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주제로 나는 커뮤니티를 시작할 수 있을까?
150명이 모였을 때, 사람들이 나한테 해준 말은 거의 하나였다.
"비즈니스 스터디를 하고 싶었는데 할 데가 없었어요. 너무 좋아요."
비어 있는 곳이 이미 있었고, 다행히 내가 거기 앉아 있었다.
글을 쓰고 있는 저는 2012년부터 인사이터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어왔습니다.4명짜리 스터디로 시작해 지금까지 670여 개의 모임을 만들었고, 1만 명 넘는 사람이 거쳐간 커뮤니티를 운영해 왔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나만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왜 좋은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오늘은 나만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은 분들이 어떤 주제로 커뮤니티를 시작하면 좋을지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커뮤니티 주제는 내가 꽤 관심 있는 것에서 (1등이 아니어도 된다)
커뮤니티를 만들려고 주제부터 잡으려니 막막한 게 사실이다.
- Q. 내가 남들보다 특출나게 잘한다고 할 만한 게 있나?
- Q. 관심 있는 분야이긴 한데, 관심 정도로 시작해도 충분한가?\
- Q. 이제 막 배우고 싶어진 분야여도 되나?
세 질문이 다 같은 걸 묻고 있다.
내가 자격이 있나.
14년 굴려본 입장에서 답하면 셋 다 된다.
1등이 아니어도 되고, 관심 정도여도 되고, 아예 모르는 분야여도 된다.
인사이터의 시작은 학교 앞 카페베네에서 모인 4명이었다

나는 경영을 잘 알아서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반대였다.
27살, 학부 전공은 경영학이었는데 배우는 게 전부 이론이었다. 케이스 스터디가, 실제로 회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가 늘 궁금했다.
창업은 하고 싶은데 더 현실적인 비즈니스가 궁금했고, 지금의 내 상태가 답답했다.
그래서 대학생 때 DBR(동아비즈니스리뷰)을 읽고 리뷰하는 스터디를 만들었다.
당시 스펙업이라는 네이버 카페나 학교 게시판에 올려 함께 스터디할 인원을 모집했다.
다행히 4명이 모였다. 우리가 모인 곳은 학교 앞 카페베네였다.
처음이었기에 아직도 함께 읽은 첫 아티클이 기억난다. CSR vs CSV였다.
잘 알아서 만든 모임이 아니라, 비즈니스와 경영을 모르니까 알고 싶어서 만든 모임이었다.
다만 마음만은 진심이었고, 진짜 알고 싶고 배우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모임이 사업화하기 전 스터디 모임 상태로만 150명까지 갔다.
내가 전문가가 아니어도 비즈니스 스터디를 커뮤니티 주제로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스터디 방식 때문이었다.
커뮤니티에도 여러 유형이 있다(나중에 다루겠지만).
그중 교육 커뮤니티에도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전문가가 일방적으로 알려주는 강의 형태, 그리고 지식을 집단지성으로 나누는 Share 형태다.
인사이터는 당시 비즈니스 케이스를 같이 읽고, 각자 발표하고, 토론하는 게 코어였다.
그래서 만든 사람인 내가 전문가가 아니어도 유의미한 스터디형 커뮤니티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리더 본인이 특출나면 유리하다. 조건은 아니다
해당 분야에 리더 본인이 아주 잘 알고, 특출나면 유리한 건 맞다.
강의 형태로 바로 열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건 유리한 조건이지 필요한 조건이 아니다.
관심 정도여도 커뮤니티 주제가 된다.
전혀 모르는데 배우고 싶은 분야여도 된다.
나처럼 궁금해서 만들어도 된다.
리더의 동기가 가짜면 100% 죽는다
다만 조건이 하나 있다.
리더의 동기가 커뮤니티 주제와 붙어 있어야 한다.
여기가 어긋나면 주제를 아무리 잘 골라도 안 굴러간다.
- 커뮤니티가 재밌어 보여서.
- 책이나 가볍게 읽을 겸.
