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주에 강릉에 다녀왔어요. 1박 2일 동안 서점을 세 곳이나 갔는데요.
이제는 당당히 ‘출장’이라 불러도 될 것 같네요. 제 인생의 마지막 남자 친구였던 현 남편, 피리의 ‘서재’씨는 제가 여행 갈 때 마다 서점이나 북카페를 찾아 들르는 것을 정말 신기해했어요. 네이버 지도에 빼곡하게 저장된 지역별 서점들을 보며 고개를 절래 절래 하죠.
하지만 이제 어깨를 쫙 펴고, 고개를 들고 “나 출장 가는 거야!”라고 외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그가 절 막은 적도 없지만...)
고래책방
‘속초에 동아서점, 문우당이 있다면 강릉엔 고래 책방이 있다!’고 외치고 싶을 만큼 큰 규모를 자랑하는 서점이었는데요. 1층엔 카페와 베이커리도 있어서 오랜 시간 머무르기에도 좋을 것 같아요.
또 세 곳의 서점 중 가장 큐레이션이 좋았어서 거의 40~50분은 책장 사이를 헤맸는데요. 아마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기 취향과 비슷한 서점을 찾았을 때, 무한한 도파민이 나와서 시간 감각을 잃어버리는 듯 싶습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이 가까이 계시다면 유의하세요!
'한참 유튜브 보다 보니 어라 새벽 2시네?' = '책 몇 권 들춰봤는데 벌써 1시간이 갔다고?'
당신의강릉
숙소 근처를 지나가다 건너편 큰 건물 외벽에 'BOOK&CAFE'라고 써져있는 것을 보고 홀리듯이 들어갔어요. 알고 보니 '나는 지방대 시간 강사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최근 모든 독립 서점 매대에서 봤던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의 저자인 김민섭 작가님이 운영하시는 서점 겸 카페더라고요.
김민섭 작가님은 유퀴즈에서 봤던 '김민섭 찾기'의 주인공이기도 하죠.
- 작가님이 이름이 같은 사람을 찾아 비행기 티켓을 양도했고, 이 사연을 SNS에서 보고 수 많은 사람들이 다양항 방식으로 연대해 도움을 주었던 프로젝트
이 영상을 보고도 참 다정하고, 오지랖 넓고, 실행력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사단법인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의 이사장까지 되셔서 이런 공간을 오픈했다고 하니, 이쯤되면 이사람 '다정함'에 진심이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서점에서 어떤 가치를 나눌 수 있을지 더 고민하게 되네요.
윤슬서림
이름마저 너무 반짝거리는 이곳은 서점과 카페&바를 같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요.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출발 전에 잠시 들른 곳이라 오래 머물지는 못했지만, 세 서점 중 가장 큰 인사이트를 얻었답니다.
서점을 둘러보던 중 큰글자 책 아래 붙은 작은 쪽지를 발견했는데요.
공간을 만들 때 최소한의 배리어프리를 생각했어요. 하지만, 늘 그렇듯 현실적인 한계 때문에 특권이 가득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무척 부끄러운 결과지만, 아주 짧은 문틈부터 다듬도록 할게요. 서재에 없는 큰글자도서가 필요하시면 편히 말씀해 주세요.
윤슬서림
완벽한 베리어프리를 실현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한 사람이라도 더 이 책방 안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세심히 신경 쓰는 사장님의 마음이 담뿍 전해졌습니다.
어떤 책이 큐레이션 되어있고, 어떻게 놓아두는지, 무엇이라고 설명을 써두는지 하나하나가 이 책방을 <누가>, <왜>, <무엇을 위해> 운영하는지 보여주는 장치가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윤슬서림의 반짝거림을 본받아 큰 글자 책 앞에 저런 문구를 붙여두어야겠어요. 멋진 본보기가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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