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27] 🌻 남은 시월을 좀더 촘촘하게 보내는 방법

한 주도 잘 지내셨나요? 숑🌻입니다. 어느덧 시월의 마지막 목요일입니다. 저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일 년에 며칠 되지 않을 완벽한 이 가을 날씨를 200% 만끽하는 일이에요. 이제 셔츠 한 장 달랑 걸치기에는 아침저녁으로 조금 쌀쌀하지만 그런 대로 참을 순 있고, 가디건이나 바람막이처럼 얄팍한 아우터면 충분한 데다 찬 커피를 들고 걸어도 손이 시리지 않은 그런 날씨!

오직 이 기온을 누리자는 목적으로만 휴가를 쓰거나 산책길에 나서는 등 최대한 실내에 머무르지 않으려 노력하는데요. 역시 같은 노래도 적당한 텐션으로 몸을 움직일 때 함께하니 더 귀에 잘 들어오고 감상이 풍성해지더라고요. 구독자 님은 올해 시월을 어떤 노래로 풍경으로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오늘 골라본 세 곡은 바지런히 움직인 시월의 산책길에 함께한 노래들이에요. 곧 연말이라는 실감 때문인지 아직 시월이 며칠 남았는데도 흐르는 하루하루가 아쉽고 금쪽 같네요. 충만함 반, 흘러가는 이 계절에 대한 초조함 반으로 발을 구르며 함께한 음악이기에 조금은 더 오래오래 기억날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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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JR - World’s Smallest Violin

근래 들어 휴대폰을 열고 '첫 곡'으로 가장 빈번하게 재생한 노래다. AJR은 뉴욕 출신의 삼형제(Adam, Jack, Ryan)의 이름을 딴 미국 밴드로, 지난 서울재즈페스티벌 마지막 날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최근에야 이들의 음악을 접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박자를 자유롭게 늘리고 튀기는 등 노래 구석구석 위트를 심지 않으면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겠다는 결의가 돋보인달까.

제목인 'World's Smallest Violin'은 '세상에서 가장 사소한 고민'이란 뜻의 관용어로 의역된다고 한다. 아무리 하찮은 고민이어도, 그러니까 누군가의 작디작은 바이올린이 켜는 교향곡이라도 들어줄 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노랫말이 종종 따뜻하게 와닿았다. 아마 어느 유튜버가 영화 <소울>의 장면들로 만든 이 영상 때문에 감상이 몇 배는 더 진해진 것 같다.

🌻 패닉 - 뿔

별안간 아침에 일어났는데 뒤통수에 뿔이 자라나 있다면 어떨까? 마치 자고 일어나니 벌레가 되어 있었다는 카프카의 소설 같기도 하고, 얼굴에서 코가 떨어져 나와 거리를 저벅저벅 걸어다닌다는 내용의 어느 러시아 소설도 떠오른다. 갑자기 뒤통수에 돋아난 뿔이 엄지손가락만큼이나 커졌다는 이야기는 1998년 패닉의 3집 앨범에 실린 <뿔>의 노랫말이기도 하다.

동화를 들려주는 듯 경쾌한 이적의 목소리와 귀여운 상상력도 인상적이지만 '어쩐지 요즘은 사는 게 짜릿짜릿해', ‘나만이 간직한 비밀이란 이렇게나 즐겁다’고 맺는 노랫말이 가장 맘에 든다. 역시 세상사 뭐든 마음 먹기 나름 아닐까? 엉뚱한 곳에 자라난 뿔처럼 별나고 모난 부분도 흠보다는 나만의 매력이라 여기고 싶어진다. 지금도 어딘가 자리잡고 앉은 내 안의 뿔도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다. 딱 하나 단점을 꼽는다면 곡 길이가 2분으로 너무 짧다는 것이다!

🌻 Barry Manilow - When October Goes

한 시기가 끝날 때 사랑받는 노래들이 있다. 이를테면 9월이 끝나는 날 그린데이의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 10월이 끝나는 날이면 이용의 <잊혀진 계절> 등을 제철음식처럼 챙겨 듣는 식이다. 언젠가부터 시월의 마지막 날 즈음 듣는 노래의 목록에 <When October Goes>를 추가했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커버한 명곡이지만 역시 원곡자 배리 매닐로우(Barry Manilow)만큼이나 가을 밤을 넉넉하고 묵직하게 감싸는 목소리가 또 없다고 느낀다.

시적인 노랫말 또한 사랑스럽다. 시월에 바라본 황혼의 하늘, 누군가와 보낸 행복한 한때... '시월이 가는 게 얼마나 싫은지(I hate to see October go)' 가만가만 정직하게 내뱉는 목소리에 힘껏 공감하고 싶어진다. 조용히 주장해보건대, 이 노래를 10월 31일에 듣는 건 너무 늦다. 시월이 최소 일주일은 남았을 때부터 부지런히 챙겨 듣고 상기하며 한번이라도 더 이 계절을 오감으로 만나려 부지런히 발을 굴려야 한다.

그러고 보면 김동규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이소라의 <October Lover>처럼 유독 아름다운 시월을 배경으로 삼은 노래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시월의 바람과 하늘만이 주는 감상과 영감이 동서고금 많은 예술가를 스치고 울리고 미소 짓게 한 것이다. 당장 문 밖에 나서는 행위만으로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지. 이 좋은 시월이 가는 게 얼마나 싫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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