- 주제엔 관심 없지만 이성을 만나고 싶어서.
이런 동기로 시작한 모임은 오래 못 간다.
밖에서 보면 커뮤니티 리더도 여유롭고 즐거울 것만 같지만
실제로는 아니다.
리더는 모객하고, 운영하고, 거버넌스 짜고, 규칙 만들고, 멤버를 관리한다.
모임 두 시간을 위해 그 앞뒤로 붙는 시간이 훨씬 길다.

가벼운 동기 < 운영 공수와 시간.
이 부등호가 뒤집히는 날 커뮤니티는 조용히 멈추게 된다. 리더 본인이 동력을 상실한다.
커뮤니티 모임 안에 어떤 이슈가 생겨서가 아니라, 리더가 먼저 지쳐서 멈춘다.
예를 들어 영어 모임을 만든 사람이 있다
사실 이 사람은 영어엔 크게 관심이 없다. 이성을 만나고 싶어서 만든 모임이다.
이 모임은 지속되기 어렵다.
이성을 만나자고 태워야 하는 에너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가 만나고 싶던 사람은 없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만 모인 모임이 되었다면, 그날로 끝이다.
동기에 진정성이 약하니 커리큘럼이나 모임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도 않다.
그래서 간혹 영어 스터디에 제대로 임하고자 하는 진지한 멤버가 와도 곧 나가버린다.
사람을 만나려는 게 잘못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게 진짜 동기라면 차라리 솔직하게 2030 파티 커뮤니티를 만드는 게 낫다.
커뮤니티 색깔과 본인 동기가 일치하니까.
돈이 된다길래 시작한 사람
트레바리가, 인사이터가, 또 어디가 커뮤니티로 돈을 번다더라.
그 말을 듣고, 커뮤니티엔 아무 니즈가 없음에도 커뮤니티를 시작한다.
한 달 해보고 접는다.
버는 돈은 크지 않은데 쏟아야 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크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수익모델의 효율성과 임팩트로만 따졌을 때
사업에선 커뮤니티보다 나은 사업 카테고리가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할 주제보다 커뮤니티 리더의 동기가 더 중요하다.
사람들이 관심 있어야 하는 주제여야 하는 것도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리더의 동기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순서가 반대면 오래 못 간다.
동기가 진짜여도 규모가 커지면 운영도 부담스럽다.
나는 3년 동안 거의 무료로 스터디를 운영했다.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동기가 진짜였으니까.
그런데 인원이 커지니까 관리 코스트와 시간이 같이 커졌다.
어느 순간 이걸 무료로 계속 굴리는 건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내 에너지는 제한적이니까.
사업화하지 않았다면 인사이터는 20명~30명 내외의 운영이 부담스럽지 않은 규모로 줄이거나, 동아리로는 지속되지 못했을 것 같다.
동기는 커뮤니티를 지속하는 큰 힘이지만, 운영 공수가 그 동기의 힘보다 커지는 시기가 올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 비즈니스 스터디에 대한 동기가 정말 컸기에 동아리로 3년 동안 운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3년을 버텼기에 10년이 된 인사이터가 있을 수 있었다.
진짜 동기가 있으면 3년을 버틴다. 없으면 세 달을 못 버틴다.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까지 관심 있는 것, 배우고 싶은 것으로 커뮤니티 주제를 잡아도 된다고 했고,
그 주제가 내 동기와 붙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한 발 더 나가자면, 우리 커뮤니티 주제가 뾰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서클럽 하고 싶어요, 독서클럽 해요!"
"영어모임 하고 싶어요, 영어모임 해요!"
"AI 공부 하고 싶어요, AI 공부 해요!"
이걸로는 부족하다.
우리 독서클럽의 뾰족함은 뭐지
독서모임 주제 하나를 놓고도 뾰족해지는 길은 여러 개다.
