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65] 🌻 이 여름의 휴양지, 술, 위로를 닮은 노래 세 곡

잘 지내셨나요? 숑🌻입니다. 매번 돌아오는 레터에서 날씨 얘길 빠뜨릴 수 없는 이유는 역시, 코리아의 사계절의 너무나 변화무쌍하기 때문이겠죠. 지난 달엔 유월부터 훅훅 찌는 폭염에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내용을 적었던 것 같은데 근래는 기나긴 장마가 이어지고 있네요. 구독자 님은 지루하면서도 때때로 폭력적인 칠월의 나날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습기에 굴하지 않고 꾸역꾸역 나만의 루틴을 굴리고 계신가요? 때 이른 여름 휴가를 떠나셨나요?

저로 말할 것 같으면 딱 중간이었어요. 매일 일하고 운동하고 책장을 넘겼고, 짧은 휴가를 쓰고 집에서 양껏 누워 보내기도 하고, 주말엔 친구들을 만나러 1박 2일 전주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덥든 습하든 날씨가 고역이다 보니 하루를 버티듯 보낸 날도 많았어요. 그럴 때면 이런 날 또한 지나고 보면 아쉬울 인생의 하루일 거라 생각하곤 했습니다. 보양이 될 만한 소울푸드도 부지런히 챙겨 먹으면서요.

한 해를 등산으로 비유한다면 칠월쯤이 봉우리의 가장 경사진 구간 아닐까요? 삼복 더위로 대표되는 무더위를 무사히 치러내면 입추와 함께 한 해의 내리막이 시작되고요. 더위가 다 물러가고서야 언제 올해가 다 갔냐며 한탄하고 아쉬워 하지 않으려면, 땀이 줄줄 흐르는 순간일수록 현재를 또렷하게 바라봐야겠습니다. 뭔가 경건한 다짐의 글이 되어버리네요.. 아무튼 저의 요즘을 함께한 노래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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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소쿠리클럽 - work, shit, sleep

지소쿠리클럽은 2022년 데뷔하자마자 올해의 헬로루키 대상을 받았다. 알고 보니 지소쿠리(JISOKURY)가 2019년부터 솔로로 활동하다 외로워서(?) 친구들을 영입했다는 밴드 소개를 읽었다. 곡마다 휴양지의 잔잔한 바다와 나무 그늘이 떠오른다. 딱 요즘 듣기 좋은 서프록인데 그들이 소개하는 음악 정체성은 '캠핑록 피싱팝'이다. 서핑보단 캠핑이나 낚시를 좋아해서 단어를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하긴 뭐 기존의 장르에 갇힐 필요가 있나?

아무래도 등이 묵직한 백팩을 멘 상태거나 지하철에 오른 채 듣기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멀리멀리, 기왕이면 녹음이 짙고 물소리가 들리는 곳이면 좋겠다. 치열한 잡념을 밀어두고 마음껏 시간을 낭비할 수 있는 여행지의 BGM이다. 이들을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는데, 마침 다음 달 열리는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마지막 날 라인업에서 지소쿠리클럽의 이름을 발견했다. 나는 딱 이날 하루 가는데! 운명인가!? 작렬하는 송도의 태양 아래서 듣게 될 이들의 음악은 또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 릴리 잇 머신 - 선잠

살아 온 날들 중에서 가장 술과 거리 둔 여름을 보내고 있다. 응당 여름이면 냉장고가 빌 틈 없이 세계맥주를 사다 채워 놓고 밤마다 한 캔씩 까면서 나만의 맥주 품평회를 열곤 했는데, 여름밤과 차가운 라거 맥주의 공식은 구구단 5단처럼 툭 치면 딱 나올 정도였는데... 역시 사람은 변하기도 하나 보다. 요즘은 맑은 정신으로 눈 뜨는 아침이 조금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물론 사람이 또 언제 360도로 변해 복귀할지는 모름)

그치만 이 생각이 유일하게 흔들리는 순간이라면 운동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거나 업무 스트레스가 잔뜩 쌓였을 때도 아닌, <선잠>처럼 시원시원한 밴드 음악을 귀에 꽂고 있을 때다. (앨범 커버의 영향도 있을까?) 릴리 잇 머신(Lilly Eat Machine)은 작년 데뷔한 한국 밴드다. 이름의 유래에 대한 인터뷰를 얼핏 읽었는데 '릴리'라는 단어가 주는 부드러운 느낌과 '머신'이 주는 차가운 느낌의 대조가 좋았다고 한다. 아무려면 느낌 좋은 이름이고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어딘가로 힘차게 발걸음을 옮기는 여름의 순간을 닮았다.

🌻 김일두 - 가깝고도 머언

부산 아저씨, 아니 부산의 천재 싱어송라이터 김일두의 노래를 좋아한다. 그의 목소리는 보통 쓸쓸하고 가끔 처연하지만 대개 솔직하다. 속뜻을 품은 채 빙빙 에둘러 말하지 않는 이와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는 순간처럼 거리낌 없이 개운하다. 남들 앞에서 속내를 투명하게 비추는 게 힘든 사람에게 언제든 김일두의 노래를 권하고 싶다. 어딘지 묘한 대리만족까지 느껴지기 때문이다.

2021년 발표한 앨범에 실린 <가깝고도 머언>은 그간 들어 온 김일두의 노래 중 가장 긍정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홀가분하고 따뜻한 창법에서 김현식 느낌도 난다. 최근 꾸역꾸역 돌리는 일상의 쳇바퀴가 유독 묵직하게 느껴지던 밤마다 김일두의 목소리에서 새삼 위로를 얻었다. 이토록 태연하고 무던한 김일두 아저씨의 목소리. '괜찮아 괜찮아, 정말 괜찮아~' 평소였으면 알맹이 없는 위로라고 느꼈을 몇 마디가 왜 유독 와닿았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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