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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브톡 15화] 진단을 했다 ③

체크포인트(뭔가 잘 만들고 있다에 취하고 있진 않나요?)

2023.11.03 | 조회 3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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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가게를 갔어요. 포장을 기다리다 냉동고를 보는데 알록달록 예쁜 아이스크림 케이크들이 가득했죠. 그러다 문득 예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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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진 않지만 3년 전 쯤 대충 저런 갈색 곰돌이 인형 같은 케이크를 생일날 받았어요. 케이크를 박스에서 꺼내는 순간 다들 탄성을 내뱉었죠. 엄청 귀여웠거든요. 

그런데 초를 끄고 먹을 타이밍이 되었을 때 다들 한마디씩 했습니다. "아니 이걸 어떻게 먹어", "잔인해" 같은. 

반을 쪼개기도, 부위별 나누기도 영 찝찝한 그 기분 구독자분들도 뭔지 아실 거 같아요. ^^ 결국 다 먹긴 했지만 처음엔 정면이 아닌 뒷면을 안보이게 잘라내 눕혔는데 그 다음은 상상에.. 

어제 아이스크림 가게의 캐릭터 제품들을 보며 그 기억이 떠오르더군요. 너무 예쁜데 먹기 좀 그렇다, 보통은 아이들에게 선물할텐데 교육상 안 좋다, 그래도 일단 예쁘니 계속 팔리는 거겠지 같은.


수요일 레터에서는 조직문화 서베이를 했던 경험에서 느꼈던 생각을 나누었어요. 그런데 왜 갑자기 케이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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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기업 주관의 컨퍼런스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이미지와 같은 질문을 받았어요. 제 답변은 “의도대로 안 된 사례가 된 사례보다 월등히 많았구요. 보통은 의도대로 다 안 됐어요.““조직에서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중요하다 생각 않은 제도가 있었느냐,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왜 안 됐을까.. 인사담당자들만의 리그, 또는 경영진과 인사담당자들만의 리그였을 때였던 거 같아요.“ 였죠.

그러니까 왜 케이크냐. 오늘 레터에서 무슨 말을 할까 하던 참에 본 케이크가 다를 바 없단 생각이 들더군요. 조직에서 진단이든 평가든, 조직문화 서베이든 그리고 모든 제도들 중에 잘못되라고 만드는 게 하나라도 있었을까 싶은 거요. 거의 모든 활동이 이걸 하면 좋을 거야, 개선될 거야, 좋아질 거야를 전제로 검토되고 기획됩니다. 가끔은 우리 이런 거 했다, 쟤네 저런 거 했다로 사례 발표도 하고 홍보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임직원들의 리얼한 반응은 어떻든가요

인사에서 뭘 열심히 하려 하면 귀찮아진다는 말은 공공연해요. 뭔가 변화시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들어가야 하는 공수라는 게 있기 마련이고 아무리 취지가 좋고 why를 이해해도 막상 나한테 뭐 하라 하면 바빠 죽겠는데 뭘 시킨다고 불만이니까요. 그런데 이걸 감안해도 필요 이상 혹은 불필요한 일을 '시킨다', 이런 경험 없으신가요?

제도를 아주 공들여 기획합니다. 수없이 보고서를 수정하고 인터뷰도 설문도 해봐요. 그렇게 점점 더 아름다운 보고서가 완성되어 가죠. 기획안이 짜잔~하고 나오면 이제 실행으로 들어갑니다. 가끔은 임직원 대상 설명회도 하고 교육도 하면서요. 그러고 얼마 안 지나 결과 보고를 받아요. 매월 보고하는 곳도 있고. 그걸 다시 보고하면서 뭘했냐, 왜 이러냐 조사를 하고 그걸 다시 경영진에게 보고합니다. 

매끈하게 잘 만들어 한껏 있어 뵈는 기획안(제도)이 마치 저 귀여운 케이크 같단 생각을 했어요. 어디 내놓기 좋고, 보여주기 좋고, 나중에 두고두고 열어봐도 좋은. 어떤 모양으로 할까, 어떤 재료로 할까, 이걸 받을 사람은 누구인가, 그들은 뭘 좋아할까, 얼마나 예쁘게 잘 만들까.. 내놓고 이거에요 할 때는 뿌듯하기까지 하죠. 

그런데 케이크는 먹어야 하는 거고, 먹기 위해서는 해체를 할 수밖에 없어요. 이때 공들여 만들 수록 모양은 처참하고 부수긴 머뭇거려집니다. 난잡해지고 애초에 형체는 알아볼 수 없으리만치 사라져 버리죠. 

차라리 아무 모양 없는 치즈케이크가 자르기도, 나누어 먹기도 편하죠. 케이크라는 본연의 용도와 재료의 풍미에 집중할 수 있고. 

물론 캐릭터 케이크는 좀 다른 가치가 있긴 합니다. 선물이라는 거요. 그래서 나중은 어떻다치더라도 받는 순간 기분 좋고 감탄하는 게 큰 가치에요. 하지만 제도는 그러면 안 됩니다. 당장 좋지만 남는 거 없는, 본질도 형체도 의미도 없는 휘발성 이벤트가 되면 안 되는 게 제도에요. 조직문화 서베이(진단, 평가, 서베이 포함)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걸 해서 뭘 하고 싶은 건가가 명확해야 하고 그것에 최대한 집중하는가를 많이 고민해야 해요. 

