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이냐면 이게 다 제가 '진심으로' 들었던 칭찬입니다. 제 상사나 선배들에게 들었던 말이죠. 그 자리의 분위기나 그분들과의 관계나 성격 등을 잘 알기에 뭔가 께름직하면서도 그냥 넘긴 적이 많았어요. 그러다 과장 말 "남자처럼 일한다"고 칭찬하는 부장님에게 웃으며 말씀드렸죠. "그걸 칭찬이라고 하시는 거에요?"(방긋)
지지부진한 상태로 반년 가까이 지연되던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다른 동료가 담당하고 있었는데 납기를 한 두 번 미루고도 지연되던 참이었죠. 담당자를 빼고 제게 넘어왔습니다. 성격 급하고 다그쳐가며 일을 처리하는 저는 소방수 역할을 종종 하곤 했어요. 이 프로젝트도 비슷한 상황이었죠. 납기는 달랑 한 달 정도 기간이 주어졌는데 한 달이 되기 전에 깔끔하게 마무리 했고 함께 일하던 유관부서 사람들에게도 칭찬 좀 받았더랬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고분고분 했느냐 하면 당연히 아니었겠죠. 이전 에피소드들에서 얼추 예상하셨겠지만 까칠하고 남 지적질 하기론 둘째 가라면 서러웠을 때니까요. 첫 마디는 "대체 이걸 왜 지금까지 못한 거야!". "그동안 뭐한 거야!".
당시 제 기준에선 말도 안 되는 그간의 진행 상황을 보며 "이 사람 놀았나" 생각했으니까요. 마무리만 제발 좀 하라 맡겼던 프로젝트를 리셋하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추진력 하나는 좋았던 터라 빠르게 진행했죠. 유관부서 사람들도 지난 기간 겪은 게 있다 보니 시큰둥했지만 "아, 모르겠고" 정신으로 밀고 나갔습니다.
결과적으로 잘 끝났고, 당시 일했던 유관 조직에서 제 칭찬을 좀 했다 했습니다. 저희 임원은 당연히 기분 좋아 하셨고 마침 단체 회식이 있던 날 한껏 오른 기분으로 제게 술을 따라 주시며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말씀하셨어요.
"너 XXX 벌써 끝냈다며? 얘가 성격이 못되 처먹어서 그걸 벌써 끝낸 거 있지, 허허허허. 한 잔 해". 물론 기분 좋은 자리였고, 그분의 캐릭터를 잘 알고 있었어요. 평소 무례한 분이 아니고 자기새끼란 생각을 가지고 편한 자리에서는 편하게 말씀하시기도 했기에 기분 나쁘다라기 보다는 칭찬이구나 했죠. 그래도 기어이 한 마디 드렸습니다. "아니 OO님, 보통 여자한테 못돼 처먹었다고는 안 하지 않아요?" 라고. 크게 웃어 넘기긴 했지만 이런 류의 칭찬을 꽤 받고 살았어요.
남초 제조 회사에서 수십 년 간 여성 임원 한 명 없었고 전사에 여성 팀장이라곤 달랑 3명 있던 시절, 제게 떨어진 여성 리더십 과정 개발 업무였습니다. 전 '여성 리더십'이란 말에 적잖게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터였어요.
"여성 리더십이란 과정이 왜 별도로 있어야 하죠?"라 반문했죠. 한참 논의를 했는데 제 거부감의 원인은 이런 거였습니다. 기존 여성 리더십이라 불리던 과정에서 다룬 내용들은 주로 여성은 이러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고 그에 맞는 언어를 써야 하며 이해해야 한다 같은 거였습니다. 완곡하게 아무리 표현을 하고 의도가 어쨌든 여성은 감정적이고 우는 것도 언어이며 울면 기다려 주고, 공감을 원하니 공감해 주고 등등. 마치 달래고 일방적으로 이해해주며 배려 해야 하는 대상처럼요. 혹은 남성보다 더 남성처럼 일하란 메시지이거나요.
10년 넘게 일하며 제게 여성의 유리천장을 하소연하는 고민 상담을 많이 받았지만 저도 여성이고, 가장 보수적인 인사팀에 있었어요. 그럼에도 유리천장이란 걸 거의 느끼지 못하고 성장했습니다. 오히려 동일하게 일하고 성과를 내면 여성이기에 좀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 받았지 대단히 불리하단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물론 전혀 못느꼈냐 하면 아니죠. 동기들과 진급할 때 저 빼고 모두가 기혼 남성이었고 한 번은 "그래도 이과장은 처자식도 없으니.."란 얘기를 들었으니까요. 뭔가 인사적 결정이 있을 때나 뭔가 발탁에 대한 걸 논의할 때엔 "넌 처자식이 없어서"란 말을 심심찮게 들었습니다. 직급이 오를 수록 어떤 한계가 어렴풋이 다가온 적은 있지만 크게 개의치 않고 제 할일을 했을 뿐이에요.
