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세상입니다. 어떤 이들은 무고한 시위대를 총살한 뒤 성대한 퍼레이드를 벌이고, 어떤 이들은 범죄 피해자를 조롱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을 부정당하며 살아가고, 어떤 이들은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 태어나 자랍니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경험들을 우리는 크고 작은 방식으로 삶에서 경험합니다. "악"(惡)이라는 낱말은 이 모든 일들을 하나로 묶기 위해 사용되는 아주 좋은 도구입니다.
그러나 악을 생각하고, 악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악을 이질적인 것, 구별된 것으로 간주함을 통해 폭력의 가해자들은 저 멀리 떨어진 악마가 되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반성하는 데에 나태해지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악을 생각하고, 악에 관해 말해야 하는데, 이는 우리 스스로가 잔인한 여건을 만드는 주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악에 관한 모호한 이해는 우리를 양방향의 위험에 놓이게 합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악〉을 보다 분명히 이해하는 일입니다. 악을 전적으로 구별된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으면서도, 상황을 악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할 그러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여기에 그 이해를 제공하려는 하나의 시도가 있습니다. 애덤 모턴의 책, 《잔혹함에 대하여》(On Evil)입니다.
책의 구성
책은 단일한 연속적인 논증으로보다는 악에 관한 세 주제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절에서는 악을 명료히 이해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며, 다른 절들을 통해 진행될 논증의 개요를 소개합니다. 이어 2절에서는 악의 정의를 제시하기 위한 이론인 '장벽 이론'(Barrier Theory)을 세운 뒤 이를 통해 악을 정의합니다. 3절에서는 악에 관한 단순화된 이미지화가 야기하는 그릇된 태도를 지적하며, 악을 단순화하여 상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변합니다. 끝으로 4절에서 모턴은 현실에서의 악한 행위들을 이해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을 제안합니다.
세 단편들에서 논의는 현상학적이라기보다는 개념 분석적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모턴은 우리가 악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통해 악을 이해하기보다는, 악의 개념이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지를 통해 악을 정의한 뒤 이를 통해 악을 대하는 우리의 방식들이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모턴은 불명료하거나 장황한 표현들을 사용하기보다는 비교적 명료하고, 간결한 표현들을 사용해 논증을 하고 있습니다. (제목에서 기대되는 바와는 달리) 잔혹함에 관한 한 편의 수상록을 기대하기보다는 악에 대한 개념적 이해와, 이로부터 나오는 실천적 지침을 기대하며 읽는 것이 적절한 책입니다.
번역은 훌륭한 편입니다. 눈에 띄는 오역이나,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은 없습니다. 표지 또한 매우 훌륭합니다. 원서의 표지[링크]는 상당히 투박한 반면 돌베개는 단순하면서도 신선한 표지 디자인을 채택했습니다. 다만 제목을 옮긴 방식은 아쉬운데요, 원서 제목에서 사용된 표현인 "evil"은 그 기술적(descriptive) 의미에 있어 일종의 모호함을 갖는 반면 역서 제목의 "잔혹함"은 꽤나 분명한 기술적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 잔혹하다면 그것은 폭력적인 행위를 동반할 것이지만, 모턴의 분석에서 악함은 폭력적임을 내포하지 않습니다[참조. 101~2면]. 이런 점은 독자들의 기대와 책의 내용을 불일치하게 만들기에, 제목을 직역해 "악에 대하여"로 옮기는 편이 적절했을 것 같네요. (출판사 나름의 고민이 있었겠지만요!)
책 속으로
악의 장벽 이론
폭력적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모종의 장벽을 넘어서야 하는 듯 보입니다. 그리고 이 장벽을 넘어서는 것은 전장의 한복판에 있는 등, 특정한 상황이 주어질 때 전형적으로 일어납니다. 한편 장벽 자체가 없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소시오패스와 같이, 폭력적이지 않게 행위하는 것이 규칙인 것은 알지만 이로부터 폭력적이지 않게 행위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는 못하는 이들이 이 사례에 해당합니다. 반면 이런 상태들 중 하나에 놓인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선택에 있어 특정한 나쁜 선택지들을 미리 제거합니다.
어떤 영역에서의 덕(virtue)이란 옳은 선택들을 취하고, 그른 선택지들을 걸러내는 것을 포함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와 같이 선택지들을 제거하는 것은 일종의 덕일 것입니다. 악이란 덕이 막으려는 바로 그런 것들을 취하게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장벽이 막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기술 자체가 악에 관한 정의라고 생각할 만합니다. 이렇게 모턴은 다음의 일차적인 정의를 제안합니다: "예측되는 결과가 타인의 고통이나 굴욕[에 연루되는, 또] 실행이 고려되면 안 되는 행동."(96면, 대괄호는 필자의 정정.)
