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
# 『화씨 451』 레이 브래드버리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건 뭐든지 있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무엇 하나 모자란 게 없는 세상인데 우린 행복하지 않아요. 뭔가가 빠져 있어요.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제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던 단 한 가지는 그 동안에 사라진 거라곤 지난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제가 불태워 없앤 책들, 책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에 뭔가 해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구제 불능의 낭만주의자군. 심각하지만 않다면 꽤나 즐길 만할 텐데. (…) 당신이 찾아 헤매는 건 책이 아니야! 당신은 낡은 축음기 음반에서, 낡은 영화 필름에서, 그리고 오래된 친구들에게서 책에서 구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것들을 얻을 수 있지. 자연 속에서, 그리고 당신 자신 속에서 찾아보시오. 책이란 단지 많은 것들을 담아 둘 수 있는 그릇의 한 종류일 따름이니까. 우리가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하는 것들을 담아 두는 것이지. 책 자체에는 전혀 신비스럽거나 마술적인 매력이 없소. 그 매력은 오로지 책이 말하는 내용에 있는 거요. 우주의 삼라만상들을 어떤 식으로 조각조각 기워서 하나의 훌륭한 옷으로 내보여 주는지, 그 이야기에 매력이 있는 것이오.”
몬태그, 당신이 찾아 헤매는 건 이 세상 어딘가에 있소. 그러나 그런 것들 중의 99퍼센트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책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오.
“내가 바로 플라톤의 『국가』라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시몬스 박사가 바로 마르쿠스라오. 발각될 위험은 언제나 따라다니지. 늙은 머릿속에다 감춰 두는 게 제일 안전하오. 다른 사람이 보거나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까. 전쟁이 끝나면 우린 아마 이 세상에 유용한 존재가 될 것이오.”
“그 때엔 그들이 귀기울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못할 땐, 또 다시 기다릴 수밖에. 우리 아이들에게 입으로 책을 전해 기다리게 하고, 또 그 아이들이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물론 그런 과정에서 잃는 것도 많겠지. 하지만 사람들이 강제로 듣게 만들 순 없소. 자신들이 필요할 때 와야 하오.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고, 왜 세상이 날아가 버렸는지 궁금해하면서. 결코 오래 걸리진 않소.
오늘 밤 길 위나 버려진 철로를 오가는 수천 명이 밖에서 보면 부랑자지만, 안은 도서관이라오. 우린 그저 책을 보관하는 지저분한 책덮개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오. 이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훌륭한 일이지. 인간은 용기를 잃거나 비겁해져서 이런 일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오. 아주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아니까.”
‘사람들은 전부 자신이 죽을 때 뭔가를 남긴단다. 아이나 책, 그림, 집, 벽이나 신발 한 켤레, 또는 잘 가꾼 정원 같은 것을 말이야. 네 손으로 네 방식대로 뭔가를 만졌다면, 죽어서 네 영혼은 어디론가 가지만 사람들이 네가 심고 가꾼 나무나 꽃을 볼 때 너는 거기 있는 거란다. 무엇을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아. 네 손이 닿기 전의 모습에서 네 손으로 네가 좋아하는 식대로 바꾸면 되는 거란다. 그저 잔디를 깎는 사람과 정원을 가꾸는 사람과의 차이란 바로 매만지는 데 있지. 잔디를 깎는 사람의 마음은 전혀 정원에 있지 않지만 정원을 가꾸는 사람은 언제나 그곳에 있단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소. 하지만 만약 내 두개골을 파헤쳐 보면 내 뇌 속에서 할아버지의 엄지손가락이 파 놓은 도랑을 볼 수 있을 게요. 나를 매만지셨으니까.”
우리는 다음 주, 다음 달, 다음 해에 외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날 것입니다. 그 때 그들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고 있냐고 물으면,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기는 길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거대한 굴착기를 만들어 역사에 남을 거대한 무덤을 파서 전쟁을 쓸어 넣고 완전히 덮을 정도로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될 겁니다.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