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호] 유난히 선명한 추억이 있고는 해

차로 기록하는 추억 / 불안을 기억하기 위해 쓴 시

2024.09.26 | 조회 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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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bbles

바닷가의 조약돌을 줍듯 각자의 취향을 수집해요. 우리의 취향 수집에 함께할 돌멩이들을 찾습니다.

드디어 날씨가 선선해졌어요.

기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Thu

온다 / DRINK ME! - [부록]
주민 /  처음으로 시를 투고했다


  • DRINK ME! - [부록] 

오랜만이에요! 온다입니다.

구독자‘프루스트 효과’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이 효과는 특정한 냄새가 매개가 되어 기억이 떠오르는 현상을 말합니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마들렌을 베어 문 후,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소설을 집필한데서 따온 이름이죠. 여행지에서 하나의 향수를 사용함으로서, 그 여행을 향으로 기억하도록 하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앞선 레터에서 언급했듯, 차도 향을 즐기는 음료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몇몇 차들은 특정 장면을 머리 속에서 재생시키곤 합니다. 프루스트가 홍차와 마들렌 향을 맡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렸듯이요.

 

  • 잉글리쉬 로즈

영국에서 차를 마실 때 가장 기본이 되는 티 세가지를 고르라면 잉글리쉬 브렉퍼스트, 얼그레이, 그리고 잉글리쉬 로즈라고 할 수 있는데요. 원래는 얼그레이를 제일 좋아했어요. 그렇게 생각했는데... 위타드에서 잉글리쉬 로즈를 산 후, 틴 케이스 뚜껑을 열자마자 훅 끼쳐오는 장미향에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영국에서는 계속 잉글리쉬 로즈만 마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춥고 흐린 날의 영국이 떠오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창문 밖 우중충한 날씨와 달리 포근했던 방 안의 기억이요. 작은 방이라 한번 차를 마시면 은은한 차 내음이 방 안에서 느껴졌거든요.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M&S에서 사온 과일 스콘과 함께 차를 마시면 애프터눈 티 부럽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 얼그레이

얼그레이는 밀크티로 먼저 접했어요. 그래서 얼그레이 차를 처음 마셨을 때엔 생각보다 떫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향만큼은 너무 좋다고 생각했던 차입니다. 얼그레이는 홍차에 베르가못 오렌지의 오일이 블렌딩된 차인데요. 저는 원래도 시트러스 향조를 좋아했거든요. 잎차로 만나보니 검은 찻잎 위에 푸른 수레국화 꽃잎이 띄워져 있는 것도 좋았어요. 대중적인 차라서 어디서든 맛볼 수 있지만, 제게는 특별히 떠오르는 기억이 있답니다. 바로 비행기에서 몽블랑을 보았던 기억이에요. 원래 저가 항공에서는 서비스 음료를 제공하지 않는데, 그 날은 승객이 네 명 뿐이라 티나 커피를 제공해주었거든요. 그래서 트와이닝스의 얼그레이를 마시며 하늘에서 몽블랑을 내려다볼 수 있었어요.

 

  • 히비스커스 티

제게 잉글리쉬 로즈가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마시는 티라면, 히비스커스는 비 맞고 난 후 집에 돌아와 마시는 티예요. 포르투갈에서는 비를 맞은 채 귀가하는 날이 종종 있었습니다. 조금이 아니라 흠뻑이요. 그럴 때마다 집주인 분께서 따뜻한 히비스커스 티를 챙겨주셨어요. 샤워 후 뽀송해진 몸으로 마시면 따뜻한 기운이 스르르 올라왔고요.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던 붉은 수색과 새콤한 맛. 이집트에서 매일 같이 마시던 히비스커스 주스보다 히비스커스 티가 더 기억에 남는 건 역시 담겨있는 다정함 때문이겠죠.

 

  • Noël à Strasbourg

Noël à Strasbourg는 '스트라스부르의 크리스마스'라는 뜻인데요. 이름 그대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던 스트라스부르에서 산 티의 이름이었어요. 오렌지, 시나몬, 정향 등이 블렌딩된 홍차입니다. 유럽의 겨울엔 시나몬 향을 자주 맡아볼 수 있어요. 뱅쇼에도, 티에도 자주 쓰이는 향신료이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라고 하면 시나몬 향이 바로 떠오를 정도로요. 저도 파블로프의 개마냥 이 차 향을 맡으면 바로 크리스마스 마켓이 생각납니다. 크리스마스 마켓의 큰 트리와 시끌벅적한 분위기, 아기자기한 오너먼트들, 풍겨오는 뱅쇼와 초콜릿 향기.