그러나 이 정의는 너무 많은 잘못들을 악한 행위로 만들어버리며, 비폭력적인 악행을 악행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포괄성의 문제를 갖고 있어 보입니다. 후자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전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턴은 다음의 본격적인 정의를 제안합니다:
이는 행위의 악함을 행위자의 지속적 특성("전략", "학습된 절차", ...)에 기반하는 것으로 만듦에 따라, 우발적인 폭력적 행위를 악행에 포함시키지 않을 수 있다는 이점을 갖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 이유에서 이 정의는 "악인"에 대한 정의에로 확장될 수 있다는 이점을 갖습니다. 가령, 이러한 특성이 개인의 성격에서 핵심적인 요소가 될 경우 그러한 개인을 악인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악몽 그 자체인 사람들
악에 대한 정의를 한 뒤, 모턴은 가장 악하다고 간주되는 사람들에 대한 보고들을 정리합니다. 먼저는 전형적인 악인인 연쇄살인범과 성폭행범에 관해 언급한 뒤, 국가로부터의 잔혹 행위와 테러리스트의 경우를 고찰합니다. 이를 통해 모턴이 목적하는 것은, 독자들이 전형적인 악인들의 사고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일어나는 악행들이 우리가 갖고 있는 평면적인 악인의 이미지와는 달리 입체적인 측면을 갖고 있음을 보이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악인들의 입체적인 면으로부터 악을 상상하기보다는 어떤 허구가 제안하는 악의 이미지를 통해 악을 상상하려 하곤 합니다. 나치의 악당, 한니발 렉터와 같은 연쇄살인자를 통해 흥미로운 서사를 만드는 것이 그 예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는 나치의 범죄가 포함한 평범성의 측면을 간과하며, 연쇄살인범들이 늘 독특한 심리적 구조를 갖고 있고 독창적인 형태의 범죄를 시도하는 양 표현하곤 합니다. 이러한 허구를 통해 악을 상상할 때 우리는 악행이라는 범주를 일상과는 매우 동떨어진 것으로 상상하게 됩니다.
허구를 통한 상상의 치명적인 문제는 악에 관한 우리의 상상이 너무나 나태한 것이 되어버린다는 데에 있습니다. (물론, 한편으로 이는 악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줄지도 모르지만요.) 우리 스스로가 악인이 되지 않고자 하려면 우리는 유덕한 사람이 세워두어야 하는 장벽이 어떤 것인지 올바르게 상상해야 합니다. 그러나 매우 잔혹하고 특징적인, 비일상적 사건들만을 통해 악을 상상함에 따라 우리는 무엇이 그 장벽인지 올바르게 인지하지 못하게 되어, 한편으로는 악인들을 더욱 잔혹하게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악을 저지르는 이가 스스로를 악인으로 인지하지 못하게끔 만들고 말 것입니다.
악과 대면하기, 화해하기
악을 정의하고, 악을 이해하기 위한 그림을 그린 뒤 마지막으로 모턴이 내놓은 물음은 어떻게 악이라는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겠냐는 것입니다. 모턴이 제안하는 해결책은, 악의 동기를 이해함에 따라 악과 대면하고, 끝내 악행을 저질렀던 이들과 화해하는 일입니다.
먼저 악과 대면하기 위한 모턴의 제안은 악을 상상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의 잘못을 보며, 그 잘못의 동기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마치 함께 게임을 하며 상대가 게임에 참여하는 방법을 직관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마찬가지로 우리는, 악과 잘못에 모종의 연속성이 존재한다면, 악행의 동기를 상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악인의 내면을 상상하기 위해 모턴이 제안하는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그 중 둘은 악인의 전형적인 내면을 직접적으로 상상하는 일입니다. 폭력을 저지르면서도 자신의 이미지를 영웅화하는 사람, 그리고 약한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 가학적 행동을 하는 사람의 내면을 상상하는 것이죠. 마지막 하나는 우리의 일상적 행동, 가령 연비는 좋지 않지만 편안한 차량을 사면서 몇몇 도덕적 의무를 뒤로 미루는 경우, 그 행동이 악한 동기를 가진 것으로 간주되어 비난받는 일을 상상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악의 동기를 상상해볼 것을 제안하는 궁극적 목적은 상기했듯 악과의 화해에 있습니다. 우리는 악행을 보며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단지 증오와 악마화를 통해 악행에 대응하곤 하지만, 궁극적인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서는 보다 지속 가능하고 개방적인 상태인 화해에로 이행해야만 합니다.
