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는 백 년의 역사를 그 거대한 강에 가득 담고 내 앞을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강은 말라붙지 않았으며, 아마 앞으로도 형태를 바꾸며 흘러갈 것이다. (…) '지금 내가 만드는 것이 과연 정말로 영화인가'라는 물음을 언제나 품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불안'도 피로 이어진 듯한 연대감도 모두 뛰어넘어, 순순히 그 강의 한 방울이 되기를 바랐다.
가슴속 슬픔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다는 점이 인간의 씩씩함이자 아름다움 아닐까요.
현실 앞에서 '열린 자신'으로 어떻게 계속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다큐멘터리 연출의 가장 큰 과제입니다.
(옴진리교) 신자들은 생활의 자잘한 풍요를 누리지 않습니다. 먹는 것은 간소하고 입는 것에도 흥미가 없습니다. 음악이나 미술, 영화, 책, 교양 등에도 전혀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세계는 그런 작은 것의 축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도 그들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본질'을 잃게 된 게 아닐까요.
살의나 전쟁 등 자신의 사고 바깥에 있는 것에 대해, 그 방송을 본 사람이 자신의 내부에서 바르게 상상력을 가동시켜 가는 것. (…) 그런 것과 마주치는 장소를 확보하는 일이 최종적으로는 공동체 자체와 개인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공공재인 텔레비전이 해야 할 역할이다.
삶과 죽음은 표리일체이며 서로 좀 더 가까이에 있습니다. 반드시 삶이 끝난 뒤에 죽음이 시작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죽음은 언제나 삶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저는 다큐멘터리로 시작했기 때문에 작품은 결코 '나'의 내부에서 태어나는 게 아니라 '나'와 '세계'의 접점에서 태어난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특히 영상은 카메라라는 기계를 거치므로 이 부분이 두드러집니다.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세계와 만나기 위해 카메라를 이용하는' 것이야말로 다큐멘터리의 기본이며, 그것이 픽션과의 가장 큰 차이점 아닐까요.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 씨와 만났을 때 아라키 씨가 "지금 사진에 빠져 있는 것은 오마주다"라고 되풀이해서 말씀하신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작가의 상상(이미지)이 아니라 피사체에 대한 애정(오마주)이라고요.
사카모토 준지 씨도 "감독은 3할 타자면 된다"고 했습니다. 10할을 노리면 실패하지만 10타수 3안타의 3할 타자를 목표로 삼으면 성공에 가까워진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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