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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저장강박(Digital hoarding)은 디지털 환경에서 수많은 기사, 음악, 영상들의 북마크, 메모, 사진 등을 잔뜩 모아두어 골치를 앓는 행동을 뜻한다. 멍하니 SNS나 사이트를 보면서, 계속 ‘공유’나 ‘북마크’를 누르고, 사진과 동영상을 나노 단위로 찍고, 기억하고 싶은 것은 메모를 해두기도 하지만 이 중에 나중에 진짜 살펴보는 것은 아주 조금이다. 디지털 시대에 부담 없이 무한히 그리고 영원히 그 모든 것과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계적 환상이 핵심 원인일지도 모른다.
저장은 인간의 본성이자 중요한 욕구이며, 이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지가 중요하다. 정보광인 아이린은 실제로 수많은 책과 기사, 잡지의 더미에서 모두 섬세하게 의미를 찾으려고 하다 보니 나중엔 아예 읽지 않게 되어버렸다.
우리는 짧은 삶 동안 의미 있게 살고,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서 저장한다. 어떤 것을 더 많이 저장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으로 어떻게 삶의 시간을 재미나게 채워나가고, 또 메모를 통과하는 동안 우리가 어떻게 바뀔 것인지, 그 순간에 무엇을 주목할 것이며, 무엇을 버릴 것인지, 사랑하는 잡동사니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나갈지 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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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주의와 노출증 예술가들이 득세하는 세상에 은둔형 작가의 존재는 그 자체로 삶과 사유의 여백으로 다가온다. 그 여백은 아름다운 포옹처럼 든든하다. 미학 용어에는 ‘알레테이아(aletheia)’라는 말이 있다. ‘망각(lethe)’에서 ‘벗어난다(a)’는 뜻이다. 직역하면 탈은폐 혹은 비은폐지만, ‘진리’를 뜻한다. 진리는 노출이 아니라, 감춰지고 숨겨져 있던 것이 넌지시 은밀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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