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5] 🌻 누구에게나 뮤즈가 다녀간다

잘 지내셨나요? 달콤한 연휴가 모두 물러가고 밀려드는 적적함 속에서 레터를 쓰고 있는 숑🌻입니다. 한두 주 사이 깨달은 진실은 정녕 주 4일이야말로 인간의 바이오 리듬에 완벽하다는 것... 하지만 이번 생 안에는 그른 것 같으니, 기왕의 일상으로 착실히 복귀하기 위해 노력한 며칠이었습니다. 인생은 가끔 가다 여유가 생기는 주말뿐만 아니라 매일 즐기는 것이라고 투철하게 믿어야 한다던데, 이 믿음을 관철하기가 결코 쉽지가 않네요.

구독자님, 요즘 일상에서 마주친 기쁨이 있으신가요? 저는 첫째로 동네 천변을 산책하다 능소화를 발견한 날 기뻤습니다. 그보다 우아할 수 없는 주홍빛과 미처 피지 않은 단단한 봉오리를 마주하고 정말로 여름의 문턱을 밟은 느낌을 받았어요. 흐드러지게 핀 꽃도 예쁘지만 이렇게 만개를 준비하는 시기가 좀더 설레더라고요. 요즘 바빠 죽겠다고 징징대며 지냈는데 너희도 어딘가에서 부지런히 피어날 채비를 했구나 싶어서 동질감(?)도 들고요.

두 번째 기쁨은 제가 크로스핏을 시작한 지 딱 1년이 됐다는 사실이에요. 이전에도 복싱, 헬스 등 이런저런 운동을 깨작거렸지만 1년을 온전히 채운 건 처음이거든요. 물론 매일 새롭게 힘들지만 이 운동에서 얻은 성취감이 일상에 큰 엔진이 됩니다. 그러고 보면 음악이든, 책이나 운동이든 저마다의 뮤즈가 다녀가는 순간이 있다고 믿게 돼요. 다른 이에게는 무심히 지날 법한 뭔가가 나에게는 맞춤옷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형형한 영향력을 끼치는 현상 말이죠.

달력에 당분간 빨간 날이 없어 한숨을 쉬게 되는 지금일수록 평범한 오늘의 기쁨을 더 부지런히 찾아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여러분의 머릿속을 스친 작은 기쁨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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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목인 - 뮤즈가 다녀가다

아마 5월 내내, 완연한 초여름으로 접어든 지금까지도 가장 자주 재생한 곡을 꼽으라면 바로 이 노래다. 김목인이라는 포크 가수가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딱히 노래를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지극히 우연한 계기로 듣게 됐다. 그리고 첫 7초를 듣는 동안―단정한 피아노 선율을 지나 아코디언이 슬쩍 손짓하는 순간!―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근사한 노래를 왜 이제야 안 거지!

노랫말은 어느 밤 작은 카페에 모여 앉아 있던 사람들에게 뮤즈가 다녀간 순간에 대해 말한다. "누가, 어떤 연주를 했길래?" 카페를 채우는 웅성거림까지 노래를 타고 전해지는 듯하다. 하지만 누구의 연주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저마다 음악으로부터 행복을 나눠 가졌을 뿐이라고 한다. 인생의 정말 좋은 것들은 억지로 부를 수 없기에 각자의 할 일을 하다 보면 또다시 그 순간이 찾아올 것이라고.

연휴의 달콤함을 아쉽게 곱씹는 지금 더욱 귀에 박히는 가사가 아닐 수 없다. 영감의 순간은 묵묵히 살아가는 나날 어딘가에 민들레 홀씨처럼 우연히 날아든다. 어쩌면 똑같은 시공간을 통과하면서도 뮤즈는 모두에게 다른 방식으로 찾아온다. 피곤한 퇴근길 랜덤재생으로 틀어둔 음악이 귀에 쏙 박히거나, 전에는 보이지 않던 꽃송이가 눈앞에 산들거리거나, 기대치 않았던 이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를 툭 건네 받는다거나. 억지로 곁에 붙잡아 둘 수 없는 그 순간을 온전히 알아채길 바라는 것. 다시 일상을 착실히 이어 나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일 것이다.