케이크에 빗대어 볼까요?

당장 당 떨어지고 출출한 구성원들이 잠시 쉬어가며 맛있게 배를 채우고 그 과정에서 서로 대화하며 다시 업무로 돌아가 몰입하는 게 케이크를 만드는 본질적인 목표일 거에요. 그럼 고려해야 하는 게 몇 가지 있어요.

최대한 편하게, 맛있게, 기분 좋게 먹을 수 있게 만드는 거죠. 여기엔 어떻게 나누어 먹을까, 먹고 나면 어떨까까지를 포함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린 어떤 케이크를 만드는 행위 자체에(디자인, 재료 등) 힘을 다 빼버리곤 해요. 보기 좋게, 어떤 것까지 썼다, 이렇게까지 했다면서요. 만드는 사람들끼리 푹 빠져 있다가 보기 좋은 걸 내놓습니다. 자기 만족에 빠지기도 해요.  

잠시 사람들은 말하기도 합니다. 와~ 잘 만들었네, 있으니 좋네, 고생했네라구요.  

하지만 나눠 드세요 하고 내놓은 후에는요?

앞접시가 없거나 포크가 없거나, 있어도 모자르거나 너무 많이 남아 버리는 게 더 많거나 먹기 불편한 모양이거나 배달하는 동안 모양이 무너지거나 상하거나.. 그러다 불평불만이 나오고 이런 걸 만들었냔 원성이 나오기도 해요. 정작 먹어야 하는데 먹는 게 불편해 지는 거요.  

전달 중 모양이 무너지는 건 현업에 적용하려 할 때 애초의 의도는 점점 옅어진 채 관리자의 잘못된 설명, 그닥 관심 없어 흘려 듣는 이들에겐 마치 재료에 산삼을 넣어도 모르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그럼 뭘 신경써야 했을까요. 원형 그대로 잘 전달되게 하는 방법과 즐겁고 맛있게 그리고 쉽게 먹는 방법이 아닐까요.  

무엇보다 출출하면 간단히 라면 끓여 먹음 그만인 경우도 많아요.

서베이를 할 때에도 굳이 서베이까지 할 필요 없이 그냥 한 번이라도 구성원들을 더 만나 이야기 하며 더 알아가는 게 나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작은 조직이라면 더더욱요. 그런데 서베이, 진단을 참 많이들 하고 싶어 하세요. 어떤 툴이 있다더라며 서베이의 효율성에 더 집착하기도 합니다. 가끔은 진단행위 자체를 정교화 하고 싶어하나 싶을 때가 많아요. 나 뭐 했다, 뭘 이렇게까지 열심히 했다 행위가 본질인 마냥. 

체크포인트라 해서 뭘 진단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한다는 체크 리스트 같은 걸 기대하셨다면 이번 레터는 실망스러울 수 있어요. 그런데 제가 정말 이야기 하고 싶었던 건 에피소드에서 출발했을 뿐 일을 하는 대원칙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집중해야 하는 게 무엇이냐,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리고 그동안 주객전도된 일을 없었느냐에 대한 자기 인식요. 

서베이든 제도든 놓치지 말아야 할 대원칙이라면

"무엇을 바꾸고 싶으냐"
"바꾸기 위해 뭘 알아야 하느냐" 
"실제 현업에서 운영될 수 있느냐" 가 아닐까 합니다. 

뭘 알고 싶어 서베이 하는 건 질문만 모호해지고 그래서 분석할 때 뱅뱅 돌거나 보고용 워딩을 만드는 데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낭비시킬 때가 많거든요. 

열심히 말고 잘이란 말을 흔히 듣습니다. 

이말은 열심히 하느라 매몰되어 핵심이 아닌 언저리에 진 빼지 말란 게 아닐까요. 

데이터, 객관화란 말은 참 그럴싸해 보입니다. 이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여기에 매몰되거나 난 이렇게 하는 사람이란 자아 도취에 빠져 있진 않은지 자기 검열이 중요해요. 우린 이런 것도 해요란 말도 마찬가지구요. 인사제도, 조직문화는 절대 단기에 가시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어렵습니다. 아주 긴 시간이 아닌데 엄청 많은 걸 다양하게 해봤다는 건 역으로 뭔가를 진득하게 꾸준히 해보지 않고 그때그때 트렌디한 걸 이것저것 해봤다는 얘기가 되기도 하니까요.

어쩌면 실제 유용한 전략과 제도들은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투박하고 소박한 모습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더하기 보다 먼저 빼보는 거요. 본질과 핵심만 남기면 화려할 리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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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

    1
    2년 이상 전

    난 이렇게 하는 사람이란 자아 도취에 빠져 있진 않은지 자기 검열이 중요해요. - 오늘 이 문구가 와 닿네요. 직무는 다르지만 스타트업에서 1인담당자로 일하면서 이거 내가 하고 싶어 하나 회사에서 쓰일일이 있나 이런 생각 한 적이 많은데.... 난 이런 것도 할 줄 아는데 막상 회사의 단계에는 아직 그 정도 업무까지는 필요없는 경우가 있어서요!! (그런데 그러다가 또 할 줄 모르게 되면 어떻하지 하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어요...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경영지원 담당자들에게 생기는 역설? 아이러니? 고민? ~ 일까요?) 근데 이제 스타트업 아닌데서 일 할 수 있을라나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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