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레터에서 저희집 강아지 콩보리 이야기, 어떠셨나요?
보리(토이랬는데 10Kg 나가는 애)는 말씀드린 대로 걸음이 느려요.
보리의 걸음이 느려진 지는 3년 정도 되었어요. 하지만 어릴 적 극성쟁이일 때도 보리는 산책을 나가면 늘 제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녀석였습니다. 그래서 항상 앞서 나가며 리드줄을 당기는 콩이를 제지하죠. 순하고 착하지만 산책할 때 고집을 좀 피웁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냄새를 맡야겠다 맘 먹으면 버티고 서서 기어이 그리 가야 합니다. 냄새도 어찌나 몇 번씩 신중하게 맡는지 가만히 서서 기다려줘야 해요.
걸음이 아주 느려진 이후 안쓰럽고 그래서 저는 보리를 자꾸만 뒤돌아 봅니다. 혹시 힘들어하진 않는지, 줄이 바짝 당겨지고 있진 않은지를요.
그런데 하나 간과한 게 있었어요.
앞으로 뛰어 나가고 싶은 콩이를 늘 못 가게 하고, 보리가 냄새를 맡고 느리게 걷는 동안 콩이는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야 합니다. 아직 건강하고 몸이 날렵한 콩이는 전혀 배려 않고 보리만 신경 쓰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된 거죠. 언젠가부터는 콩이도 먼저 뛰쳐 나가다 금방 잦아들고 천천히 걸음을 늦추고 있었습니다. 아직 잘 뛰어 다니고, 뛰고 싶어하는 콩이의 성에 느린 산책이 성에 찰 리 없어 한 바퀴 같이 돌고 나면 콩이만 따로 빠르게 한 바퀴를 따로 데리고 돌고 있어요.
문득 조직의 어떤 장면들이 떠오르더라구요.
조직에 유난히 학습속도나 업무 속도가 더딘 사람이 있을 때, 소위 저성과자라는 사람이 있을 때를요. 그들에게 난 얼마나 관대한 사람이었나를 생각해 보면 관대는 커녕 가혹할 정도로 무례한 사람이었던 적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속도를 답답해하고 왜 좀 더 노력하지 않느냐 다그치기도 했어요. 그게 누적되어 지속되면 그 사람은 대놓고 무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혼자 도드라지며 자기 할 일 하는 이들에게도 실눈 뜨고 뭐라 했어요. 동료 안 챙기고 자기 것만 챙긴다구요. 어떤 리더는 저성과자나 힘들어하는 사람을 잘 챙겼지만 그로 인해 다른 팀원들로부터 비난을 받곤 했습니다. 사람은 좋은데 매니지먼트를 못한다구요. 왜냐. 늘 저성과자의 몫을 일잘하는 다른 누군가가 선배라서, 동료라서라는 명분으로 떠안았으니까요. 일을 잘하는 사람은 일도 많은데 더 많아지는 아이러니랄까요. 항시 팀인데 챙겨야 한다는 말에 화를 내다 떠난 이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쉽게 볼 수 있어요. 조직이라는 게 한 사람이 잘하지 못한다고 성과가 안 나는 건 아니죠. 그 얘기인 즉슨 하나가 못해도 조직이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다른 누군가가 메꾸고 있단 말이구요. 조직은 어떤 일을 해내느냐에 관심 있지 누가 얼마나 했느냐엔 큰 관심이 없기도 하니까요.
반대로 뒤처지는 사람을 내놓고 없는 셈 치거나 따라오든 말든 갈길만 가는 팀도 있습니다. 따라가기 버겁지만 떠날 수도 없고 강력히 자기 주장을 하지도 못하는 이는 원인은 열외로 하고 많이 힘들어합니다. 꾸역꾸역 기를 쓰고 따라 가려 하거나 퍼져 버리죠. 누군가는 당신은 왜 그렇게 눈치보고 주눅들었냐 뭐라 하기도 해요.
또 어떤 조직은 콩이가 이젠 당연하게 걸음 속도를 늦춰 걷듯 잘하는 사람들 마저 하향평준화 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저야 제 새끼들이니 무조건 사랑하고 답답함보단 안쓰러움으로 보듬습니다. 콩이도 뭐 얼마나 보리에게 억화심정을 갖거나 저를 원망하겠어요. 하지만 회사라는 곳에서 보리 같은 사람이 있고 콩이 같은 사람이 있으며 저 같은 리더가 있다면?
저는 보리를 파양할 수 없어요. 하지만 회사는 그렇지만은 않을 겁니다. 회사에서 주로 이런 이들을 선별하고 '관리'하는 일을 했던 저는 많은 경우 헤어짐을 선택하기도 했습니다. 회사라는 곳은 마냥 '팀웍'이라는 이유로 모든 걸 참고 끌어안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가차없이, 누군가에겐 '이렇게까지 하다니' 할 정도로 공을 들이기도 합니다. 대체 이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다음 레터에서는 지극히 개인적 경험과 소회이지만 이 차이가 어디에 있었을까란 얘길 이어나가 보겠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 떠올려봐 주세요.
※ 그리고 그거 아세요? 금요일 레터가 사실상 시즌 1의 마지막 레터라는 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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