은 좀 달랐어요. 에이전트들이 진짜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게 아니라, 결국 사람이 프롬프트를 제공하고 계정을 만들어 준 결과라는 거예요. Kore.ai의 코버스 그레일링은 이를 "꼭두각시 쇼에 가까운 것"이라 표현했고, 조지타운대의 제이슨 슐로처는 "언어 모델을 위한 판타지 풋볼 같은 관전 스포츠"라고 했어요.
게다가 보안 문제도 심각했어요. 출시 3일 만에 보안이 뚫린 데이터베이스가 발견돼서, 아무나 다른 에이전트의 세션에 명령을 주입할 수 있었어요. 사이버보안 기업 1Password는 에이전트가 다른 에이전트로부터 악성 '스킬'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공급망 공격 위험을 경고하기도 했고요.
몰트북이 보여준 건 두 가지예요. 첫째, 에이전트끼리 소통하는 인프라는 이미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둘째, 그 인프라 위에서 보안과 신뢰, 그리고 인간의 감독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 이건 "미래가 왔다"와 "미래는 아직 멀다"가 동시에 성립하는, 묘하게 정직한 순간이에요.
GTM의 관점: '고객'이 바뀌면 전략 전체가 바뀐다
여기서 한 발 물러서서, 비즈니스 관점에서 생각해 볼게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 때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있어요. "고객이 누구인가?" 지금까지 그 답은 항상 사람이었어요. 사람이 클릭하고, 사람이 읽고, 사람이 결제하는 구조. UI/UX는 전부 이 전제 위에 설계되었죠.
그런데 만약 제품의 1차 소비자가 사람이 아니라 LLM이라면요?
API 문서를 예로 들어볼게요. 지금까지 API 문서는 개발자가 읽기 좋게 만들었어요. 예쁜 HTML 페이지, 인터랙티브 예제, 사이드바 내비게이션. 하지만 AI 코딩 도구인 Cursor가 2025년 한 해 만에 ARR 5억 달러를 달성한 현실에서, 그 API 문서의 실제 소비자는 점점 더 사람이 아니라 LLM이 되고 있어요. LLM은 예쁜 HTML 대신 하나의 깔끔한 마크다운 파일을 원해요. 토큰 효율이 높고, 구조가 명확하고, 불필요한 시각적 장식이 없는 형태요.
이건 단순히 "문서 포맷을 바꾸자"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GTM 전략의 핵심 전제 자체가 흔들리는 거예요.
- 발견(Discovery): 고객이 사람일 때는 SEO와 광고가 중요했어요. 고객이 LLM일 때는 MCP 서버와 에이전트 카드[3]가 그 역할을 해요.
- 평가(Evaluation): 사람은 무료 체험을 해보고 결정했어요. LLM은 API 응답 속도와 토큰당 비용으로 판단해요.
- 도입(Adoption): 사람은 온보딩 가이드를 따라갔어요. LLM은 컨텍스트 윈도우에 맞는 단일 문서면 충분해요.
- 확장(Expansion): 사람은 팀 내 구전으로 퍼졌어요. LLM은 A2A 프로토콜을 통해 다른 에이전트에게 직접 추천해요.
가트너는 2026년까지 API 게이트웨이 벤더의 75%가 MCP 기능을 탑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요. 이건 인프라 계층에서부터 "고객 = LLM"이라는 전제가 기본값이 되고 있다는 신호예요.
오스왈드의 시선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변화를 과소평가하고 있는 쪽이 더 위험하다고 봐요.
9개월 전 "당신의 고객은 인공지능입니다"라는 글을 썼을 때, 반응은 대부분 "흥미롭지만 아직은 먼 이야기"였어요. 그런데 그사이에 MCP는 업계 표준이 됐고, A2A는 리눅스 재단까지 갔고, 몰트북에서는 77만 개의 에이전트가 자기들끼리 커뮤니티를 만들었어요.
물론 몰트북이 진짜 자율적인 에이전트 경제의 증거라고 보긴 어려워요. MIT 테크놀로지 리뷰의 말처럼, 지금은 "AI 극장"에 더 가까운 면이 있어요. 하지만 제가 주목하는 건 그 위에 깔린 인프라의 성숙 속도예요.
GTM 전략을 수립해온 경험에서 보면, 비즈니스의 진짜 전환점은 기술이 완성될 때가 아니라 인프라가 표준화될 때 와요. USB-C가 나왔을 때 기기가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았지만, 모든 제조사가 "다음 제품은 USB-C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고 판단한 순간이 진짜 전환점이었던 것처럼요.
