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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 함께 떠나는 여행, 그 다음은?

함께 이동하고 관찰하는 여행

2024.11.09 | 조회 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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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미닝아웃하는 다양한 관점을 나눕니다.

1984년 일본, 50여 명의 사람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도쿄로 향한다. 목적은 무용한 물건들을 찾는 것. 더 이상 쓸모가 없는 건축물 또는 기능을 잃어 의문스러운 형태만 남은 구조물을 탐구하는 이 모임은 일상 속 자신의 존재 가치를 과시하지 않는 묵묵한 것들을 찾아나선다. 거리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인적이 없는 건물들도 가만히 바라본다. 무언가 받치고 있을 것이 없는데 버티고 선 기둥, 올라갈 것이 막혀있는데 나있는 계단, 없어진 목욕탕 터에 남은 높은 굴뚝, 2층까지 이어진 계단은 있으나 정작 출입문은 없는 일명 ‘무용 문’ 등 어딘가 잘리고 생략된 건축물이나 구조물은 모두 이들의 탐구 대상이다.

일본의 예술가 아카세가와 겐페이는 이러한 것들을 예술을 초월하는 예술 ‘초예술’로 명명했고, ‘초예술’의 범위를 좁혀줄 수 있는 것으로 ‘토머슨’이라는 명칭을 붙인다. ‘토머슨’은 메이저리그에서 고액연봉을 주고 일본에 데려왔지만 이렇다 할 활약을 못한 야구 선수의 이름을 딴 것이다.  ‘초예술 토머슨’을 제보하기 위해 엉뚱한 것들에 카메라를 들이댄 사람들의 반응은 생각 외로 폭발적인 것이라서 나중에는 ‘노상관찰학회’가 결성되기도 한다. 유용한 것과 쓰레기, 어느 것에도 속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활동은 겐페이가 처음 ‘초예술 1호’를 발견한 시점인 1972년부터 『초예술 토머슨』이 책으로 묶여 나온 1987년까지 15년이 넘게 지속되었다.

1972년 발견한 초예술 1호의 사진, ©안그라픽스, 사진 출처: https://www.agbook.co.kr/books/thomasson 
1972년 발견한 초예술 1호의 사진, ©안그라픽스, 사진 출처: https://www.agbook.co.kr/books/thomasson 

 

비극은 어떻게 미래가 되는가

정윤선, <길위의 진실>, 2018, 영상 스틸컷, ©부산현대미술관, 사진출처: https://www.cnbnews.com/news/article.html?no=542245
정윤선, <길위의 진실>, 2018, 영상 스틸컷, ©부산현대미술관, 사진출처: https://www.cnbnews.com/news/article.html?no=542245

2018년 한국, 스무 명 남짓의 사람들이 한국전쟁 당시의 임시 수도 역할을 했던 부산의 장소를 여행하는 버스를 탔다. 부산역, 중앙동 40계단, 영도 이북마을, 대청동 한국은행, 보수동 책방골목, 국민보도연맹 학살 사건이 있었던 부산 형무소까지 부산의 비극적 역사가 담긴 장소를 돌아보는 여정이었다. 1950년 한국전쟁 직후 북한군의 남진으로 전선이 낙동강까지 내려오자 전국의 많은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몰렸고, 여순사건과 제주 4.3사건의 여파로 좌익세력을 두려워 한 이승만 정권이 전국의 형무소에 수용된 수감자들을 무차별하게 학살했다.

정윤선 작가는 2018년 부산비엔날레 《비록 떨어져 있어도》 에서 참여자와 함께하는 퍼포먼스 작업 <길위의 진실>을 진행했다. 참여자들은 군복을 입은 안내원을 따라 버스를 타고 학살 당시 트럭에 실려 처형장으로 이동하는 수감자들로 분해 열 세 곳의 장소를 돌아봤다. 작가의 방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작성된 오디오 가이드는 현대적 모습에 감춰진 비극의 역사를 소환한다. 종착지인 부산현대미술관 앞에서 내린 참여자들은 구덩이 앞에서 죽음의 차례를 기다리던 당시의 수감자들처럼 눈을 가리고 나란히 서서 그날의 여정을 마쳤다. 무심코 지나는 도시의 풍경에 비극이 서려 있었음을 안다면 도시 안의 우리가 어떤 미래로 나아갈지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거운 부채감을 남길 것이다.  

 

(함께)본다는 것의 의미

본다는 것이 압도적으로 먼저 서는 감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인간이 무언가를 볼 때, 시각만이 열려있는 것은 아니다. 시각 외에 다른 감각들이 물리적으로 차단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일렉트립’으로 당진을 다녀왔다. 그날의 경험을 생각해 보니 보는 것 외에 다른 감각으로 기억에 남은 것들이 있다. 

2045 거주(불)가능 도시 <일렉 트립>, 형광등 퍼포먼스, 2024.10.19.(토)
2045 거주(불)가능 도시 <일렉 트립>, 형광등 퍼포먼스, 2024.10.19.(토)

현대제철을 바라보면서 뭉게구름 같이 피어오르는 한무더기의 연기를 바라볼 때, 매캐한 공기로 코끝이 따갑기 시작하더니 이내 코를 훌쩍이게 됐다. 어두운 저녁 송전탑 아래 서서 형광등을 송전탑을 향해 높이 드니 주변에 흐르는 전기의 영향으로 손에 쥔 형광등에 불이 들어왔다. 밤공기를 희미하게 가르는 하얀 빛만큼이나 송전탑이 늘어선 논길을 걸을 때 마주한 서늘한 바람이 생생하다. 생각만 하던 것을 직접 보고 감각하는 일련의 여행은 같이 하는 경험이자 무언가를 잊지 않으려는 방식이다. ‘토머슨’을 발견하고 관찰하는 공통의 분모를 위해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던 ‘토머스니언’처럼 직접 그 장소에 가보고, 같은 것을 향해 움직이는 트립은 더 많은 잔상과 이야깃거리를 남긴다. 여행만이 함께 성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단언할 수 없지만 여행으로 빚어낸 연결이 더 많은 감각과 거기서 뻗어 나오는 또 다른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희옥 / (재)광주비엔날레 홍보마케팅부 stitch063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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