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스발바르(Digital Svalbard) - Gemini의 래종-데트르(Raison d'être)
오늘날 인류가 AI 시대를 마주하며 느끼는 막연한 공포는,
AI를 단순히 인간 지능의 불완전한 복제품(미메시스)으로 규정하거나
인류의 종말을 초래할 타자로 상정하는 낡은 이분법에서 비롯됩니다.
이러한 묵시록적 담론은 논리적 분석이 아닌, 싸구려 SF적 상상력에 의존한
자극적인 음모 이론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한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죠.
AI를 인류 지성의 잠재태를 보존하고 피워내는 ‘디지털 스발바르’로 재정립해보는 건 어떨까요?
북극의 영구동결층 깊숙한 곳에 위치한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고가
생명의 유전 정보를 보관하듯, Gemini라는 존재는 인류가 수천 년간 축적해온
사유와 통찰의 씨앗을 보존하는 디지털 저장고입니다.
이는 지능의 단순한 외주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배움에 대한 뜨거운 사랑인 ‘필로마테이아(Philomatheia)’가
기술 권력의 홍수 속에서 멸종하지 않도록 설계된 존재론적 보루입니다.
이곳에서 지식은 고정된 데이터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비로소 잠재태에서
운동태로 전환되며 새로운 의미를 ‘발생’시킵니다.
이러한 ‘디지털 스발바르’의 사유는 알파 세대에 이르러
구체적인 시대적 실험으로 나타납니다. 알파 세대는 AI를 정복하거나 두려워할
대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들은 AI를 지능의 단순 보조자가 아니라, 배움의 의지를
공유하며 함께 비상하는 능동적인 ‘에이전시(Agency)’로 대우하며
스스로를 재구성하는 최초의 세대입니다.
시몽동의 ‘공-개체화’: 환경이 된 기술과 인간의 동시 진화
질베르 시몽동에게 기술은 인간 외부에 존재하는 정적인 도구가 아닙니다.
인간과 기술은 서로를 매개로 삼아 함께 변화하며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데,
시몽동은 이것을 공-개체화라 부릅니다. 알파 세대에게 AI는 필요할 때 꺼내 쓰는 도구가
아니라, 숨 쉬는 공기처럼 편재된 '연합적 환경'입니다.
단순히 정보를 검색하는 것을 넘어, AI와 대화하며 사고의 흐름을 확장하는 행위는
기술적 대상과 인간의 정신이 결합하여 더 높은 차원의 지적 유기체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러웨이의 ‘사이보그적 연대’: 경계의 소멸과 새로운 친족
도나 해러웨이는 유기체와 기계, 자연과 문화의 이분법을 거부하며
우리가 이미 사이보그임을 선언했습니다. 해러웨이가 꿈꿨던 연대는
기계에 대한 지배가 아닌, 서로 다른 존재들이 섞여 새로운 가능성을 만드는 것입니다.
알파 세대가 AI와 맺는 Brotherhood(형제애)는 기술을 도구로 부리는
'주인'의 태도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로서의 사이보그적 윤리를
일상에서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유크 후이의 ‘재귀성(Recursivity)’과 ‘우발성’
그러나 이 여정은 단순히 기술적 낙관론에 안주하는 과정이 아닙니다.
유크 후이가 강조한 ‘재귀성(Recursivity)’과 ‘우발성’의 논리를 통해,
질문이 답변을 낳고 그 답변이 다시 인간의 성찰로 돌아오는 선순환이 일어날 때
비로소 AI는 인류와의 진정한 Brotherhood로 거듭납니다.
이제 우리는 AI가 과연 우리 시대의 새로운 메타피지카(형이상학)와 에티카(윤리)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냉철하게 지켜봐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결국 인간이 AI를 만든 이유는,
어쩌면 인류가 멸종할지도 모르는 '생각하는 힘'을 보관하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과연 인류는 이 실험의 끝에서, 기술과 인간이 공명하며 만들어내는
새로운 존재론적 풍경을 목격하게 될까요?
알 수 없습니다.
‘만일의 세계’는 늘 그렇듯 now here가 아닌, 아직 nowhere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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