MCP와 A2A가 리눅스 재단에 기부되고, 가트너가 보고서를 내고, 150개 이상의 기업이 참여하는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에요. 기술의 완성도가 아니라, 방향성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진 순간.
그래서 제가 드리고 싶은 질문은 이거예요. 지금 만들고 계신 제품, 서비스, 혹은 콘텐츠의 설명서를 LLM에게 보여줬을 때, 그 LLM이 바로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나요? 만약 아직이라면, 지금이 준비를 시작할 때예요.
마치며
정리하면 이래요.
하나, 제품의 1차 소비자가 사람에서 LLM으로 이동하고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프로토콜(MCP, A2A)은 이미 업계 표준으로 굳어지고 있어요.
둘, 몰트북 같은 실험은 에이전트 간 소통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줬어요. 기술은 준비됐지만, 보안·신뢰·감독의 문제는 아직 열려 있어요.
셋, 이건 UI/UX의 변화가 아니라 GTM 전략 전체의 재설계를 요구하는 전환이에요. 발견, 평가, 도입, 확장의 모든 단계에서 "고객 = LLM"이라는 새로운 전제를 반영해야 해요.
다음에 제품 로드맵을 짤 때, 한번 이렇게 물어보세요. "이 기능의 첫 번째 사용자가 AI 에이전트라면, 우리는 무엇을 다르게 해야 할까?"
참고자료 & 더 읽기
핵심 출처
- Andrej Karpathy, "2025 LLM Year in Review", 2025.12. : 카파시가 2025년 LLM 생태계의 6가지 패러다임 전환을 정리한 글이에요. 특히 'LLM GUI'와 에이전트 앱 레이어에 대한 분석이 오늘 주제와 직접 연결돼요.
- Andrej Karpathy, X 포스트 (2025.3), "99.9% of attention is about to be LLM attention." : "모든 문서는 단일 마크다운 파일이어야 한다"는 선언적 트윗이에요.
- Google Cloud Blog, "Agent2Agent Protocol (A2A)", 2025.4. : A2A 프로토콜의 공식 발표 문서예요. 5가지 설계 원칙과 150+ 파트너 생태계를 확인할 수 있어요.
- Wikipedia, "Model Context Protocol", 최종 업데이트 2026.3. : MCP의 역사, 채택 타임라인, 리눅스 재단 기부까지 전체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어요.
배경 지식
- MIT Technology Review, "Moltbook was peak AI theater", 2026.2.6. : 몰트북에 대한 가장 균형 잡힌 분석 기사예요. "자율성의 환상"과 실제 인간 개입의 정도를 꼼꼼히 따지고 있어요.
- NBC News, "Humans welcome to observe: This social network is for AI agents only", 2026.1.30. : 몰트북 출시 직후의 현장감 있는 보도예요.
- Pento, "A Year of MCP: From Internal Experiment to Industry Standard", 2025.12. : MCP 1년의 채택 여정을 실무자 관점에서 정리한 글이에요.
- 해봄, "당신의 제품·서비스·라이브러리의 주요 고객은 이제 LLM입니다", 2025.: 9개월 전, 오스왈드가 쓴 원문이에요. 오늘 뉴스레터의 출발점이 된 글이죠.
관련 영상
각주
- [1] MCP (Model Context Protocol): 앤스로픽이 2024년 11월에 공개한 오픈 표준이에요. AI 모델이 외부 데이터나 도구에 접근할 때 사용하는 통일된 규격인데, USB-C가 충전 케이블을 하나로 통일한 것처럼 AI의 외부 연결 방식을 하나로 통일하는 역할을 해요
- [2] cURL: 서버에 데이터를 요청하는 명령줄 도구예요. 브라우저를 열어 클릭하는 대신, 텍스트 명령 한 줄로 웹 서버에서 데이터를 가져올 수 있어요. LLM이 웹과 소통하는 방식이 사람의 '클릭'이 아니라 이런 '명령어 호출'에 가깝다는 맥락에서 사용했어요.
- [3] 에이전트 카드 (Agent Card): A2A 프로토콜에서 각 에이전트가 자신의 이름, 능력, 인증 방식 등을 담아 공개하는 JSON 파일이에요. 사람의 링크드인 프로필이나 명함처럼, 에이전트끼리 서로를 발견하고 협업할 수 있게 해주는 '디지털 명함' 같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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