그리고 스트라스부르 방문 전 함께 여행했던 S양의 기숙사에 방문했었는데요. 그때 S양이 이름만 달랐던 Lyon à Strasbourg를 끓여주었어요. 몰래 들어간 좁은 기숙사 안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던 추억까지 함께 떠오릅니다.

 

모두 입문용으로 좋은 차들이니 구독자님도 구독자님만의 기억을 덧씌워 보세요 😊


  • 처음으로 시를 투고했다

구독자님은 청소년 소설 <훌훌>을 읽어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요즘 책을 많이 읽는 친구의 추천을 받아 독서를 하고 있는데요. <훌훌> 역시 친구의 추천 도서 중 하나였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왈가닥한 친구가 시에 소질이 있더라고요. 문제 5개를 풀고는 공부가 하기 싫어서 엎드려 자던 아이가 써놓은 시는 제법이었죠. 어디에서 무얼 해도 잘할 것 같다는 평가를 받던 학생이라 자라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나의 창작욕에 대해

교복을 입던 시절의 구독자님은 어떤 학생이었나요? 저는 이런 말하기는 뭐하지만 공부를 뺀 모든 것에 흥미가 있는 학생이었죠. 중학생 때 특히 많이 하던 게 특정 주제의 창작 대회가 있는데 기억하시나요? 포스터 그리기, 뱃지 만들기, 시화 만들기, 만화 그리기, 표어 만들기 등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시화나 만화로 참가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는 이런 기회가 많이 줄어들었으니 제 창작 능력은 중학교에 멈춰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기회가 줄었다고 해서 창작에 대한 욕구가 식지는 않더라고요. 지금도 창작을 사랑합니다. 안전가옥을 알게 된 뒤에는 쇼-트 공모전을 북마크하다가 남몰래 세계관을 만들어본 적도 있고, 파도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며 이번엔 어떤 주제로 투고를 받나 지켜봐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안전가옥의 <칵테일, 러브, 좀비>에 작가님의 사인도 받고, 가장 최근에 출간되었던 파도의 시집 <숲>을 구매하고 만 것이죠.

 

첫 투고

주민을 찾아보세요 :-)
주민을 찾아보세요 :-)

꾸준히 욕심을 부리기를 잘한 것일까요? 기쁜 일이 생겼습니다. 추분이었던 지난 22일 일요일, 파도의 열일곱 번째 시집선 <017 불안>이 출간되었는데요. 그곳에서 ‘주민’을 찾으신다면 저이니 반가워해주세요. ‘불안이라는 거’라는 제목의 짧은 시가 담기게 되었습니다. 

구독자님에게만 털어놓는 건데요. 이 시는 짓는 데 30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개하기에 정말 많이 부끄럽습니다. 저는 늘 그랬듯이 이번 <017 불안>의 투고 공지도 북마크를 해두고 한참을 잊고 있었는데요. 어느 일요일에 조기 마감을 한다는 공지가 새로 올라왔더라고요. 저는 당시 개인적으로 괜한 불안에 크게 휩싸여 있는 때인지라 이 기분을 남길까, 말까 고민을 하루종일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마감 약 30분 전에 한글에서 새 파일을 열었고 마감 4분 전에 메일을 보냈었어요.

저는 아직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한 글을 쓰는 데 서툽니다. ‘불안이라는 거’ 역시 앞서 말했듯 제가 겪은 불안을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반추라고 하나요? 내가 우울을 느낀 이유를 반복적으로 떠올리고 근거들을 유추하려고 하면 할수록 우울감이 심해진다고 합니다. 불안은 실재하지 않아도 저의 눈동자 위를 부유하고, 뒤통수를 첨예하게 찌르는 듯하고, 때로는 그 양이 너무 많아 속이 꽉 막혀 체한 듯하기도 했습니다. 자꾸 생각하니까 자꾸 몸을 돌아다니더라고요.

저의 시 말고도 더 많은 불안이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불안 역시 시집의 마지막 페이지에 두고 가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공유해주세요. 늘 그렇듯, 여러분의 이야기가 궁금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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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조약돌을 기다리고 있어요 💌

 


민짱🌈
: 이 세상의 귀여운 모든 것들을 사랑합니다!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
제토🧚 : 주로 갓생을 추구합니다. 밖으로 쏘다니는 외향 인간.
주민💎 : 언젠가는 모두가 알게 되겠죠, 고양이가 우주 최고입니다.
온다🫧 : 직업은 트래블러, 취미는 여유와 낭만 사이에서 유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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