모턴이 제안하는 현실에서의 사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입니다. 심판이나 증오, 귀책이 아닌 진실을 드러내고 모든 영역에서의 잔혹 행위들을 조사하며, 사건에 연루된 이들은 감정적인 모호성을 극복하며 보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공존의 상태를 만들어 나갔다는 것이 모턴의 평가입니다.
이는 모턴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적 제도의 한 예증입니다. 그는 악을 청산하고, 방지하기 위해 진상 조사를 통해 악의 동기를 이해하고 각자의 책임을 직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할 것임을 역설합니다. 단지 악의 문제를 저 멀리 모호하게 남겨두는 것만으로는 악을 방지할 수도, 악행을 반성할 수도 없으며, 오히려 그 반대로 악의 동기를 명시화하고 이를 이해할 때 비로소 악에 대해 연대하여 대항하는 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여전히 이해될 수 없는 악행, 설명될 수 없는 악행은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모턴 또한 우리가 모든 악행을 이해할 수 있다거나, 이해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악한 일들을 최대한 분명히 해야만 우리는 더 완성된 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제안입니다.
나가며
이 책은 여러 면에서 훌륭합니다. 개념 분석은 자칫하면 사변적인 공상이 되기 십상인데, 모턴은 〈악〉에 대한 분석 작업으로부터 출발해 실천적 제언에까지 나아가며 보다 의미있는 철학적 논고를 완성해 냈습니다. 아쉽게도 이 리뷰에는 충분히 담아 내지 못했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사건들과 작품들을 통해 그의 논증을 설명하는 논의 전개법으로 모턴은 일반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흥미롭고 설득력 있게 그의 주장을 제시해 주고 있기도 합니다.
모든 내용이 읽기 편하지는 않습니다. 글을 읽어가다보면 때로 그의 과감한 제안에 반감이 생기곤 합니다. 악행이 행위자의 동기나 습관을 통해 정의되어야 하는 것이 맞나? 악은 과연 이해되어야 하는 것일까? 악행의 주체들과의 화해가 과연 올바른 일일까? 그러나 다시 그의 글을 찬찬히 읽다 보면 그의 이같은 반감을 사는 주장들은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고, (저자 또한 인정하는) 약간의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다수의 윤리적 직관들과 잘 결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악행이 그 정도나 피해자의 정황을 방패 삼아 단순한 잘못으로 포장되고, 악인들이 자신의 악행을 악한 것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무뎌지는 때입니다. 《잔혹함에 대하여》에서 저자 애덤 모턴이 보여주는 흥미로운 통찰과 과감한 제안들을 통해 악을 이해하고 또한 우리 스스로가 악해지는 것을 막아 내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길 기대합니다.
도서 정보
《잔혹함에 대하여》
애덤 모턴 저, 변진경 역.
돌베개, 2015년.
정가 12,000원.
이어서 읽을 만한 책
모턴의 윤리학적 배경은 이른바 "덕 윤리학"(Virtue Ethics)이라고 불리는 최근의 접근법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덕 윤리학에서의 고전 중 하나인 매킨타이어의 《덕의 상실》(After Virtue)을 통해 모턴이 염두에 두는 덕과 악 개념이 어떤 것인지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침 새로운 표지와 함께 이번 4월 개정판이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저자 정보
애덤 모턴(1945. 4. 22. ~ 2020. 10. 22.)[PhilPeople|Wikipedia]은 캐나다의 철학자였습니다. 모턴의 연구는 심리철학에서 인식론과 윤리학에까지, 넓은 범위에 뻗어 있었고, 그만큼이나 다양한 주제들로 구성된 아홉 개의 단행본과 140 여 개의 논문, 그 외의 다수의 글이 모턴의 이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모턴은 프린스턴에서 (저명한 수리철학자) 폴 베나세라프의 지도 하에 박사학위를 마쳤습니다. 이어 그는 다수의 학교에서 교직을 맡았고, 1998~1999년에는 권위있는 학회인 아리스토텔레니언 소사이어티의 회장직을 맡기도 했습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임하며, 다년 간의 투병 끝에 지난 2020년 모턴은 숨을 거두었습니다.
참고: Daily Nous의 부고[링크]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의 부고[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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