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그 차이를 먼저 이해하자
산업재해에 따른 형사처벌 위험은 더 이상 현장 관리자만의 몫이 아닙니다. 2022년 1월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존 산업안전보건법과 달리 '경영책임자'의 형사책임을 전면에 내세우며, 대표이사·임원에게 직접적인 처벌의 칼날을 겨누고 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가 근로자의 산업재해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안전·보건 조치를 취하도록 정하고 있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이 가능합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사망 등 중대산업재해 발생 시 경영책임자가 위험 예방 조치를 소홀히 했는지 여부 자체를 범죄행위로 보며 처벌합니다.
이 둘은 병행 적용될 수 있으며,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대부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가 먼저 조사되고, 그 위반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의 근거로 이어집니다.
2. 대표이사 및 임원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현장은 안전관리자가 책임지는 것 아닌가요?” 대표이사와 임원들이 자주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수사기관의 시선은 다릅니다. 경찰청 수사국과 집중수사팀장으로 근무하며 직접 조사했던 사건들을 돌이켜보면, '현장의 문제'를 '경영의 문제'로 접근하는 시각이 더욱 강해졌다는 걸 체감합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167조는 '사업의 실질적인 운영 책임을 지는 자'를 명확히 처벌 대상으로 규정합니다. 실제 책임자가 누구인지는 직함보다도 의사결정 구조, 보고라인, 예산권 행사 여부 등 종합적 요소로 판단합니다.
한 제조업체에서 발생한 협착사고 사건에서, 대표이사는 일선 안전 담당자에게 책임을 전가했지만, 법인은 물론 대표이사 개인까지도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법원은 “위험기계에 대한 안전조치 예산이 보고됐음에도 불구하고 승인하지 않은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3. 실제 형사처벌 사례로 보는 리스크 포인트
사례 1: 한국제강 대표이사 실형 선고
2023년 4월,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은 한국제강 대표이사 성형식 씨에게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원청 대표이사가 구속된 첫 사례로 주목받았습니다. 법원은 성 대표이사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아 근로자가 사망에 이르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사례 2: 삼강에스앤씨 대표이사 징역 2년 선고
2022년 9월, 삼강에스앤씨 대표이사 A 씨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습니다. 법인은 벌금 20억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인한 대표이사의 실형 사례로, 경영진의 책임이 더욱 강조된 사례입니다.
사례 3: 온유파트너스 무죄 판결
반면, 일부 사례에서는 무죄 판결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온유파트너스 사건에서 법원은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였으며, 중대재해 발생과의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이러한 판결은 경영진이 안전보건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함을 시사합니다.
4. 법무팀이 챙겨야 할 실전 대응 전략
수사현장에서 제가 직접 목격한 수많은 기업형사사건의 공통점은, 사고 발생 이전부터 리스크는 존재했고, 관리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기업이 철저한 시스템을 구축했다면, 경영진이 수사기관의 문을 두드릴 일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첫 번째 대응 전략은 안전보건관리체계의 실질화입니다. 단순히 매뉴얼만 갖춘다고 해서 책임이 면제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대표이사가 직접 위험요인 보고를 받고, 시정조치를 지시한 내역을 남기는 ‘기록화된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교육과 훈련의 정기성과 문서화입니다. 법적으로는 연 1회의 정기 교육이 의무이지만, 사고 예방을 위한 현장 중심의 수시 교육을 병행하고, 참석자 서명, 교육자료, 질의응답까지 정리된 자료가 존재해야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방어 논거가 됩니다.
세 번째는 사고 발생 시 대응 매뉴얼 마련입니다. 산재 사고 발생 직후 현장을 보존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분석하며, 근로자·하청업체와의 소통까지 진행하는 과정에서 법무팀 주도의 초기조치가 형사책임 유무를 가르는 기준이 됩니다. 이때는 실제 수사 경험이 있는 변호인의 자문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5. 결론 — 산업안전 리스크, 결국은 경영 리스크다
법무팀 실무자는 이제 단순한 계약 검토자나 사후 대응자가 아닙니다. 기업 경영 전반의 리스크를 사전에 관리하는 예방 중심 법무 전략의 핵심 축입니다. 특히 산업안전 분야는 사후 대응보다 사전 예방이 훨씬 더 효율적이고, 저비용이며, 기업 생존에 직결됩니다.
수사 경험자로서 말씀드리자면, 산업안전 사건 수사에서 피의자의 태도와 초기 대응은 향후 기소 여부, 형량, 기업 이미지 모두에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대표이사·임원은 더 이상 '면책 가능한 위치'가 아닙니다. 법무팀이 안전경영의 첫 방어선임을 자각하고, 형사 리스크를 시스템으로 관리하지 않는다면, 작은 사고 하나가 기업 전체의 존속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기업의 법무팀이라면 지금 이 순간,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을 중심으로 사내 리스크 진단을 시작해야 합니다. 내부 점검체계, 안전교육 기록, 의사결정 보고라인까지 꼼꼼히 체크하십시오.
그리고 사고가 발생하기 전, 현장과 경영진의 연결고리를 법무팀이 선제적으로 구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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