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미래를 감히 상상해도 될까

2022.10.26 | 조회 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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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구독자 and L, 요즘 뭐 먹고 살아?

갑자기 이름 불러서 놀랐다면 미안. 요즈음 내 최대 걱정거리야. 뭐 먹고살지? 먹고살다, 사전을 찾아보니 생계를 유지한다는 뜻이더라. 난 근데 '먹다'에 초점을 맞추고 고민해봤어. 어쩌다 보니 우린 먹어야 살 수 있게 태어나버려서... 하지만 어딜 둘러봐도 먹을 게 넘치는 세상에서 왜 이런 고민을 하나 싶을 거야. 유튜브만 봐도 과할 정도로 음식이 쌓여있으니까. 채도를 한껏 높여 보기만 해도 배부른 썸네일들과 함께!

영화 <소일렌트 그린>
영화 <소일렌트 그린>

난 어느 날 (두둥) 영화 소일렌트 그린을 보게 됐어. 1973년에 개봉한 영환데 2022년을 어마어마한 디스토피아로 그렸더라고. 영화에서 그리는 22년도 뉴욕은 식량부족으로 인해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한 도시야. 무려 4천만의 인구가 밀집되어있지. (2022년 기준, 뉴욕의 인구는 838만) 정부는 시민들에게 생존을 위한 기적의 식품을 배급하는데, 그 이름은 '소일렌트 그린'. 끔찍하게도 하층민의 시신으로 만들어진 식량이었어. 굉장히 자극적이지만 상상하지 못할 일은 또 아닌 듯해. 별별 금기와 제한을 넘어서는 세상이다 보니.


주제 자체도 참 충격적이지? 그런데 오프닝/엔딩은 더 큰 충격을 줘.

영화 <소일렌트 그린> 오프닝 시퀀스
영화 <소일렌트 그린> 오프닝 시퀀스
영화 <소일렌트 그린> 엔딩 크레딧
영화 <소일렌트 그린> 엔딩 크레딧

1 오프닝엔 그들이 상상한 오래된 미래가 등장해. 인구밀도는 터질 듯이 높아지고, 살 집도 없고, 먹을 것도 부족한 세상. 마스크 쓴 아이들 옆으로 매연이 흐르고 수많은 가축이 떼로 죽어가는 장면들. 뉴스채널을 돌리다 보면 숱하게 본 장면들이라 그런가 무덤덤하게 보았고, 난 그런 내 모습에 소름이 돋았어.

2 엔딩엔 아름다운 지구의 풍광이 스쳐 가. 해가 뜨고 지고, 파도와 함께 바다가 흩어지고, 색색의 꽃이 바람 따라 흔들리고, 건강한 사슴들은 숲을 누비는 장면. 이 장면도 오프닝 시퀀스 만큼이나 흔히 볼 수 있지, 아직은. 그런데 이 장면이 나오게 된 계기를 알면 놀랄 거야. 극 중 주인공의 동료는 정부 운영 안락사 센터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선 죽기 직전 이 영상들을 재생해줘. 마치 아이맥스 스크린 같은 커다란 화면에, 노인들이 젊을 적 누렸던 세상을 잠시나마 펼쳐주는 거야. 

난 막연하게도 미래가 있을 거라 장담하며 살아왔는데, 마냥 살아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번뜩 스쳤어. 내가 유독 걱정 많은 인간인 탓도 있겠지만, 과연 현재를 언제까지 온전히 누릴 수 있을까? 

영화 <소일렌트 그린> 안락사 센터
영화 <소일렌트 그린> 안락사 센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관론자처럼 한탄하며 누워있을 순 없기에. 난 먹는 걸 조금씩 바꿔보는 중이야. 식량 위기에 비건이 해법이 될 수도 있다더라고. 우리가 외치는 '고기' 밥상으로 인해 물 부족, 식량 부족이 연쇄적으로 발생한다는 거야. 초등학생 때부터 과학의 날 글짓기 할 때마다 쓰던 얘긴데, 아젠다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 약간 씁쓸하기도 해. 물론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엮여있어 쉽지 않지만, 입으로 지구를 책임진다! 좀 멋있지 않아? 

영화 <리틀 포레스트>
영화 <리틀 포레스트>

근데 난 아직 완전 비건이라곤 말 못해. 흔히들 말하는 불완전 비건이랄까! 하지만 최대한 덩어리 고기는 먹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 2000년대 초 나온 단어로 정의하자면  '비덩'(非덩)이라고 할 수 있지. 모순적이라며 손가락질할 수도 있지만, 난 불완전한 비건이 늘어날수록 세상이 나아질 거라 생각해. 우리에겐 완벽하진 않아도 가슴 한 켠에 비건이란 단어가 살포시 박혀있는 사람들이 필요하거든. 