하지만 기존 여직원들에 대한 편견,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 등으로 조직 내 여성 리더 풀이 적은 것도 사실. 가장 좋은 건 여성이니 구분해 더 배려할 필요 없고 남자직원들과 똑같이 대하시라는 거였습니다. 최소한 기회 부여 만큼은 더더욱. 이에 대한 컨센서스는 이루어졌는데 다음 난관은 과정 개발 중에 내내 발생했어요. 저희 리더들은 여직원에 대한 차별이 드러나지도 않았고 진심으로 똑똑한 여직원들이 커리어를 멈추는 것에 안타까워 하셨죠. 그럼에도 이와 별개로 "아, 어떡하지"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남성 팀장들에게 여직원 코칭하는 케이스 중 의견을 주신 사례에요.
"맞벌이 하는 세상이고, 우리 회사에 들어올 정도면 여직원들이 남자직원들보다 스펙도 훨씬 좋아. 사원대리 때는 훨씬 일도 잘하고. 그런데 결혼하고 육아하면 같이 돈벌고 일하는데도 여자가 일을 훨씬 많이 해. 그럼 안 되거든. 그래서 이런 메시지를 넣었으면 좋겠어. 여직원들이 자기를 위해 돈을 써야 해. 그래서 가사노동으로 힘들어하는 여직원들에게 식기세척기를 사든 해서 일을 줄여야 한다고."
놀랍게도 당시 남자분들은 "정말 좋은 의견이다,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 맞아맞아 " 했다는 겁니다. 벌써 수 년이 흐른 후지만 지금도 이 사례를 말씀드리면 많은 남성분들이 "그게 왜?" 하십니다. 반면 여성분들은 "그게 무슨 소리야"라고 하죠. 이게 어떻게 들리냐면 저 어릴 적 이런 CF가 있었어요. 젖은 손이 애처로워~ 라는 가요가 백그라운드뮤직으로 깔리며 남편이 사랑하는 아내의 젖은 손이 애초로워 고무장갑을 선물하는. 저 식기세척기라는 게 다르지 않아요. 그래도 합리적이고 평등하려 하시는 분이 저런 의견을 내신 다는 게 그분께 화가 난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 이게 현실이고 여전한 남성들의 한계구나 했던 사례였죠.
일부 사례를 언급했지만 이런 류의 칭찬, 격려, 질책 그리고 의도 없는 낮은 이해를 표현하는 멘트를 참 많이도 듣고 삽니다. 82년생 김지영을 보며 페미니 하는 비난도 많지만 여성이어서, 여성이기에 느끼는 일상의 크고 작은 답답함이 넘치구요. 대기업에 오래 있다가 스타트업씬에 나오니 확연히 다른 분위기는 있어요. 오랜 조직문화에서 성장한 남성 리더가 거의 없고, 경영진부터 말단 인턴까지 나이 차이가 크지도 않은 것도 한몫 하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젊은 혈기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동료의식이 먼저이기에 그렇기도 할 거구요. 그럼에도 스타트업에서도 여직원이 결혼, 출산, 육아기에 들어갈 땐 조직의 고민도 여직원들의 고민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여전하기도 해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우리 조직, 남성의 시선, 여성의 입장은 어떠세요?
일하는 여성의 성장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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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게
분위기인 것 같아요. 남성/여성을 구분해서 바라보는 분위기인지, 일 할 때는 다 같게 보는지. 요즘은 그래도 시선들이 많이 좋아진 것 같긴 한데요.. 제가 여성의 입장이 되어보질 못했으니 이 또한 편견일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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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저는 한 회사에 10년 근무하면서, 글의 사례보다 더 한 상황을 겪기도 했는데요. ^^;; 기업이 잘 나가고, 핵심가치가 좋아도... 결국 리더 한명의 편견에 따라 가치와 상반되는 회사의 결정을 많이 봐 왔습니다. 조직 내 편견이 없었던 임원도 있었지만, 결국 리더를 이기진 못하더라고요. 다행히(?)도 그분들이 먼저 조직을 떠나지만.. 결과까지 같이 들고 나가는게 아니니 남은 구성원 중 피해 입은 분들은 두고두고 회사 욕 하며 고충 처리의 원탑이 됩니다. 회사가 그렇게 만들었으니 그분들 탓할 순 없지만.. 그 여파가 너무 커요. (심지어 퇴사 전날까지, 같이 퇴근하는 길에 불합리한 상황을 겪은 동료의 고충을 들어야 했죠;;) 근데, 정말... 편견 없는 회사를 알아보는 방법은 없을까요? 결국 들어가서 부딪혀 보면 의외로 구성원들의 잠재의식 속에 숨은 편견을 보게 되기도 하고요. 같은 여성인데도 편견 섞인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인사팀은... 일을 진행하는 것보다 인식과의 싸움이 더 많은 직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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