- 모임 때마다 그 책의 저자를 모셔서 같이 토론한다
- 다른 독서클럽이 잘 안 다루는 주제를 판다. 철학 같은 것
- 선발제로 멤버를 뽑아서, 리더가 직접 면접을 보고 영감을 주는 사람들로만 채운다
- 인플루언서들끼리만 하는 독서클럽으로 간다
- 혹은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다. 특정 발화 주제에 맞춰 이야기를 나누고, 나눴던 이야기를 모임 후 공유해 복기할 수 있게 한다든가

상기에 예를 든 인플루언서끼리의 독서클럽 경우를 보자.
독서클럽인데 독서클럽만은 아니다.
여기 들어가면 다른 인플루언서들과 정보 공유가 되겠구나, 네트워킹이 되겠구나 하는 기대가 붙는다.
그 +α 때문에 가고 싶어진다.
반대로 아무 영향력도, 특징도, 차별점도 없는데 "독서클럽 해요~" 하면 잘 안 모인다.
독서클럽은 많은데 꼭 거기 가야 하는 이유를 못 찾겠으니까.
너무 어렵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요즘 아내가 AI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있는데 굉장히 좋아한다.
만족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커뮤니티 리더가 모임 운영과 퍼실리테이션을 잘한다고 한다.
AI 경험도 많아서 전문가적인 포지션에서 본인의 노하우를 많이 공유하기도 하고.
더불어 해당 모임은 35~45세 여성만 참여 가능한 모임이라고 했다.
편안하게 비슷한 연배의 여성들과 모임을 함께하는 편안함이 있다고 했다.
이렇게 타겟을 제한한 것만으로도 이 AI 커뮤니티가 다른 AI 커뮤니티와 차별화되는 킥일 수도 있다.
빈 자리는 찾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에 가깝다
앞에서 사람들이 나한테 "비즈니스 스터디 할 데가 없었어요"라고 했다고 썼다.
그 자리가 원래부터 비어 있었던 건 아니다.
비즈니스를 공부하는 모임은 많지는 않더라도 그때도 있었다.
없던 건 주제가 아니라 형태였다.
케이스를 각자 읽어 와서, 각자 발표하고, 서로 토론하는 형태.
내가 포지션으로 잡은 건 새로운 주제가 아니라 그 형태였다.
독서모임을 해도 된다. 이미 그 형태의 모임이 많아도 된다.
같은 독서모임에 뾰족함을 하나 얹는 순간 그건 없던 모임이 된다.
다만 주의할 건 그 뾰족함은 타겟에게 진짜 여기 아니면 없는, 그런데 또 매력적인 무언가여야 한다.
뭘 하나 얹었다고 뾰족함이 생기진 않는다. 내 가설에 따라 뭘 하나 얹어서 내 뾰족함이 타겟에게도 통하는지 실험해보고 계속 날카롭게 다듬어 가야한다.
이렇게 하다보면 이 모임 아니면 안 되는 이유가 생긴다.
양봉가도 벌통을 아무 데나 놓지 않는다. 꽃이 있는 자리에 놓는다.
첫 벌통을 어디 세울지 정하는 게 지금 이 단계다.
우리 커뮤니티에 들어와야 하는 고유한 이유는 뭘까.
이 고민은 커뮤니티를 만드는 사람의 몫이다. 대신해 줄 사람이 없다.
오늘 내용을 정리하며
1등이 아니어도 커뮤니티 주제가 된다.
대신 그 주제가 내 동기와 붙어 있어야 하고,
같은 주제라도 뾰족함이 하나는 얹혀 있어야 한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서 시작했습니다.
CSR과 CSV가 뭐가 다른지도 그날 카페에서 처음 읽었고요.
다만 개인적으로 비즈니스가 정말 궁금했고, 내가 필요해서 만든 모임이었어요.
그리고 계속적으로 인원이 많이 모일 수 있었던 이유는 스터디 방식에서 오는 뾰족함이었다고 생각하고요.
오늘은 여기에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만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은 분들께 도움이 되었길.
다음 편에서는 몇 명을 모아야 시작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사람들을 어떻게 모으는지 생각을 나누려고 합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