🤔이런 생각을 품은 지는 이제 3년 정도 된 것 같아. 

영화제에서 비건 친구들을 만나 처음 접했고, 인턴 면접 과제로 '비덩' 인터뷰 기획서를 작성하며 고민을 더해갔어. 부서 배치가 달라지며 세상 밖으로 나오진 못했지만, 영상 기획서를 일부 공개할게. 지금 보니 꽤 부끄럽네.

(가제) [※비건 입문자들 주목※] 모순적인 채식주의자, ‘비덩’이 뭔데? 이제는 친환경 시대를 넘어, 필(必) 환경 시대. 최근 MZ 세대가 가치와 윤리적인 소비를 중시하게 되며 ‘비건, 베지테리언’이 일종의 환경 운동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비건 불모지 한국에서 과연 완전한 비건의 삶은 어떨까? 그래서 20대 인턴이 체험해 보았다. ‘한국에서 하루 동안 완전한 비건으로 살아보기!’ (비장한 모습의 인턴) -' (절망 효과음) 그런데! 아침, 점심, 저녁 구내 식당에서도 회사 주변의 빵집에서도 완전한 비건식을 하는 것이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화면 전환 – 두둥) 그래서 결심했다. ‘나는 모순적인 채식주의자 비덩(비(非)덩)이 될 것이다’ (비덩 소개) 비덩주의란 바로 덩어리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다. 즉 한국인들이 흔히 먹게 되는 찌개나 국에 들어가는 동물 첨가물들은 먹되, ‘고깃덩어리’는 먹지 않는 것이다. (모순 속에 고통 받는 인턴 주위로 속삭이는 사람들) ‘그게 무슨 비건이야, 어쨌든 고기 먹는 거잖아, 모순적인 녀석...’ (속삭이는 자막들을 쓱싹 지우는 화면 전환) 사실 베지테리언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해산물까지만 섭취하는 페스코 베지테리언, 닭고기까지 섭취하는 폴로베지테리언, 달걀까지만 먹는 락토 베지테리언, 가끔 고기를 섭취하는 플렉시테리언 등 제각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우리는 모두 베지테리언이다. (BGM. 위아더월드)

한국에서 비건 지향으로 음식을 섭취하는 것. 어떤 방면으로 보면 쉽기도 하고 매우 어렵기도 해. 흔히 짤로 돌던 K-비건 밥상을 보면 알 수 있지. 쌈 채소 가득 싸 먹으면 끝! 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베이스가 되는 양념이나 육수로 인해 비건과 멀어지는 경우도 많아. 그래도 요즘엔 채소 육수, 대체육 제품들이 수도 없이 출시되어 먹고/사는 게 좀 수월해진 것 같아.

영화 <리틀 포레스트> 배추전
영화 <리틀 포레스트> 배추전

이쯤에서 K-비건 초심자를 위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소개할게. 대중에겐 김태리 배우가 직접 기른 채소로 사부작사부작 요리해 먹는 힐링 영화로 알려졌지. 하지만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손쉽게 따라 할 만한 비건 레시피가 가득 담겨있어. 영화를 제작한 임순례 감독의 뜻이 들어가 있거든. 실제로 동물권을 위해 활발히 활동 중이시기도 하고, 비건을 실천하고 계셔. 

그렇기에 '농사 후 고된 날, 고기 구워 먹으며 술 한잔'하는 클리셰는 이 영화 속에서 등장하지 않아. 미디어 속 식사 장면이 관객들에게 끼칠 영향을 고려하셨다고 하더라. 처음 영화관에서 봤을 땐 그저 입에 침만 고였는데, 의미를 알고 보니 뜻깊었어. 그리고 재료 하나하나 눈에 담으려 노력했어. 힘겹게 열매를 틔워낸 땅을 생각하며.

내가 키운 방울토마토
내가 키운 방울토마토

나도 극 중 혜원처럼 자급자족 생활을 해보고자, 텃밭 한 줄 분양 받아 토마토를 키웠어. 매일 나가 물을 주고 지지대를 세워주고 폭우가 내려도 폭염에 익어도 잘 자라라 한 마디 해주고. 분명 돌이 많아 척박한 땅이었는데 생명력 가득 붉게 익는 토마토를 보니 오만 감정이 교차했어. 자그마한 가지가 지지대를 타겠다며 손을 뻗는 것처럼. 나도 미래를 향해 감히 손을 내밀어보려고! 닥쳐올 위기를 걱정하며 슬퍼하기 보단,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야. 

- 오늘 메일 요약 : 시작은 비관적이었으나, 끝은 밝으리라 - 

추신. 맛있는 비건을 경험하고 싶다면 이수역 카페 '거북이'의 케이크를 먹어봐.

 

From.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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