🌻 The Struts - One Night Only

내게 로큰롤 뮤즈가 날아든 순간을 꼽자면 이 밴드를 빼놓을 수 없다. 2019년의 어느 날 나는 웹서핑을 하다 스트럿츠(The Struts)라는 영국 밴드를 알게 됐고, 90년대생이라고 믿을 수 없는 엄청난 올드락 포스에 오감을 빼앗겼다. 보컬인 루크는 아마 데뷔 이래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를 닮았단 소릴 5억 번쯤 들었을 것이다. 눈에 띄는 스타일링과 힘 있고 어딘가 관능적인 목소리가 퀸의 음악을 자주 떠올리게 한다.

검색 결과도 많지 않은 이국의 밴드를 덕질하느라 뜨거운 나날을 보내던 중, 그 해 오사카에서 열린 락 페스티벌(섬머소닉) 라인업에서 스트럿츠를 발견했다. 고뇌 끝에 나는 오로지 그들만을 보기 위해 일본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그러고서 반 년이 채 되지 않아 전염병이 터졌으니 그때의 결단을 떠올리면 지금도 종종 가슴을 쓸어내리곤 한다. 열도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모든 감각을 활짝 열고 들은 스트럿츠의 무대는 정말로 퍼킹 끝내줬다.

스트럿츠는 내가 소비하고자 하는 락밴드의 거의 모든 전형을 갖추고 있다. 눈치 보지 않고, 창법부터 무대 위 제스처며 태도가 시원시원 뻥뻥 뚫리고, 보는 사람마저 자유롭게 만드는 매력적인 자신감과 폭발하는 에너지까지. 그들을 향한 열광의 끓는점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의 기억은 다행히 온몸 곳곳에 새겨져 있다. 지금의 시간과 마음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앞으로도 가슴 뛰는 일에 앞서 '할까, 말까'를 고민하게 된다면 이 명제를 되새기며 용감히 나아가려 한다.

국내에도 페스티벌이 속속 귀환하고 있는 가운데, 비슷한 고민의 과정을 거쳐 8월의 펜타포트 티켓팅을 마쳤다. 스트럿츠가 국내 락페 라인업에 이름을 올릴 날은 요원하지만 그날까지 나는 무기한 기도를 올릴 작정이다. 존버는 분명 승리한다고!

🌻 ADOY - Don't Stop

이왕 공연 얘기를 적었으니 가장 최근 다녀온 공연 얘기로 이어가 볼까. 열흘쯤 전에 아도이(ADOY)의 단독 공연에 다녀왔다. 특이점이라면 소중한 친구로부터 깜짝으로 티켓을 선물 받았다는 점이다. "혹시 아도이 좋아해?" "당연하지!" "이거 아도이 공연 표인데, 나중에 가서 봐." "대박... 언젠데?" "30분 뒤, 바로 옆 공연장에서!"

아도이의 음악은 늘 언젠가의 향수와 이야기를 불러오곤 했다. 2017년, 그들의 데뷔 앨범 타이틀 곡인 <Grace>를 처음 듣고 받았던 충격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쩜 밴드 이름은 발음마저 몽환적인 여백으로 가득한지. 그 해 이후 나의 초여름을 채색하는 데 있어 아도이의 노래들은 팔레트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이미 지나가버린 어느 날을 기분 좋게 돌아보는 바로 그 순간 귓가를 스칠 것 같은 음악. 내게 있어 아도이의 존재감은 그렇게 희뿌연 듯 분명하다.

그랬던 밴드의 공연을, 거리두기가 해제된 뒤 처음 스탠딩으로 원없이 소리치며 뛰어 놀고 왔으니 또 하나의 즐거운 이야기가 한 겹 쌓인 셈이다. 공연의 백미는 데뷔 앨범에 수록되었던 <Don't Stop>이었다. 아무 이유 없이 젊음과 자유로움 그대로 멈추지 말자고 소리 높여 외치던 시간에는 의심의 여지 없이 뮤즈가 깃들어 있었다. 여러 해가 지나도 이 노래는 내게 특별한 향수를 데려다주리라는 기분 좋은 확신이 든다. 이렇듯 뮤즈는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니, 항시 눈과 귀를 쫑긋 세우고 현재를 살아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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